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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원사계 Jan 03. 2024

니트족, 공백기, 구애

플라잉 체어 면접 어때요?

최근에 니트족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줄여서 NEET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하는 신조어라고 한다. 니트족이 사회적으로 굉장한 문제라는 뉴스를 봤다. 일하지 않는 청년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네? 와, 요즘 이게 정말 문제이구나. 이거 남 일이 아니네?라고 니트족인 내가 생각했다. 나 역시 니트족에 가까운 사람이다. 어쩌다 보니 경력이라고 할 만한 경력은 이미 4-5년 전에 단절이 되어 버렸다. 간간히 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 삶은 연명해가고 있긴 했다. 그나마도 여의치 않아서 모아뒀던 돈을 야금야금 까먹어가며 어찌 살아야 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몇 해전 운이 좋게 꽤나 괜찮은 직장을 구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코로나로 인한 취업난이 극심하던 때였기에 일자리를 구했다는 기쁨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서른을 넘긴 나이에 좋은 조건으로 재취업을 하다니! 스스로에게 감동한 일이었다. 급여며 회사의 규모이며 뭐 하나 모자람이 없는 곳이었다. 나의 취업에 나보다 좋아한 건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은 이 어려운 와중에 취업을 했다며 너무 기뻐하셨는데 그 모습이 너무 가슴 절절하던 기억이 난다.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며 지내는 그림이었으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내 인생에 그런 클리셰는 없었다. 지나치게 수직적인 조직,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에 점심시간이 되면 밥이고 뭐고 도망을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마음의 병이 점점 심해지더니 몸으로 반응이 올라왔다. 어느 날은 대상포진으로 찾아왔고 어느 날은 원인 불명의 어지럼증으로 찾아왔다. 아아- 몸이 이렇게 신호를 보내고 있구나. 근데 이 나이에 여기를 그만 두면 나 정말 어떡하지? 그보다 두려운 건 부모님이었다. 취업했다고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퇴사한다는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그냥 접시에 코를 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회사에서 6개월 남짓밖에 근무하지 못했다. 이 말은 즉슨 이력서에도 쓸 수 없다는 소리다. 그저 공백기만 늘어났고 허튼짓을 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삶을 전체로 놓고 보면 분명 얻은 것도 많은 소중한 경험이 되긴 하지 취업시장에서는 그냥 헛짓거리일 뿐이었다. 그게 내 마음을 병들게 만들었다. 


면접장에서 구직자는 을중의 을이 된다. 어떻게 해서든 면접관을 사로잡을 구애의 춤을 신명 나는 척하면서 춰야 하는데 이것은 연극이고 하나의 쇼에 가깝다. 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는 차원에서 공백기에 대한 질문을 묻는 건 그냥 법적으로 막아놨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단 3개월, 6개월의 공백기조차 '업무부재'로 여겨버리는 사회는 정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아니, 상식적으로 사람이 일이 안 풀리면 3개월이고 3년이고 공백이 생길 수가 있는 건데 거 참, 너무한 거 아니오?


면접이 잡히면 공백기를 두고 다시 어떤 쇼를 펼쳐야 할지 머리를 굴린다. 니트족이 사회 문제로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에는 바로 이 공백기라는 놈이 아주 클 것이다. 물론 조직 내의 분위기, 말이 되지 않는 급여 수준 같은 것들 또한 원인이긴 하겠다. 생판 모르는 남 앞에 가서 나의 무능함으로 생겨버린 공백기를 어떻게 포장할지, 그리고 내 포장지를 하찮게 여길 그들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아득하다. 한 것이 없다고 해서 내 인생이 반드시 실패한 삶은 아닐 지어인데 취업 시장은 공백이라는 놈을 가만 두지 않는다. 


우리 그냥 이럴 거면 그냥 플라잉 체어에 앉아서 면접 보면 안 될까요? 면접관이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면 플라잉체어가 그들을 물속으로 던져 버리는 겁니다. 결혼하셨나요? 결혼하시면 그만두실 거죠?(풍덩) 공백기동안 뭐 하셨어요?(풍덩) 부모님은 직업이 어떻게 되시죠?(풍덩) 부모님 학력은요?(풍덩풍덩) 이러면 화라도 나지 않을 것 같아요. 면접 보는 것도 화딱지가 나서 그냥 해본 헛소리였다. 지나간 건 다 뒤로 접어두고 우리 그냥 쿨하게 현재만을 바라보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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