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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Jul 25. 2022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최근 부산에 새로 오픈하는 서점의 브랜딩 디자인 작업을 맡게 됐다. 서점의 얼굴이 될 로고를 디자인하는 일이었는데 오랜만에 하게 된 로고 작업에 잘하고 싶은 마음이 브랜드를 이해하는 일보다 먼저 달려 나갔다. 첫 번째 제안 로고는 서점 이름을 듣자마자 떠오른 이미지를 그대로 일러스트 프로그램에 옮긴 디자인이었는데 ‘나왔다’라고 자신했던 나와 달리 다른 디자인을 더 보고 싶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1차 제안에서 만족스러운 피드백을 얻지 못한 후 서점 이름에 담긴 의미, 서점이 위치하게 될 동네의 분위기, 주로 방문하게 될 연령층, 앞으로 서점에서 하게 될 프로그램 등을 정리해 공유해 주셨던 노션 페이지를 처음부터 다시 살폈다. 주택가에 위치해 가족 손님이 많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되는 곳인데 내가 처음 작업한 로고는 차갑고 도시적인 느낌의 기하학적 로고였으니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이전 제안에서 놓쳤던 부분들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지만 새로운 디자인이 바로 떠오르지 않아 며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에서는 여러 가지 형태가 둥실둥실 떠다녔지만, 선뜻 손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며칠의 시간이 지난 후 뒤죽박죽이었던 머릿속 이미지들을 하나씩 꺼내 보았다. 떠오르는 로고 형태를 연필로 스케치해보고 그중 괜찮다고 느낀 디자인 몇 개를 추려 다시 그려 보았다. 그래도 확신이 들지 않아 지인에게 작업 중인 로고를 보여 주고 조언을 구했다.

 이미지만 전달해도 간판으로 만들어졌을 때 어떤 분위기일지 알 거라고 생각한 것도 내가 한 실수 중 하나였다. 내 눈에는 그림만 보아도 간판으로 구현됐을 때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지지만,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1차 제안을 하고 난 뒤에야 깨닫고 두 번째 제안에서는 간판, 윈도 사인, 명함, 스티커, 스탬프 등 이해를 도울 제품 목업도 함께 작업했다.

 브랜딩 로고 제안은 한 번 컴퓨터 앞에 앉으면 서너 시간이 훌쩍 흐르는 상황을 며칠 동안 반복하는 일이었다. 작업을 마치고 나면 온몸이 뻐근해지는 걸 느꼈지만 쉬기보다 내가 디자인하는 걸 이렇게 좋아하는구나 싶어 뿌듯하기까지 했다.

 혼자 일하다 보면 일하는 시간을 적절히 분배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는데 이 무렵이 딱 그랬다. 로고 작업 외에도 또 다른 외주 작업이 있어서 이 일과 저 일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느라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을 제외하면 망부석처럼 앉아서 컴퓨터를 하거나 제품을 검수하고 포장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던 로고 제안이 두 번째 제안에서는 심볼부터 기본 로고, 응용 로고, 컬러 제안까지 대부분 제안한 방향 그대로 확정되었다.

 제안을 마무리하고 제작물 발주를 마치고 나니 머리가 조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전부터 머리가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지만, 긴장이 풀린 뒤에야 두통이 이미 많이 진행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정수리를 중심으로 양쪽이 조이는 느낌이 들고 고개를 돌리거나 움직이면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이들의 수선한 소리를 비집고 ‘삐’하는 이명이 들리고 한쪽 귀가 꽉 막혀 말을 할 때마다 목소리가 밖으로 퍼지지 못하고 몸 안에서 울렸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 건 아닐까 싶어 주말 하루는 이른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자보기도 했는데 잠을 오래 자고 타이레놀을 먹어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결국 신경외과를 찾았다.

 진단명은 ‘긴장성 두통’이었다. 근육이 굳거나 뭉치면서 신경이 눌리게 되면 청각에는 이상이 없는데도 이명이 들리고 귀가 먹먹해지고 머리 전체가 조이는 증상을 겪게 된다고 하셨다. 긴장성 두통은 2주 동안 세 번의 주사 치료와 물리치료, 약물 복용을 병행하면서 차츰 나아졌다.

두통으로 병원에 다니는 걸 지켜본 지인들이 “요새 너무 바빠서 그런 거 아니야?”라고 할 때마다 “에이, 이 정도로 아프면 저는 일을 하면 안 되죠. 그동안 일이 너무 없었나 봐요.”하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지난 몇 주간의 내 모습을 떠올려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중간중간 기지개를 켜 어깨와 목의 긴장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몸을 움직였다면 이렇게까지 아프진 않았을 텐데….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어서 너무 애쓰다 보면 탈이 나기도 한다는 걸 이번 일을 겪으며 깨달았다.

 “혼자 있을 때 점심은 어떻게 하세요?” 얼마 전 만난 지인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던 게 생각났다. 혼자 먹는 점심을 위해 손수 요리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질문을 들은 전날도 일하다 점심을 놓쳐 오후 3시에 라면을 끓여 먹었기 때문이었다. 지인의 질문이 메아리처럼 맴맴 돌아 오랜만에 부엌에 섰다. 올리브 오일을 두른 팬에 편마늘을 넣고 볶다가 얇게 썬 새송이버섯과 미리 삶은 파스타 면을 면수와 함께 섞은 다음 바질 페스토를 듬뿍 넣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아서 만들 일이 없던 메뉴를 내 손으로 나를 위해 만들어 신혼 때 장만했던 파스타 볼에 담아 싹싹 비웠다. 바질 향이 입안 가득 채워졌다.

 이제는 손목에 찬 워치가 ‘잠시 일어나 몸을 움직이세요’라고 알리면 일부러라도 몸을 일으키고 있다. 그 김에 화장실도 한 번 다녀오고 유튜브에서 본 어깨 스트레칭 동작도 따라 하면서 몸의 긴장을 풀어준다. 가능하면 제때 점심을 챙기려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려면 당장의 성과를 위해 달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쉬어갈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몸이 하는 말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는 걸 배우고 있다.


*나를 위해 차린 바질페스토 파스타

*작업을 마친 후 읽게 된 부산의 서점을 조명한 도시 탐사 매거진. 다양한 컨셉의 부산서점 속에 내가 브랜딩 한 서점이 담긴 모습을 상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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