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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레보보봉 Dec 24. 2022

나는 서점에서 수업을 듣는다

동네서점의 모임 - 강의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다음 해를 기다리는 시기에 동네서점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여전히 서점 운영을 하며 책을 판매하고 있는 곳이 많겠지만, 내년에 진행할 북토크, 강의, 독서모임을 준비하기도 한다.


나는 동네서점 모임에 자주 참석하는 편이다. 올해는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룬 강의를 많이 들었고, 앞으로도 꾸준히 강의를 들을 생각이다. 학창 시절 때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국어, 수학, 영어를 배우고, 대부분 대입과 관련한 시험을 준비한다. 대학생은 수업선택에 있어 조금 자유롭긴 하지만, 취업을 위한 공부에 압박을 받아 점수를 잘 주는 수업이나 취업에 도움을 줄만한 수업을 선택한다.


학교 밖에서 수업을 들으려면 학원을 등록하면 되지만, 우리에게 학원은 입시, 취업, 자격증 시험에서 합격하기 위해 다니는 교육기관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시험과 관계없이 뭔가를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굳이 JLPT와 JPT에 응시하지 않더라도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서 일본어 학원을 등록하고, 취미반으로 피아노 학원이나 발레 학원을 다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학원은 본격적으로 무언가에 대해 배우기 위해 등록하는 경우가 많아서, 동네서점에서 열리는 강의와는 차이가 있다. 수강료도 서점에 비해 학원이 비싼 편이다. 과연 동네서점에서 열리는 강의는 어떨까? 내가 동네서점에서 수업에 참여한 경험을 토대로 특징을 자세히 살펴보자.





1. 학교, 학원에서 들을 수 없는 강의


요즘 초, 중, 고등학교에서 다양한 과목을 배우고 아이들을 위한 체험학습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기본적인 것은 필수과목인 국어/영어/수학에 맞춰져 있다. 대학에서는 수강신청이라는 수업 선택권이 있지만, 학과에 따라서 필수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 정해져 있고, 학생입장에서는 성적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전공과 관계없는 교양수업이라고 해도, 인기 있는 과목은 사람들이 몰려서 콘서트 티켓팅 수준으로 신청하기 어렵다.


게다가 대학교 등록금은 너무 비싸다. 아무리 훌륭한 교수님이 많이 계셔도, 도서관에 책을 원 없이 읽을 수 있어도, 우리에게 등록금은 너무 큰 짐이다. 모든 학생들이 국립대를 다니지도 않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생 때 나는 교양수업을 많이 듣지 못했다. 듣고 싶었던 강의가 있긴 했지만, 수강신청에서 제일 먼저 마감되거나 혹은 학점 따기 너무 어려운 수업이었다. 주로 전공수업을 많이 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조금 후회가 된다.






왜냐하면 교양수업에서 다룬 철학, 문학이론, 역사 등 아는 바가 많으면, 책을 좀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에서 ‘타자’가 그렇게 많이 다뤄지는 이유가 뭘까? 과거의 안 좋은 역사를 왜 지금도 반복하고 있는가? 뉴스에서 보는 저 사람들은 시위를 계속 진행하는가? 지금도 끊임없이 떠오른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할 수 없다. 만약 내가 교양 수업을 많이 들었으면, 위의 질문에 나름대로 해답을 제시할 수 있지 않았을까?


다행히도 동네서점에서 대학교 등록금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인문학 강의를 들을 수 있다. 강사도 전공자나 해당 분야에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맡기 때문에 전문성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꼭 전공자여야만 강의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이 가르치는 수업에 대해서는 진지한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인문학 강의가 아니더라도, 글쓰기/출판/서점 운영 강의도 있다. 수강은 안 했지만 내가 본 가장 인상 깊은 강의는 ‘욕으로 배우는 외국어 강의’였다. 외국어 학원에서도 이런 주제의 강의는 없을 것 같은데, 동네서점에는 있다.






2. 어렵지도 쉽지도 않은 적정한 수준


대부분 학원은 초급부터 전문가 수준까지 강의 레벨을 나누어, 수업을 준비한다. 일본어 문자도 모르는 사람한테 일본 드라마나 원서를 읽게 할 수는 없는 것처럼, 학원에서는 아예 레벨테스트를 시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강의를 등록하게 한다. 그러나 인문학 같은 교양 수업인 경우, 수업 수준을 딱딱 나눌 수 있을까?


대학에서 교수님들은 학생들에게 친절하게 지식을 떠먹여 주지 않는다. 이 말은 교수님들이 학생에게 불친절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대학은 지식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다.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를 예시로 들자면, 중고등학교에서는 「소나기」의 내용과 해석을 그대로 알려줄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서는 「소나기」를 각자 읽고 분석하는 것이 과제로 주어질 것이며,  교수님은 과제 코멘트를 하면서 「소나기」를 분석한 국문학자들의 주장을 알려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소나기」가 아니라,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배운다면 어떨까?






교수님에 따라 다르겠지만, 학부생을 대상으로 엄청 어려운 텍스트를 각자 알아서 읽고 분석하라는 과제를 내는 분은 적을 것이다. 칸트와 헤겔은 인문학을 공부한다면 한 번쯤은 공부해야 할 저명한 학자이다. 그러나 그들이 쓴 책을 무작정 읽기 시작하면, 전공자가 아닌 이상 분명 한글로 적혀있는 문장인데 하나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십중팔구 나 같은 인간은 ‘개별적인 것이 보편적이다’라는 말도 안 되는 문장을 보고, 뭐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채 책을 바로 덮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나는 어려운 원전을 가르치는 쉬운 강의가 매우 반갑다. 그러나 유튜브에서 10분가량의 동영상과 TV 프로그램의 교양 강의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어려운 고전을 쉽게 해석해서 떠 먹여 주는 것은 너무 좋은데, 핵심 내용을 제외한 나머지 내용은 생략한다. 이건 대중교양서에서 느꼈던 아쉬움과 비슷하다. 이해가 되고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데, 한편으로는 뭔가 논할 내용이 많은 것 같은데 빼버린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동네서점 강의에서도 이런 아쉬움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그래도 전공수업 못지않게 최선을 다해서 가르쳐 준 선생님도 있었고, 아예 원전을 직접 읽어가며 하나하나 내용을 살펴보는 수업도 있었다. 공부는 항상 어렵지만, 강의가 공부의 길잡이 역할을 해서, 초반에 책을 덮는 경우가 많이 줄었다.


 




3. 강의를 듣는 사람이 있는 이유


올해 단골 서점에서 1월부터 12월까지 꾸준히 강의를 들었다. 그 강의는 서점 사장님이 한 달에 한 번 혼자서 읽기 힘든 책을 대중독자의 수준에서 설명하는 교양 강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쉽고 재미있는 대중교양서가 아니라 거의 학술서에 가까운 책이 대부분이라서, 나 혼자 읽기에는 정말 어려웠다. 그래도 강의를 듣고 책을 읽으면 나처럼 맨 땅에 헤딩하는 고생은 안 해도 된다.


서점 사장님이 바쁜 와중에도 밤 중에 강의를 꼬박꼬박 하는 이유를 생각해 봤다. 얼마 전 마지막 강의가 끝나고 몇몇 분들의 소감을 들었는데, 누군가가 자신을 발전시키고 싶어서 강의를 들었다고 말했다.






교양을 순전히 자신의 박식함을 뽐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긴 하다. 나 역시 그런 부류에 속한다. 그런데 자신의 발전을 위해 들었다는 그분의 동기는 단순히 지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은 아닌 듯했다. 그분이 어떻게 발전하고 싶은지는 지금도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인간의 지적욕구가 타인에게 똑똑하다고 인정받는 것을 넘어서, 세상을 알고 싶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 본다. 만약 그런 욕망이 없었다면, 인문학이란 단어 자체가 사라졌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무엇이며, 인간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 지에 대해서, 중학교 2학년도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솔직히 이런 궁금증을 풀려고 대학/대학원에 들어가도 답을 얻을 수 없다. 오히려 뜬구름 잡는 질문이라고 타박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저런 질문은 죽기 전까지 계속 떠오를 것이다. 어떤 책에도 저 물음에 관한 정답은 없겠지만, 적어도 책을 읽으면 과거의 학자들이 내놓은 해답을 읽어보며 내 생각을 넓힐 수 있다.


그러나 학자들의 글은 나 같은 범인이 읽기에는 너무 어렵다. 아마 오랫동안 연구에 몸 담은 학자들도 자신의 해석과 연구가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지적 욕구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공부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인문학의 위기라고 말하는 이 시대에도, 인문학 책과 강의를 찾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동네서점에서 열리는 독서모임에 대해 써보고 싶다. 동네서점에서 진행하는 모임이 다양하기 때문에, 이 글이 모든 동네서점을 대변한다고 할 수 없다. 그래도 학교 밖에서도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들을 동네서점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모두들 크리스마스 잘 보내시고 2022년 한 해 잘 마무리하셨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Photo by Belinda Fewing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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