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다 Sep 09. 2022

나의 핸드드립 분투기

 맛있는 커피를 알아볼 줄만 알았지, 맛있게 내릴 줄은 몰랐던 내가 갑자기 핸드드립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 시작은 한 작가님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린 드리퍼 때문이었다. 작가님이 만 원에 판매한다고 올린 중고 드리퍼는 치앙마이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이너프 포 라이프 빌리지에서 자체 제작한 제품인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린 컬러에 ‘ENOUGH FOR LIFE’라는 레터링이 무척 예뻤다. 핸드드립의 핸도 모르는 데다 가지고 있는 거라곤 신혼 때 사놓고 몇 년째 선반에 장식품처럼 놓여 있던 드립 포트가 전부였는데 중고 드리퍼를 사게 되면서 다른 핸드드립 용품들도 주문했다. 만 원짜리 드리퍼를 쓰기 위해 62,300원을 써가며 드립 서버와 필터, 핸드밀, 원두 보관용 밀폐용기를 주문했다. 편의점 반값 택배로 드리퍼가 도착하자마자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핸드드립 용품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옆 동네에 있는 단골 카페에 달려갔다.


 처음 계획은 핸드드립을 자주 하는 책 친구에게 핸드드립 팁을 배우기 위해서였는데 둥그런 테이블 위에 늘어선 드립 용품들을 보고 사장님도 자연스레 합류하셨다. 초록 체크무늬가 있는 키친 크로스까지 챙겨 ‘짠’하고 펼쳐 놓았는데 핸드드립이 처음인 내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지만, 친구와 사장님의 눈에는 보이는 실수들이 발견됐다. 첫 번째는 내가 산 드리퍼는 2~4인용인데 드리퍼에 끼울 필터는 1~2인용으로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는 점이었고 두 번째는 드립 서버도 1~2인용이라서 작을 뿐 아니라 커피를 내릴 때 용량을 계산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었다. 드리퍼도 커피 전문 브랜드에서 만든 제품이 아니다 보니 ‘과연 이걸로 커피 맛이 잘 날까’하고 염려하는 마음들이 이어졌다.


 드리퍼를 가만히 보시던 사장님이 드리퍼에 따라 맛에 차이가 있는지 따로 비교해 볼 일이 없었는데 잘 되었다며 내가 산 드리퍼를 가지고 가 손수 핸드드립 커피 두 잔을 내려 주셨다. 같은 원두, 같은 용량, 같은 물 온도, 같은 시간. 같은 조건으로 내린 커피의 유일한 차이는 한 잔은 내가 산 드리퍼로 내리고 다른 한 잔은 카페에서 사용하고 있는 하리오 V60 동 드리퍼로 내렸다는 점이었다. 큰 차이가 없다면 그냥 써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셨는데 셋이 나란히 커피를 시음해보니 같은 원두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맛 차이가 확연했다. 커피용품 전문 브랜드에서 철저히 계산해 만든 드리퍼의 맛이 훨씬 좋았다는 점은 말하지 않아도 알 테고…. 드리퍼를 사면서 핸드드립 용품을 장만하게 됐는데 드리퍼를 바꿔야 할 상황이 너무 황당하고 재밌어서 셋이서 깔깔깔 웃었다. 내가 산 드리퍼는 물구멍이 세 개가 나 있으니 나중에 화분으로 쓰기로 하고 며칠 후 코로나에 걸리면서 격리 기간에 사장님이 알려주신 커피용품 사이트에서 드리퍼와 드립 서버, 필터를 주문했다. 후일담을 말하자면 내게 드리퍼를 판매하신 작가님도 실은 예뻐서 샀으며 한 번도 커피를 내려 보신 적이 없다고 하셨다.


 그날의 에피소드를 나눠 가지며 사장님이 커피 클래스를 한 번 여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얼마 후 카페 휴일인 일요일 아침 8시에 다섯 명의 단골손님들이 모였다. 그날 함께 있었던 책 친구가 사장님과 일정을 조율하고 함께 들을 친구들을 섭외한 덕분이었다. 커피를 배우고 싶은 단골손님 네 명과 마침 그날이 카페가 오픈한 지 1주년 되는 날이라서 커피는 못 마시지만 사진 찍어주러 오겠다며 찾은 친구까지 다섯 명이 모여 케이크를 선물하고 사진을 찍고 사장님의 열띤 강의를 들었다. 원두 가공방식과 가공방식에 따라 대체로 어떤 맛이 나는지 듣고 실제로 각각 다른 가공방식으로 만든 원두를 핸드드립으로 내린 후 비교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코로나 확진 후 격리를 마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어서 미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원두 맛이 어쩜 이렇게 다르냐며 모두가 감탄할 때 나 혼자 커피 산미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모든 커피 맛이 다 똑같은 것처럼 느껴졌으니…. 그날의 당황스러움은 또 다른 에피소드가 되었다.


 핸드드립은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 원두 용량과 물 온도, 내리는 시간만 잘 지켜지면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하셔서 이론적인 부분을 배우고 시음해보는 시간만 가졌는데 다음 날 자신 있게 도전한 핸드드립은 오합지졸 그 자체였다. 핸드밀로 간 원두는 입자가 너무 고와 물이 잘 빠지지 않았고 드립 포트를 너무 높이 들어 물을 붓자마자 원두가 사방에 튀었다. 분명 사장님이 내릴 땐 원두가 빵처럼 둥그렇게 부풀었다 천천히 가라앉았는데 내가 하면 흙탕물처럼 변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클래스를 마치고 원두를 사겠다는 말에 아직 미각이 회복되지 않았으니 나중에 사고 대신 이걸로 테스트해보라며 주신 사장님의 원두가 맛있어서 엉망진창으로 내린 커피 맛도 제법 그럴싸했다는 점이다. 며칠 뒤 친구와 카페를 찾아 사장님께 핸드드립 후기를 전하며 또 다른 실수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바로 사다리꼴로 접을 필요가 없는 필터를 엉뚱하게 접어 버린 것이었다. 측면에 난 빗금 자국이 ‘여기를 접으세요’라는 뜻이라는 것도 친구가 얘기해줘서 알았으니… 사장님, 저는 핸드드립 실습이 꼭 필요합니다.


 첫 번째 핸드드립을 통해 필터 바닥 면을 접을 필요가 없다는 점과 드립 포트를 높이 들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두 번째 핸드드립은 분명 처음보다 나을 거라는 자신이 생겼다. 이번엔 용량도 정확히 지키려고 저울을 꺼내 원두 용량을 정확히 20g으로 맞추고 핸드밀 굵기를 조정한 후 원두를 힘껏 갈았다. 물 온도는 90도. 새로 장만한 드리퍼도 세라믹 소재라서 미리 드리퍼를 데우기 위해 필터를 끼운 다음 뜨거운 물을 부었다. 친구는 이 과정을 ‘린싱 작업’이라고 했다. 린싱 후 원두를 붓고 드립 포트를 낮게 든 후 물을 천천히 부었다. 필터 바닥을 접어 물이 천천히 내려갔던 처음과 다르게 이번에는 물이 잘 내려왔다. 핸드드립 후 얼음을 가득 채운 잔에 드립커피를 따라 마셔보니 색이 조금 연한 편이었지만 끝맛이 산뜻하고 맛이 좋았다. 왜 이렇게 색이 연할까 싶었는데 필터를 버리면서 확인하니 원두 입자가 인스턴트 커피보다 굵었다. ‘그래서 물이 빨리 내려갔구나….’


 이제 다음 스텝은 나에게 맞는 원두 굵기를 찾는 여정이 될 것 같다. 사장님께서 다음 클래스에서는 같은 원두를 각각 다른 굵기로 간 후 시음해 보자고 하셨으니 내 입에 맞는 원두 굵기를 알고 나면 핸드밀을 사용할 때 유용할 것 같다. 의욕은 넘치지만, 실력은 한없이 모자란 열혈 수강생을 위해 직접 내려 보게도 해주신다고 하셨으니 수업을 듣고 나면 좀 더 자신감이 생길 것 같다. 사장님은 핸드드립에 특별한 기술은 없다고 하셨지만, 초보 중 초보인 나에게는 하나하나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은데 그게 싫지 않다.


 디자인이 예뻐 사게 된 드리퍼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핸드드립 용품들이 결국 아무 쓸모없게 된 웃기고 어이없는 에피소드 덕분에 10가지가 넘는 원두를 하나하나 직접 로스팅해 손님에게 선택의 기회를 넓혀 주시는 커피에 진심인 사장님께 커피를 배우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됐다. 새로운 걸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에 즐거움을 느끼게 된 요즘,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되고 그것이 확장되어 배움과 경험으로 이어진 데에는 허당인 단골손님을 향한 사장님의 친절과 다정함이 크다. 그리고 그 곁에는 사장님과 단골손님을 이어주는 추진력 넘치는 친구의 에너지도 빼놓을 수 없다. 서로의 귀한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마음 덕분에 핸드드립 분투기는 오늘도 순항 중이다.



*쓸모없게 되어버린 나의 드리퍼

*일요일 오전 8시, 카페 휴무일에 열린 특별한 커피 클래스


*이게 아닌데… 첫 핸드드립 결과물

*두 번째 핸드드립. 원두가 맛있으면 커피도 맛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처음이든 괜찮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