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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원사계 Feb 12. 2024

사회에 복귀하고 느낀 점.

구원은 셀프

하루 종일 누워서 넷플릭스 보기, 침대랑 혼연일체로 꼼짝 하지 않기, 끼니는 배달로 해결하며 에너지를 최소로 아끼기 등등. 크으- 텍스트만 봐도 달콤해지는 문장들이다. 그리고 곧 우리네 휴일에 볼 수 있는 흔한 일들이다. 이것들이 100% 완벽한 행복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월요일에 돌아갈 직장이 있다는 전재 하나면 충분하다. 그렇지만 월요일이 돌아갈 직장이 없다면? 그리고 떨어져 가는 통장잔고가 두려운 처지라면? 무엇 하나 마음 편할 수가 없다. 넷플릭스는 이제 파티원으로 들어간다 해도 한 달에 만 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침대에 누워만 있으면 온갖 잡생각들 때문에 내가 보고 있는 영상의 내용이 온전히 들어오지 않는다. 배달 어플을 켜서 일단 배달팁을 살펴보며 이 가격이 합리적인지, 이 돈은 아끼고 집에 있는 걸로 끼니를 때우면 얼마가 절약되는지 저울질을 시작한다. 이것이 월요일에 갈 곳이 없는 사람의 특징이다.라고 자기소개를 했던 시간들이 정말 길었다. 나에게는 마음이 텁텁해지는 문장들이다.


사정이 이러니 쉰다고 한들 그것은 온전한 쉼이 되지 못한다. 그나마 밖에서 사람들 마주치면서 걷기라도 해야 잡생각이 들지 않는다. 저기 옆에서 흘러가는 강물에 잡생각을 던진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침대와 거리를 두고 지냈다. 한낮의 시간, 식곤증에 몸이 노곤노곤 해질 때 지금 잠깐 누울까?라는 생각이 들면 내 처지의 곤란함을 먹이 삼아 몸집을 키워가는 불면과 마주할 생각이 두려워 정신을 벌떡 차리기도 했다. 아아- 평범하게 사는 거 한번 존나게 힘들다 이 말이다. 남들처럼 출근하고 월급날 기다리면서 일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어서야 되겠어?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특히나 월요일 아침은 쥐약이다. 동네의 골목길을 점령하고 있던 불법주차 차량들은 월요일 아침이면 언제부터 여기 있었냐는 듯이 골목을 훤하게 만들어 준다. 근방 500미터 안에 있는 모든 직장인들이 각자의 회사로 떠나가면 세상에 나 혼자만 침대에 누워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혼자 살면 나 혼자만 견뎌내면 될 일이지만 부모님과 함께 사는 입장에서는 또 얘기가 달라진다. 잔소리하지 않는 부모를 뒀다면 눈치는 가중이다. 차라리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이라도 내줬으면 하는 마음도 슬쩍 피어오른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취준생이라면 이 정도로 불편하지는 않을 거야, 내가 어디 정말 크게 아팠으면 죄책감은 덜 했겠지, 나보다 더 한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자기 위안을 삼아 보지만 사실상 크게 쓸모없는 짓거리였다. 내 눈앞에 있는 현실이 중하지 뭣이 중하것어.


2024년이 되었다고 시상식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들려주던 것이 어제 같다. 근데 벌써 설연휴까지 끝나가고 있는 시점이다. 그 사이에 나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한 줌뿐인 나의 구독자들이라면 잘 알고 있겠지만 그 사이에 어마어마한 면접들을 치러냈고 현재는 직장인 한 달 차가 되었다. 서른 초반의 나이를 품고 있는 중고신입의 위치에서 새로운 직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모든 직원들은 나보다 어리고 얼마 되지 않는 경력을 인정받고 들어온지라 기대의 눈초리 또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되어 있었다. 업무를 배워야 할 건 또 얼마나 많은지.


그보다 문제는 운전이었다. 차를 뽑은 지 채 한 달이 되지도 않은 무렵에 시작한 직장생활이었고 출근길 도로를 감당해 본 경험이 없었다. 면접을 보면서 부랴부랴 운전 연습을 시작했다. 차로는 40분 거리지만 버스로 출퇴근을 했으면 편도 1시간 반은 우습게 걸리는 거리다. 근데 중간에 차를 버리고 싶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냥 버스 타고 올걸. 너무 무서워. 살려주세요 제발. 속으로 엄청나게 외치고 있었다. 차가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보다 제발 이 도로에서 나를 살려주면 감사함을 느낄 것 같았다. 덜덜거리면서 떨리는 손으로 첫 출근을 하던 순간이 기억난다. 온몸에 힘들 바짝 주고 운전을 하니 집에 오면 기절하기 일쑤였다.


너무 오랜 시간을 쉬어서 사회성의 감이 떨어졌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컸다. 그래도 나름 한 따까리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공백이 티가 나면 어쩌지? 그럼 안되는데. 에라이. 그냥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하자. 이런 거, 저런 거, 내가 잘한다고 조금 부풀려서 말한 것들. 당장 거짓말이 뽀록나면 어쩌지? 알려주면 열심히 하겠다고 해버리자. 사람들이 나만 따돌리면 어떡하지? 나도 따돌려 버리자. 마음을 쉽게 먹기로 했다. 힘들게 들어온 직장이니만큼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은 자리이지만 내가 다치면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다. 나를 지키고, 내 자리를 지켜내겠다는 아주 쉬운 개념으로 생각을 해버렸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었던 만큼 사람들 사이에 섞이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또 어려울 것이 있는 것도 아니긴 했다. 내가 부풀렸던 것들 이상으로 잘 해내고 있는 모습도 보았다. 이걸 이렇게 해내네? 그리고 이걸 이렇게 바라봐주기도 하는구나? 나보다 어린 선배들이지만 누구 하나 모난 사람은 없었다. 아직까지 다들 발톱을 숨기고 있는 것 일수도 있긴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걱정들은 기우이고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었다. 나만의 세계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서는 틀을 깨버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깨지 못하면 발버둥 칠수록 깊게 빠지는 퀵샌드에 빠지는 꼴이 되어 버린다. 옆에서 도와주려던 사람마저 퀵샌드가 집어삼킬 수 있다. 구원은 셀프이다. 스스로 박차고 나와야 한다. 다만 퀵샌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요령이 필요하다기보다 그냥 눈 딱 감고 나와버려야 한다는 것이 차이점이겠다.


해가 바뀌자마자 삶이 180도 변해버렸다. 신년맞이 대대적인 면접, 목숨을 건 운전 연습, 직장에서 살아남게 프로젝트까지. 혼이 쏙 빠졌다. 동트기 전에 일어나는 인생을 언제 마지막으로 살아봤었지? 고질병 같던 무기력함이 싹 달아났다. 이 삶이 권태로워지는 순간이 오지 않게 나를 잘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하루 종일 누워서 넷플릭스 보기, 침대랑 혼연일체로 꼼짝 하지 않기, 끼니는 배달로 해결하며 에너지를 최소로 아끼기 등등 이제는 내게 달콤함으로 다가오고 있다. 월요일에 갈 곳이 있는 자의 특권이다. 사회생활은 모름지기 쓴맛을 감당하며 버티어내고 찰나의 달달함을 돈으로 사는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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