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자리_혼자서도 행복한 당신이 되기를
어느 날 함께 드라마를 보던 J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이별 후 혼자 남겨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 몰라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본 직후였다.
“너도 저런 적 있어?”
“저런 경험은 다 있지 않나? 어릴 때. 근데 이제는 혼자서도 잘 놀아.”
나는 이제 혼자서 잘 놀 뿐만 아니라 혼자 보내는 시간을 즐긴다. 처음부터 내가 이런 사람이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절대 아니다. 그래서 사람은 어느 정도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의지만 있다면.
10년을 만난 H와 헤어진 후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특히 주말은 시간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번 겨뤄보자 싶을 정도였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나는 이별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주말이면 아침 일찍 거리로 나왔다. 그런데 주말을 하루 종일 홀로 보낼 수 있는 곳이라는 게 마땅치 않았다.
약속을 잡기 위해 애쓰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나중에는 친구를 만나는 일조차 소모적이게 느껴졌다. 이미 결혼을 한 친구 입장에서는 32살에, 그것도 10년을 만난 남자와 헤어진 내가 한심할 수밖에 없었다. 또 애인이 있는 친구를 주말에 만나기란 하늘에 별 따기. 솔로인 친구를 만나는 건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위로는 받을 수 있으나 어쩐지 우울함이 커졌다.
그때 내가 선택했던 방법은 마냥 걷기였다.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도 없던 나는 이곳 저곳을 하염없이 혼자 걸어다녔다. 그렇게 밤 늦은 시간까지 걷다가 집에 들어가면 데이트를 하고 돌아온 줄 아는 가족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오랜 연애는 일상을 비롯해 가족과 지인들까지 모든 것을 공유하는 일이기에 이별 이후의 시간을 감당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여러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내가 나를 돌보지 못했다. H와 이별 후 많이 울지 않았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주변 사람들에게 감추기 위해 애쓰느라 슬퍼할 겨를이 없었던 거다.
그때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지금도 그 계절이 오면 가끔 가슴이 아린다. 아픈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인데, 심장 깊은 곳이 간지러운 듯 쓰라린 듯 미세하게 옅은 통증이 이어진다. 바람의 농도가 짙은 날, 발 밑에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날이면 통증의 빈도가 잦아진다. 이 계절만 되면 문득 들려오는 노래소리에도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여전히 나는 그 계절이 오면 또 한번 이별을 겪는다.
그렇게 잘 지내는 척했는데, 어느 날은 길을 걷다 그냥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꽤 늦은 밤이었고 사람이 없는 골목길이었다. 어두운 길을 혼자 걷고 있는 내가,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 있는 내가 안쓰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제대로 슬퍼할 수조차 없었다는 사실을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이해한 순간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슬픔이 가슴에 사무친다는 게 어떤 건지 온몸으로 이해한 날이다.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살아갔지만, 실은 힘들었던 거다. 이별을 견디느라 부단히 애쓰고 있었던 거다.
그날 이후로는 오히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담담하게 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였고, H가 없던 아주 어렸던 시절에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봤다. 많이 걸었고, 수시로 영화를 봤고, 자주 서점에 들렀다. 나중에는 혼자 쇼핑을 하고, 혼자 여행을 다녀오는 것까지 힘겹지만 한 걸음씩 발걸음을 내딛딛을 수 있었다.
20대의 나는 스스로를 굉장히 주체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직업의 특성상 어딜 가든 당당하고 당차게 행동해서 그게 나라고 착각했던 거다. 사적인 영역에서 내가 얼마만큼 의존적인 사람이었는지 새삼 깨닫았다.
서른이 넘을 때까지 혼자 영화를 본 적도, 쇼핑을 한 적도, 밥을 먹은 적도 없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심지어H와 헤어지고 처음으로 떠난 해외여행 길에, 공항조차 혼자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망연자실했다. H와는 단 한번도 같이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간 적이 없었으니까.
서툴지만 하나씩 혼자 해 나가기 시작했다. 극장에 가고, 밥을 먹고, 어딘가를 걸었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시간들 속에서 오롯이 나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 낯선 시간들이 소중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깊은 가을이 오면 혼자 오래 걷는다.
내가 H와의 만남뿐만 아니라 헤어짐까지도 선물이었다고 말하는 건 그런 이유다. 그 시간이 나를 얼마나 성장하게 했는지 지금은 고마울 따름이다.
어느덧 마흔을 넘긴 지금, 이제는 오롯이 혼자 행복할 수 있을 때 둘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둘이 있을 때만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자신의 행복을 상대에게 맡겨버리는 거다. 내 행복의 주체는 당연히 내가 되어야 하므로, 둘이 아니라 혼자 있을 때에도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금 혹시 이별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많이 걷고, 느끼고, 생각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혼자할 수 있는 것들이 하나둘 늘어간다는 건 그만큼 행복할 거리가 많아진다는 의미니까. 혼자만의 시간도 영원하지 않다. 언젠가 둘이 될, 혹은 셋, 넷이 될 그날을 기약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마음껏 즐기기를. 그 시간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 정말 좋은 사람이 눈앞에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