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병동의 기록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반 반장은 굉장히 철학적인 아이였다. 나는 그 친구와 등하교를 종종 같이 했는데 그 친구는 허무한 일 뒤엔 늘 ‘삶이란… ’ 말을 덧붙였다. 그 친구 덕분에 나 역시 꽤나 삶에 대한 고찰을 자주 했었다.
삶이란…삶이란 무엇일까?
호스피스병동에서 일하면서 가끔 그 아이의 말버릇이 떠오른다. 그 친구가 호스피스병동에 있었다면 ‘삶이란…’ 을 수없이 내뱉었을 것이다. 어떤 삶을 살았든 마지막은 오기 마련이고 그 순간은 살아온 날들에 비해 허무한 것 같다. 가족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원히 잠든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수없이 ‘삶이란…’을 내뱉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고 살고 그리고 죽는다. 사람은 왜 사는 것일까. 삶은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어찌됐든 우리는 살아가고 삶이 허무할지라도 살아가는 동안 잘 살았으면 한다.
삶은 짧고 죽음은 그리 멀지 않다.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고 걷고 싶어도 걷지 못하며 살고 싶어도 살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그 사실이 참 두렵다. 마지막 순간에 후회를 남기기 싫은데 어떻게 해야 후회가 안 남을지 모르겠다. 열심히 일하고 살만하니 병에 걸렸다는 환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니 남일 같지 않았다. 그 속에 담긴 후회와 회한이 더 크게 느껴졌다. 환자들이 종종 나에게 조언을 해주는데 주변 사람들한테 잘 하고 즐겁게 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현재에 감사하고 즐겨야한다는 게 와닿지만 그게 참 어렵다.
어떻게 해야 잘 살아가는 것일까? 호스피스병동에 근무하며 내가 내린 결론은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마지막 순간 나는 환자에게 그동안 수고하셨다. 잘 살아오셨으니 가족들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가시라고 말을 전한다. 처음에는 환자와 보호자들을 위로하는 말이었지만 어느 순간 진심이 되어 버렸다. 삶에 정답은 없다. 아니 어떤 삶을 살든 정답이라는게 더 어울린다. 인생에 후회가 남는 삶도 있고 즐겁게 사는 삶도 있고 고생을 잔뜩 한 삶도 있다. 모두가 잘 살아온 것이다.
나는 걱정이 많고 남들과 비교를 잘 하는 편이다. 그래서 항상 불안해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준비했다. 그렇게 잘 살려고 노력했는데 지금까지 삶은 그닥 만족스럽 않다. 지금 이대로라면 마지막 순간에 나는 삶을 즐기며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할 것이다. 그럼에도 잘 살았다. 그동안 수고했다. 내가 죽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길 바란다.
우리는 지금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