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원사계 Mar 16. 2024

바람에 날려 부적이 내 방에 들어올 확률

천 가지 재앙을 벌떼처럼 막아주소서

평지에서 운동화 신고 발목 접질리는 사람? 그것도 여러 번이나 그런 사람이 있다고? 그게 나다. 밥 잘 먹고 배 두드렸는데 자기 전에 급체하는 사람? 그게 또한 나다. 평지에서 발을 수차례 접질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예고 없이 찾아온 급체에 얼굴이 시퍼렇게 질리는 것 또한 예삿일이 아니었다. 나열하자면 수도  없이 많겠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내 인생에는 예상 범주 밖의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일까. 삶이 이렇다 보니 다른 일들에 크게 놀라지 않고 무던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긴 하다. 살다 보면 인간의 이해 범주의 바깥에 있는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아니 그런데, 이번 일은 너무 범주에서 벗어났다.


화장대 구석에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이 있다. 어느 날 그 구석에 손을 넣었는데 봉투 하나가 꼬깃꼬깃 접혀 있는 것이다. 이게 뭐지? 내가 이런 걸 넣어놨었나? 하도 오래 손이 닿지 않아서 기억도 나지를 않는다. 평소 같으면 다시 구석에 박아두고 쳐다도 보지 않았을 것이지만 왠지.. 궁금했다. 그 안에 내가 술 먹고 꿍쳐둔 만 원짜리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괜한 기대감으로 봉투를 열어보니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기대한 지폐가 아닌 험하게 생긴 부적이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살벌하게 생긴 부적!! 배우들의 연기는 과장이 아니었다. 너무 놀라니 손에서 부적을 탁 하고 놓치며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아니 내 방에 왜 이런 게 있어? 이게 대체 뭔데…!! 살벌하게 생긴 부적이 그것도 두 장이나 들어 있다. 이미 바닥에 떨어져 있는 심장을 다시 원위치에 욱여넣고 부적을 다시 쳐다봤다. 우리가 생각하는 직사각형의 부적도 아니었다. ”아니 부적이 이렇게 크다고? “ 양손을 쫙 펼친 사이즈의 부적이었다. 부적은 피로 그린다던데. 설마 냄새가 나나? 코를 괜히 가져가 보기도 했다. 무섭지만 난생처음 보는 부적에 요리조리 뜯어보고 살펴보는 이상한 심리가 작용했다.


그런데 이 부적 어딘가 묘하게 허술하다. 자세히 보니 손으로 그린 부적이 아니라 프린터기가 인쇄한 부적이다. 어느 공장에서 대량으로 막 찍어낸 티가 많이 난다. 설마 이거 인터넷에 파는 건가? 급하게 이미지 검색을 해본다. 척척박사 네이버는 못 찾는 게 없다. 역시나 시중에 팔고 있는 부적이었다. 부적에 쓰인 한자는 천재설소였다. 천재설소? 천 가지 재앙이 눈 녹듯 사라진다는 뜻이다. 개운 부적 또는 액막이 부적이라고 한단다. 다른 한 장을 검색해 보니 이 친구는 벌부적이라고 부른다. 벌 받는 부적인 줄 알고 가슴이 순간 내려앉는 줄 알았다. 벌부적은 좋은 일이 벌떼처럼 오는 부적이라고 하는데..


천 가지 재앙을 막아주고, 좋은 일이 벌떼처럼 몰려오는 부적이 내 방에 우연히 날아 들어왔다. 아니 사실 날아들어왔을 리가 만무하다. 걸어가는 모든 걸음이 자갈밭이요, 진흙밭인 나를 걱정하는 누군가의 간절함이 날아 들어온 것이다. 용의자는 두 명이다. 엄마 아니면 아빠. 엄마가 이 살벌한 부적을 어디서 살 수 있을까? 엄마를 추궁해 본다.


“엄마, 부적 혹시 엄마가 사다 놓은거야?”

“부적? 무슨 부적? 아니? 그게 뭔데?”


엄마는 전도연보다도 연기 배테랑이다. 속으면 안 된다. 다시 추궁을 한다.


”내 방에 이런 게 있었어. 엄마가 사놓은 거 아니야? “

“내가 이런 걸 어디서 사.”


눈빛을 보니 정말 모르는 모양이다. 그리고 엄마가 말을 얹었다.


“찝찝하면 그냥 버려. 구태여 방에 둘 필요는 없어.”

“그럼 아빠가 넣어 둔 건가? 아빠한테 물어볼까?”

“됐어. 뭐 하러 그래. 그냥 버리고 싶으면 버려.”


아빠랑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는 게 가장 좋다. 엄마는 아빠와의 설전을 벌이는 걸 굉장히 고달파한다. 사실 엄마의 반응을 보니 범인이 누군지 알 수밖에 없었다. 아빠였다. 애당초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아빠이기도 했다. 친구들이랑 산속 여기저기 잘도 돌아다니는 양반인데 어느 절에 들어가서 사 온 것 같은 모양이다. 어차피 범인이 밝혀진 마당에 엄마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 추궁을 하지 않기로 했다. 평소 딸내미 방 근처에도 오지 않는 사람이 저 부적을 사서 내 방구석에 쑤셔 넣어두는 그 마음이 어떠했을꼬.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디에 둬야 이놈이 찾지를 못할까, 여기일까? 여기 넣을까? 고민했을 모습을 생각하니 짠하기도 하다.


평소 큰 대화를 하지 않는 부녀지간이다. 하는 일은 잘 되고 있냐, 요즘 밥벌이는 하고 있는 것이냐, 힘들면 말을 해라. 등등하고 싶은 말은 억만금처럼 쌓여있겠다만 서로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이럴 거면 시집이라도 갔으면 좋겠는데 도통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으니 답답했을 노릇이었겠지. 어느 날 내 방에 우연처럼 들어온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는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응원이었다. 잘 될 거야, 잘하고 있어. 백 마디의 응원보다 하얀 종이봉투에 꼬깃꼬깃 접혀있는 두 장의 부적이 모든 말을 대변하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목표는 직장인이면서 작가인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