아이 엄마로 사는 일은 아이의 성장에 나를 재물로 바치는 것임을.
욕심이 많다는 말을 많이 들으며 자랐다.
하고 싶은 것이 많다 보니 언제나 바빴다.
그나마 학교에 다닐 땐 공부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에 그것만 따라가면 된다는 생각이 바탕에 있었다.
그래서 딴짓을 하고 싶은 욕심도 많았지만 포기하고 공부만 하자는 생각을 하며 단순해질 수 있었다.
성인이 되고 나니 공부 외에도 나를 유혹하는 것이 참 많다.
돈이 그중 대표주자이고 그를 얻기 위해 파생되는 노력들이 두 번째 같다.
하지만 객관적이고 정확한 숫자보다 다른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 마음에 퍼지는 잔잔한 감동 같은 것에나 반응했던 지난 날들 덕분에 나는 아직도 욕심을 채우지 못했다.
처지가 이렇다 보니 한 번씩 폭발을 하게 되는데 어제가 그랬다.
아이의 수학숙제는 적었다.
대략 열 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의 숙제를 학원가는 당일이 오기 전에 미리 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숙제가 어려웠다는 거였다.
생각보다 오랜 고민이 필요했던 숙제를 풀지는 못해도 고민할 시간조차 확보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나는 분노했다.
'왜 미리 안 했어?'
같은 말을 몇 번이나 소리 지르며 반복했는지 알지 못한다.
사십 대에 이르기까지 내 앞에는 미리 준비하지 못해서 놓친 수많은 기회들이 있었다.
기회는 뒷머리가 없다며 미리미리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지만 나는 준비하지 못했다.
아이는 그런 나를 닮은 거였다.
그리고 나는 그게 미치도록 싫었다.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네가 생긴 대로, 주어진 실력대로만, 딱 그만큼만 살라고 했다.
그러고 나면 내가 나를 위해 움직일 틈이 생길 것만 같았다.
초등학생의 실력은 엄마의 노력이라는 말이 참 매정하게 느껴진다.
한번 삐끗한 것뿐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곁에서 열심히 학원라이드를 하며 뒷바라지를 해야 함을 안다.
하지만 한 번씩 이렇게 무일푼의 봉사에 시간을 보내는 내가 너무 슬프다.
나는 기회가 그저 스쳐 지나가지 않도록 후회를 수천번은 해본 사십 대인데.
앞으로는 잡을 기회조차 없을지도 모르는데...
마지막 기회를 꼭 잡아야 하는데.
하지만 모든 건 그저 생각에서 그치고 만다.
자식을 낳았기 때문에 나를 버려야 하는 일.
분명 축복인데... 축복 같지 않은 날도 있다.
매일매일 아이를 넘치도록 사랑하듯 어떤 때 미친 듯이 분노하지도 않고
그저 평온하게, 평온하게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크게 변화하는 감정의 수위를 가진 나라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고 만다.
다른 누군가라면 이렇게까지 힘들게 느끼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자꾸만 나를 괴롭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