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 애트우드의 『미친 아담』 3부작
마가렛 애트우드(Margaret Atwood, 1939~)는 캐나다의 대표적인 페미니즘 작가이다. 현재 82세의 나이에도 열심히 활동하는 현역 작가이다. 국내에는『시녀 이야기』(The Handmaid's Tale)로 많이 알려져 있고, 최근 SF 문학이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다른 작품들도 많이 번역되기도 했다.
『시녀 이야기』는 기독교 근본주의를 지향하는 길리어드에서 출산의 도구로 활용되는 여성들의 이야기로, 대표적인 페미니즘 디스토피아 작품이다. 워낙 설정 자체가 파격적이라서 그런지 드라마로도 제작되기도 하였다. 페미니즘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많은 여성 독자들이 『시녀 이야기』를 읽으면서 애트우드에 관심을 가졌다.
사실 애트우드는 『먹을 수 있는 여자』(The Edible Woman)와 『고양이 눈』(Cat's Eye)과 같이 현실 배경인 작품과 시집도 많이 출간해서, SF 페미니즘 소설가로 애트우드를 한 번에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이번 글에서는 애트우드의 또 다른 SF 장편 『미친 아담』 3부작(MaddAddam trilogy)을 소개하고자 한다.
『미친 아담』 3부작은 『오릭스와 크레이크』(2003), 『홍수의 해』(2009), 『미친 아담』(2013)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의 10년 동안 장편 SF 3부작을 집필한 셈이다. 한 편당 6~700쪽으로 상당히 두꺼운 책이며 세계관이 은근 복잡하다. 그래서 3부작 전체를 다 읽지 않고 한 편만 읽는 경우도 많다. 참고로 모두 민음사에서 번역되었지만, 『오릭스와 크레이크』는 차은정 번역가가, 『홍수의 해』와 『미친 아담』은 이소영 번역가가 옮겼다.
*본 글에는 마가렛 애트우드의 『오릭스와 크레이크』, 『홍수의 해』, 『미친 아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릭스와 크레이크』는 예전에 민음사에서 『인간 종말 리포트』로 번역되어 나온 적이 있었다. 2019년에 개정판이 나오면서 『오릭스와 크레이크』로 원제 그대로 옮겨 재번역되었다. 제목에 나온 ‘오릭스’와 ‘크레이크’는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그런데 왜 『인간 종말 리포트』로 번역된 것일까?
그 이유는 작품 내용에 인류가 멸종하는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인류 멸망을 다룬 영화만 몇 편 봐도, 세계가 망하고 인간 대부분이 죽어버린 세상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멀쩡하던 세계가 갑자기 망해버린 이유는 핵전쟁 발발, 좋은 의도로 개발한 신약의 엄청난 부작용, 갑자기 지구를 침범한 외계 생명체 등 할리우드 영화 몇 편만 보면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뻔하다.
『오릭스와 크레이크』에서 인류 멸망의 원인으로 크레이크가 만든 환희이상 알약이 꼽힌다. 먹으면 성관계 시 성병도 예방하고 성적 충동도 낮추면서 그와 동시에 테스토스테론도 높여주고 젊음도 유지하는 이른바 만병통치약 같은 알약이다. 알약 하나만 먹어도 피임이 가능한 엄청난 약인데, 큰 부작용이 있었다. 만약 『미친 아담』시리즈가 좀비물이었다면, 환희이상 알약이 인류를 좀비로 만들어버렸을 테지만, 다행히도 끔찍하게 죽은 뒤에 시체가 부활하지 않는다.
그런데 크레이크는 환희이상 알약을 만들면서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정말로 몰랐을까? 그리고 인류가 망한 원인을 환희이상 알약으로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아마 3부작을 전부 다 읽었다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오릭스와 크레이크』에서는 두 가지 시점이 번갈아서 나온다. 하나는 신약이 개발되기 전의 과거(지미)와 다른 하나는 세상이 망한 뒤의 현재(눈사람)이다. 3부작의 첫 시작이지만, 작품의 설정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작품이 아니다.
순차적으로 세상이 망하는 과정을 천천히 서술했으면 좋겠는데, 초반부터 망하기 전/망한 후의 상황이 번갈아가며 나오고, 그에 따라 작품의 서술자가 계속 바뀌니, 중반까지 읽지 않는 이상 전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하기 힘들다. 물론 후반부로 가서, 크레이크가 개발한 환희이상 알약 덕분에 인류가 멸종하게 되면서, 두 시점의 이야기가 연결되기는 한다.
내가 창조한 것이지만, 사람을 이 땅 위에서 쓸어 버리겠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렇게 하겠다.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되는구나.
창세기 제6장 7절
『오릭스와 크레이크』가 세상이 망하기 직전을 보여줬다면, 『홍수의 해』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보여준다. ‘홍수의 해’라는 말을 보고, 기독교 신자라면 노아의 방주가 떠오를 것이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이렇다. 신이 인간의 악행을 보고 분노한다. 몇 명의 인간만 나쁜 짓을 한다면 그들만 없애면 끝이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악인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신은 싹 다 물갈이를 하겠다는 의도로 홍수를 일으킨다. 신은 유일하게 착한 노아에게만 방주를 만들어 거기에 가족들과 각 동물들 한 쌍씩 타라고 말한다. 당연히 신의 말을 착실히 따른 노아는 유일하게 홍수에서 살아남는다.
『홍수의 해』에서는 '홍수'는 인류를 없앤 재앙을 은유하는 단어다. 그렇다면 작품에서 나타난 홍수란 무엇일까? 물어볼 필요도 없이 환희이상 알약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환경오염이 가속화된 건 기본이고, 빈부 격차, 인신매매(특히 아동 성매매) 등 각종 악행들이 많은 세상을 알약 하나로 싹 쓸어버린 셈이다. 전작에서 오릭스가 아동 포르노 사이트에 출현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처럼, 『미친 아담』 3부작에서는 여성에 대한 성착취가 사회문제로 많이 등장한다.
『홍수의 해』에서는 새로운 주인공으로 여성인 토비와 렌이 나온다. 앞서 말한 성착취의 피해자인 동시에, 새로운 단체인 ‘신의 정원사’의 멤버가 되기도 했던 주인공이다. 신의 정원사는 흔히 디스토피아에 나오는 사이비 종교 단체라 할 수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 단체가 극단적인 환경주의 단체라서 겉보기에는 과학기술에 반대하고 동식물을 보호하는 평화로운 곳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초반만 읽으면 전작의 설정은 연결되지만 등장인물이 전혀 다른 작품으로 볼 수 있겠지만, 중반부부터 전작의 인물들이 언급되기 시작한다. 결말은 종말 전에 살았던 구 인류 일행과 크레이크가 만든 신인류(크레이크의 아이들)와 본격적으로 마주하면서 끝나게 된다.
『미친 아담』 3부작 전체를 비교했을 때, 『홍수의 해』는 에코페미니즘적인 요소가 가장 많이 보이는 작품이다. 우선 신의 정원사의 대표자 아담 1이 성경 구절을 교묘하게 바꾸면서 연설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특히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자주 비판한다. 또한 작품의 서술자가 여성이고, 전작보다 여성 본인이 당한 폭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여성들 간의 연대도 보인다.
주 하나님이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를 흙으로 빚어서 만드시고, 그 사람에게로 이끌고 오셔서, 그 사람이 그것들을 무엇이라고 하는지를 보셨다.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동물 하나하나를 이르는 것이 그대로 동물들의 이름이 되었다.
창세기 제2장 19절
아담은 살아 있는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고, 미친 아담은 죽은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줍니다(『오릭스와 크레이크』 365쪽).
애트우드의 『미친 아담』 3부작의 최종장이자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가 다 밝혀지고 전작에서 뿌린 떡밥을 회수하는 작품이다. 미친 아담은 『오릭스와 크레이크』에서 멸종 마라톤이란 게임의 설정으로 나온다.
창세기에 신이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동물들에게 이름 짓는 권한을 부여한다고 나온다. 그런데 미친 아담은 그 내용을 비틀어서 ‘죽은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다고 한다.
멸종 마라톤이라는 기이한 게임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지 않지만, 『미친 아담』에서 나온 크레이크가 환희이상 알약을 만든 이유를 파악하면, 이 게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다. 작품의 마지막답게 신의 정원사의 정체도 나온다. 물론 『홍수의 해』의 등장인물들 이야기가 대부분이라서, 후반부에서야 독자들이 궁금했던 것들의 정체가 나온다는 단점이 있다.
사실 크레이크도 신의 정원사 못지않게 굉장히 사이비 교주 기질이 강한 인물이다. 크레이크는 인류 대멸종 시기에 사망했지만, 본인이 만든 인류에게 ‘신’ 수준으로 숭배를 받는다. 잘 생각해보면, 크레이크가 신이 인간을 창조하듯, 신인류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악행을 저지르는 구인류들을 약 하나로 청소하고, 새로운 인류를 번성시켰다. 그렇다면 『오릭스와 크레이크』의 눈사람과 『홍수의 해』주인공들은 신에게 선택받은 노아 같은 존재인가.
크레이크가 의도했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구인류와 신인류가 공존하게 된 새로운 세상이 나타나게 된다. 막바지에는 토비 일행이 임신하게 되어서 혼혈 아이도 낳게 되고, 그동안 겪었던 시간을 기록한 토비의 책으로 마무리 짓는다.
애트우드는 누구를 미친 아담으로 설정했을까? 약 하나로 인류 대멸종을 일으킨 크레이크? 『홍수의 해』챕터 시작마다 열심히 연설한 아담 1? 아니면 크레이크가 만들었다는 신기하게 생긴 신인류? 미친 아담이 과연 누구인지 작품에서 밝혀지지 않지만, 아마도 미친 아담은 새로운 세상에서 살게 될 인류의 시초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 세상은 아담의 질서를 따르지만, 미친 아담은 그것을 거부하고 이전과 다른 새로운 질서를 만든 최초의 인간이니까.
『미친 아담』 3부작은 간혹 가다 헷갈리는 부분이 많아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하기 힘들다. 오죽하면 『미친 아담』 앞부분에 전편 줄거리 요약이 있을까.
그러나 작품에 담겨 있는 메시지는 오늘날 기후위기, 혐오범죄, 무분별한 기술 남발, 경제공황 등 많은 문제를 겪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전하고 있다. 특히 환희이상 알약으로 인해 대규모 전염병이 생긴 것은 마치 코로나 바이러스를 떠올리게 한다.
『시녀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미친 아담』 3부작에 도전해보기를 권한다. 한 편 선택해서 읽어도 좋고, 전편을 다 완독해도 좋다. 그나저나 환희이상 알약이 현실에도 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파란색 꽈추(?)를 가진 신인류는 모르겠지만, 환희이상 알약이 안정 + 각성 계열 약을 섞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쩌면 환희이상 알약이 실제로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마가렛 애트우드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Margaret_Atwood
참고자료
대한성서공회. 『새번역 성경』
https://www.bskorea.or.kr/bible/korbibSearchlist.php
마가렛 애트우드. 『미친 아담』. 이소영 옮김. 민음사. 2019.
____. 『오릭스와 크레이크』. 차은정 옮김. 민음사. 2019.
____. 『홍수의 해』. 이소영 옮김. 민음사.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