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뭔가를 잃어버리는 것에 예민하다. 어디선가에서 인간은 원래 뭔가를 얻고 싶어하는 욕구보다 뭔가를 잃기 싫어하는 욕구가 더 강하다고 했던 기억이 있기는 하다. 주식을 할 때도 돈을 벌었을 때 기분이 좋은 것보다는 돈을 잃었을 때 슬픈 것이 더 크다.
어젯밤 핸드폰을 바꾸면서 카톡 데이터백업을 하지 않고 새 핸드폰에서 재로그인을 하니, 어제 나눈 대화 내용 외에는 모두 삭제된 것을 발견했다. 퇴사 후 나는 카톡을 거의 안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누군가 일상을 나누기보다는 그냥 정말 연락해야할 일이 있을 때마다 카톡을 켜서 문자를 하는 정도의 용도로 쓰고 있다. 예전 기록을 보는 경우는 정말 거의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막상 내용이 모두 삭제된 것을 발견하고 나니 그 내용을 모두 복구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면서 약간 두려움까지 느껴졌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 있었던 건 아닐까? 나중에 다시 찾아보고 싶다면 어떡하지?
예전에 친구가 아무말 없이 채팅방을 나갔다가 다시 초대해달라며 연락을 할 땐 "얘는 왜 백업을 안했을까? 나가고 싶어서 나갔다가 마음이 바뀌어서 다시 초대해달라고 하는거 아냐?" 등 의심을 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무수히 많은 새 핸드폰으로 옮겨가며 단 한번도 데이터 백업을 잊어본 적이 없는 나였기 때문이다. 어제는 뭐가 씌인건지 아니면 같이 핸드폰을 바꾼 남편이 카톡 대화 내용이 백업하지 않았는데도 다 옮겨졌다는 (잘못된 말)을 듣고 안심한건지, 핸드폰앱서비스의 발전을 내가 너무 과대평가한건지, 아무튼 그렇게 철저하던 내가 남들이 일부러 안한다고 생각할만큼 "쉬운" 일을 잊어버렸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복구를 해보려고 인터넷 검색도 해보고, 이전 핸드폰에서 다시 로그인도 해보았으나 이미 사라진 데이터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핸드폰에서 로그인할 때 데이터를 백업하라고 다시 알림을 주지 않은 삼성과 카톡에게 잠깐 화가 날 정도로 기분이 나빴다. 지갑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미 잃어버린걸 어째. 지갑이나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찾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데, 하며 포기했다. 그런데 문득 그걸 잃어버린다고 해서 내가 정말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보지도 않을 내용이었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진이나 문서는 이미 내장 메모리에 저장해두었고, 다시 들어가고 싶은 단체 채팅방엔 채팅방 일원 중 한명에게 부탁해 다시 들어가면 그만인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들어가고 싶은 채팅방을 적어내려가는데, 다시 들어가고 싶은 채팅방이 4군데 밖에 없다는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무수히 많이 늘어져 있었던 채팅 리스트 중 내가 다시 들어가고 싶은 곳이 4군데 밖에 없다니... 이번 데이터 손실 참사(?)로 인해 오히려 쓸데없이 메모리 공간을 차지하던 텍스트들을 싹 정리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필요없는 것이라도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버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의도하지 않았던 분실이 나를 좀 더 가벼운 상태로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기억, 모든 사진, 모든 기록을 다 짊어지고 가면 버거워질 뿐이다. 놓아주자. 내가 가끔 이유모를 불안을 느끼는 건 어쩌면 무의식 중에 이런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잊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인간의 두뇌가 무한하다고 해도 중요하지 않은 지난 일들로 별로 용량이 큰 것 같지도 않은 내 머릿속을 가득채워두면 새로운 정보를 넣을 공간이 부족할 것이다. 입지 않는 옷을 버리지 않아 가득 차있는 내 옷장처럼. 내일은 옷장 정리를 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