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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원사계 Jan 08. 2024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의 마음으로

나의 면접 준비 일지

수능 일주일 전에도 공부 안 한 사람 손 한번 들어보세요! 저는 지금 한 손으로 타이핑하는 중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랑은 담을 쌓고 지내는 사람이 바로 나다. 수능 공부는 영 관심이 없고 가고 싶은 학교도 없었으니 당연한 노릇이긴 하다. 공부가 그렇게 싫더니 대학에 다서는 이야기가 좀 달라졌다. 취업을 위해서 자격증 시험 준비에 몰두를 했고 학과 점수를 놓칠 수 없으니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 고루한 수능 공부보다는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는 공부가 재미있었다. 당시에는 정말 치열했다. 고등학교 때는 맛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그 이후 공부를 해본 게 언제였더라..


지난주에 극적인 1차 합격 소식을 접하고 주말 내내 온 신경이 곤두서있다. 2024년을 맞이하고 처음으로 받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아니다 놓쳐서는 안 된다는 강박에 밤에 잠도 잘 오지 않는 지경이 되었다. 유튜브에 나와있는 면접 준비 영상을 닥치는 대로 전부 보고 있다. 압박감이 점점 심해진다. 나를 다잡기 위해 얘기해본다. 이거 안되면 다음에 또 기회가 올 거야! 나에게 최면이라도 걸어본다. 이 와중에 기사 하나를 보게 된다. '경력자도 포기하는 취업 한파 온다.' 하하하 욕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나 희박한 경쟁률 속에서 우리나라 청년들 정말 많이 고생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 포함..


대학교 이후에 취업을 위한 자격증 시험 준비를 한 적이 있다. 학교 때의 마음을 되새겼다. 머리에 들어가지도 않는 것을 욱여넣어가며 멱살을 잡고 갔다. 결국엔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원샷원킬 합격을 했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오늘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서 면접 공부를 하고 있다. 이게 그 어떤 공부보다도 참 어렵다.


근래의 취업 시장을 가히 최악이다. 최저임금을 주면서 자격증 200개, 경력 3000년, 인내심은 부처인 직원을 뽑고 싶어 한다. 정작 면접을 가면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어요?라고 물어보는 게 전부인 경우도 허다하다. 그 자리에서 이력서를 급하게 읽는 회사, 자기소개서는 읽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런 줄글을 읽을 만큼의 집중력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안다. 당신들 긴 글 못 읽는 거 도파민 중독이라서 그래!라고 한소리 해주고 싶다. 이런 회사의 특징이 있다. 우리는 한 만큼 챙겨줄 '예정'이다. 우리는 돈을 아끼고 그러지 않아! 네가 잘만 한다면 엄청난 보상을 줄 거야.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렇게 받아가는 직원은 없단다~라는 바이브를 당당하게 보여준다. 하.. 이번에도 글렀구나. 혀를 쯧 차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허탈하다. 내가 제아무리 열심히 준비를 한들 뭐 하나. 정작 반대편에서는 '노예구함'수준의 질 떨어지는 질문만을 던지는데. 이런 면접을 보고 나면 존중받지 못한 느낌 때문에 기분이 영 찜찜하다. 내가 이 정도구나. 나를 나락으로 보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번 면접은 아주 유의미하다. 내가 살아온 궤적들을 확실하고, 화끈하게 인정해 주는 자세에 놀랐다. 무엇 하나 흠을 잡을까 하는 다른 곳과는 달랐다. 면접 전에 이력서, 자기소개서를 꼼꼼하게 본 뒤 허를 찌르는 질문을 던지는데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면접다운 면접, 정말 나를 회사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에티튜드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2차 면접 준비에 만전을 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만전을 기하는 동시에 관심 없는 척을 해본다. 안 좋은 결과를 맞이했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내 마음의 상처를 덜 받기 위해 나는 지금 열심히 하지 않는 중이라고 합리화를 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과가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주특기인 타로한테 자문 구하기를 할까 했지만 이런 중차대한 일을 앞두고는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일일까 두려워 그마저 마음을 접었다. 바늘구멍보다 어렵다는 취업시장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건물사이에 피어난 장미의 자세이다. 아스팔트 틈에서 물도, 볕도 없이 꾸역꾸역 꽃을 피워낸 장미 말이다. 누구 하나 저기에서 꿈틀 거리며 봉우리를 틔우려는 식물에게 관심도 없다. 그러나 끝끝내 봉우리를 피우고 만개한 것은 장미다. 거기 있는 그게 장미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장미다. 내가 결국엔 꽃을 피우게 될 것이라고 믿어 본다.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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