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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원사계 Jan 04. 2024

냉이, 수박, 전어, 붕어빵의  공통점은?

제철음식에 미친 사람

계절을 탄다는 말이 있다. 봄 타나 봐, 가을 타나 봐라고 하는데 한때는 나도 계절을 타는 사람이었다. 봄이면 그냥 기분이 좀 좋지 않았다. 황사와 꽃가루 때문에 환기도 시킬 수가 없고 더군다나 요즘은 미세먼지까지 콜라보가 되어서 온 세상이 뿌연 그 느낌이 별로 내키지 않았다. 여름이 유독 길게 느껴지는 해에는 날이 선선해오면 금방 연말이 다가올 것 같은 기분에 가을 역시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여름 탄다, 겨울 탄다는 말은 없을까? 생각해 보면 온도가 양극단에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여름은 너무 더워서 타 죽고, 겨울은 너무 추워서 얼어 죽으니 계절을 타고 말고 할 게 없는 것이지 않을까?


어느 순간부터는 지나가는 계절들이 그리 아쉽고, 붙잡을 수 있다면 붙잡고 싶어졌다. 올여름만 해도 그렇다. 체감온도가 38도까지 올라가는데 조금만 덜 더워져도 더워 죽을 것 같은 시간들이 그리워지는 이상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나도 나이를 먹어가는 것일까? 어릴 때는 여름이 죽도록 싫었는데 지금은 여름을 꽤나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참 신기하게도 여름에 누군가와 인연을 맺으면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여름의 작렬하는 태양을 온몸으로 함께 견디며 눅눅한 습도를 이겨낸 사이에 끈끈한 정 같은 것이 쌓였던 것 같다. 이걸 나는 땀의 연맹이라고 표현한다.


여름이 좋은 또 하나의 이유는 가을이 기다려져서 이다. 좀 전에 가을 싫어한다고 해놓고 가을을 기다린다고? 어폐가 있긴 한데 그렇다. 가을이 좋아진 이유는 선선한 밤공기에 켜켜이 쌓인 추억들이 많이 지면서이다. 한참 술을 좋아하던 시기에는 일을 마치고 노상에 앉아서 별 거 아닌 안주 앞에서 맥주를 도란도란 마시는 순간들을 너무 사랑했었다. 내가 계절을 타지 않게 된 건 말 그대로 계절에 올라타면서부터였다.


주머니가 가벼운 나에게는 지나가는 모든 계절들이 비싸기만 하다. 숨 쉬는 건 공짜 아니냐고? 안타깝지만 그렇지도 않다. 우리는 모두 날이 청명한 가을날 미세먼지 없는 곳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고 싶다. 누가 미세먼지 잔뜩 들어있는 오염 공기를 마시고 싶겠는가. 그러려면 단풍이 멋들어진 산을 가야 하는데 기름은 하나님이 넣어주시는 게 아니다. 깨끗한 공기조차 유료라니! 세상 참 더럽게 불공평하다. 슬프게도 제철에 나는 음식이 그렇게 저렴하지만은 않다. 워낙에 고물가 시대 이기도 하다만. 주머니가 여의치 않은 나로서는 모든 계절을 만끽하는데 드는 추가요금이 너무 눈물 난다.


봄엔 주꾸미 샤부샤부를 꼭 먹어줘야 해. 알에 꽉 찬 걸로 슬쩍 데쳐서 초장 콕 찍어 먹으면. 알지? 무슨 느낌인지? 여름엔 더울 때마다 아이스크림 대신 차가운 수박을 먹어 줘야 하고. 가을은 말해 뭐 해. 전어에 대하에 꽃게에. 내가 바닷가에 살지 않는 게 한이지 뭐. 겨울엔 지폐 몇 장 정도 꼭 들고 다녀야 하잖아. 붕어빵 가게 마주쳤는데 현금 없어서 계좌이체 하기 너무 귀찮지 않아?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이다.


해마다 목표가 있다. 그 해의 계절에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 주머니 사정을 보강할 것! 나에게 주는 특급 미션이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나를 보살펴야 한다는 이야기.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 근데 나는 가성비가 다소 떨어지는 인간이다. 계절마다 원하는 것이 너무 많고 그 계절에 완전히 올라탄 느낌이 들지 않으면 아쉬운 마음만 한 가득이다. 흘러가는 시간들에 아쉬움을 두지 않는 사계절을 보내고 싶다. 돌아오는 봄 두릅과 냉이의 향을 질리도록 마셔보자. 최강의 폭염 아래 수박과 참외로 더위를 달래 보는 거야. 선선해지면 밤공기와 함께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하구이 어때? 한파가 몰아치면 군고구마를 호호 불며 언 손을 녹여주자. 계절을 온전히 느낄 때 이듬해의 그 계절이 기다려진다. 사는 게 제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된다. 이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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