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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앤라라 Mar 08. 2022

사랑이 변한다는 건

마음의 자리_이별에 대한 예의 

이별에도 예의가 있어야 한다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네 마음은 그 자리인데, 나 혼자 변해버렸다는 것이 어쩐지 의리를 져버리는 일 같아서. 

우리가 사랑했던 시간이나 추억을 망쳐버렸다는 죄책감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아서 머뭇거렸다. 

사랑이 식었다는 것도, 더는 이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네가 그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처럼, 실은 나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마음 한 구석에 여전히 좋았던 시절이 생생하게 남아있으니까. 



스무 살, 영화 <봄날은 간다>를 보고 나와서 한참동안 사랑에 대한 논쟁을 벌였다. 

"라면 먹고 갈래"보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말에 집착했던 건 그때 우리가 헤어짐이 익숙하지 않은 나이였기 때문이다. 

사랑을 시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그 끝을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나이여서 가벼운 시작보다 허무한 끝맺음에 집착했다. 어떻게 사랑이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가.






20대를 보내면서 사랑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그 시절 나는 사랑이 변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변하는 것이라 주장하곤 했다.

우리가 나눈 사랑은 그 시절 그때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고, 그 시간을 지나쳐온 우리가 변한 것 뿐이라고. 

사람이 변해서 사랑도 변하고, 관계도 변한 것이니, 우리의 사랑을 그 시절 그 자리에 그대로 놓아둔 채 이별하자고. 말도 안되는 궤변이라며 분노에 찬 표정을 짓던 너는 결국 이별을 받아들였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감정을 표출하는 것보다 감추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며 자라온 탓에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이별을 고하는 일은 힘겨울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별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나 또한 한때 누군가에게 이렇게 울부짖으며 매달렸던 기억이 있으니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이 변하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서 답답하고, 그렇게 단념을 배워간다.   



언젠가 한 TV프로그램에서 카톡으로 전달하는 이별 방식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였다. 

일방적인 통보는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게스트를 보며, 과연 카톡으로 전하는 이별 방식이 정말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생각해봤다. 나 또한 이런 이별 방식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별을 전달하는 방식이 뭐가 그리 대단히 중요할까. 

만나서 정중하게 이제 그만 헤어지자고 말하면 예의 있는 것인가. 



모든 이별에는 이별로 향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이 있다. 

어제까지 좋았는데 갑자기 오늘 카톡으로 이별을 통보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서서히 멀어지는 과정이 있고, 그 과정 끝에 누군가 먼저 이별을 말한다. 

한쪽은 여전히 열렬히 사랑 중인데,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했다고 가정해보자. 

상대가 변해가는 과정을 눈치채지 못했다면 그것 또한 이별의 이유가 된다. 

사랑이라는 건 온 감각이 그 사람에게로 향하는 것인데, 상대의 마음이 변해가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면 그것도 지나치게 이기적인 사랑이니까. 

배려 받지 못한 사랑에 상대가 먼저 지쳤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별을 전달하는 방식이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어차피 좋은 이별이란 없고, 이별 방식과 상관없이 상처는 받는다.






지금 이별을 고민하고 있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다면, 

상대를 위해 하루라도 빨리 정리된 마음을 전달해줘야 한다. 

미안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는 것이 오히려 상대를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일 수 있다. 

사랑이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스스로를 무너뜨릴 만큼 힘든 시간이다.  

그러니 아직 사랑이 남아있는 사람에게 이별로 향해 가는 과정을 너무 오래 겪게 하지는 말자. 



이별에 대한 예의는 전달하는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이별로 향해 가는 과정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에게 멀어져가는 내 뒷모습을 너무 오래 지켜보지 않게 하는 것, 

변해버린 마음을 단념할 수 있게 시간을 주는 것, 그게 이별에 대한 진짜 예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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