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과 서점
동네서점 대표를 인터뷰 한 기사를 보면, 향후 동네서점을 운영하고 싶거나 할 계획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에 관한 질문이 나온다. 대부분 ‘서점 운영은 어렵지만 그래도 보람찬 일이다’, ‘서점의 이상과 현실은 다르기 때문에, 쉽게 생각하고 운영을 시작하면 안 된다’라는 식의 답변이 나온다.
물론 저 반응은 어느 정도 좋게 포장된 것이라서, 실제로 동네서점 사장님께 직접 여쭤보면 그분의 매우 현실적인 반응을 볼 수 있다. 나는 남의 서점만 많이 가지 말고 이 참에 직접 서점을 창업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자주 들어서, 자주 가는 서점의 사장님에게 그 이야기를 했었다. 그분은 “누가 그런 소리를 하냐!”라고 흥분을 했고, 나는 바로 서점 운영에 대한 꿈을 접었다.
대부분 사람들도 동네서점의 운영이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할 정도인데, 대형서점보다 스케일이 작은 동네서점에서 누가 대박을 바라겠는가. 그렇지만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릴 시기에도 새로운 서점은 탄생했다.
퍼니플랜에 따르면, 2022년에 9.4% 정도 동네서점 수가 증가했다고 한다. 물론 팍팍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한 곳도 많지만, 의외로 새로운 서점도 자주 등장했다. 책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 자신만의 서점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중에도 우리에게 익숙한 유명인들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 문재인 전 대통령이 동네서점을 열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책을 많이 읽고 책 추천도 자주 하는 정치인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이 서점을 창업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한 때 정치인으로 이름을 알렸던 사람이 서점을 연다고 하니, 서점 대표도 같이 하고 있는 유명인들이 떠올랐다.
TV 프로그램에 나온 연예인들부터 유명 작가, 교수까지 의외로 유명인이 동네서점을 차린 케이스가 많다. 실제로 동네서점에서 해당 연예인을 볼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서점에 방문하면 연예인의 공간에 초대를 받은 느낌에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서점을 운영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연예인이 지적여보이기도 하다.
유명인이 책 한 권을 추천하면, 그 책에는 ‘ㅇㅇ이 추천한 책’이라고 문구가 뜬다. 온라인 서점 홈페이지에 광고가 나오고,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유명인의 이름이 박힌 띠지가 둘러져 있는 책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유명인의 이름이 걸린 책이 많이 팔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에 어떤 작가가 책 추천을 했는데, 그 책이 일시품절이 되기도 했었다. 왜냐하면 책 주문량이 책 재고 수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책은 대중 독자들이 잘 안 읽을 것 같은 책인데, 누가 언급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아무래도 유명인이 동네서점을 운영하면, 해당 인물의 팬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책을 많이 구매하고 읽게 되어, 지금보다 독서문화를 확장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그런데 과연 유명인이 서점을 운영하면, 해당 서점에 사람들이 많이 방문할까?
내가 자주 가는 서점 중 한 곳은 유명 교수가 운영한다. 이 분이 서점을 운영하면서 항상 하는 말은 ‘지속가능한 적자’이다.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많은 저서를 출간한 작가인 그가 왜 서점 운영에 적자를 보고 있을까? 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업이 있고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은 사람이 동네서점을 운영해도 흑자는커녕, 지속가능한 적자를 메꾸며 버티고 있다. 다른 유명인은 어떤 상황인지 모르지만, 몇 년을 운영해도 서점에서 큰 수익을 얻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서점에 방문해서 꼭 책을 구매하는 것도 아니며, 다독가가 책을 구매해서 읽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책은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고, 전자책 구독 OTT 서비스에 한 달에 일정금액을 지불하고 무료로 읽을 수 있다. 머리 아프게 책을 읽지 않고 편하게 유튜브에서 10분짜리 요약 영상을 보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전 국민이 다 아는 유명인이 동네서점을 연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의 서점을 방문할 이유가 있을까?
위에 인용한 동네서점지도를 개발한 남반장이 “어떤 책방이 살아남던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유명인이 운영한다고, 공간을 멋들어지게 꾸며놓는다고 지속 가능성이 생기는 건 아니다. 결국 책방지기가 이 일을 얼마나 하고 싶어 하는가, 얼마나 끈기 있게 책방을 운영해나 가는가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책방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건 결국 사람이다”
유명인이 운영하는 곳은 다른 서점보다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개업한 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손님들이 많이 찾아올까? ‘책방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건 결국 사람’이라는 말처럼, 동네서점을 운영하는 데 있어 서점 주인과 손님이 가장 중요하다.
유명세 때문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지만 정작 구매할만한 책이 별로 없는 곳, 책 보다 다른 분야가 더 눈에 들어오는 곳도 서점이라면 다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는 동네서점 매력은 책과 사람이 적절한 인연을 맺기에 적절하다는 점이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서점이든, 인기 있는 사람이 운영하는 서점이든, 좋은 책과 만날 수 있는 곳이 나에게는 가장 좋은 서점이다.
참고자료
김보현. “[인터뷰] 주식회사 ‘동네서점’이 말하는 ‘팬데믹 시대, 동네서점의 존재이유’”. 비즈한국. 2021. 10. 22.
남반장. “동네서점 트렌드 2022”. 동네서점지도(bookshopmap). 2023. 01. 03.
윤수경. “문재인, 유시민, 김영하가 추천하면 뜬다” 서울신문. 2022. 09. 16.
최원형. “문재인 전 대통령, 동네책방 연다… ‘책방지기’로 주민과 소통”. 한겨레. 2023.1.16.
이미지출처
Pixabay로부터 입수된 Victoria_Watercolor님의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