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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앤라라 Oct 14. 2021

관계에 틈이 벌어지는 순간

마음의 자리_주변 관계가 힘든 당신에게

학창시절 C와는 둘도 없이 친한 사이였는데, 어느날부턴가 만남 자체가 어색해졌다. 특별히 사이가 틀어질 만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저 만나지 못한 시간 사이로 틈이 벌어진 거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서로의 일상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하나를 이야기하기 하기 위해 열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


그래서 우리는 일상을 공유하는 대신 아주 오래전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여러 번 우려먹어 단물이 쏙 빠진 오래된 추억담이지만 덕분에 웃으며 만남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어김없이 헛헛한 마음이 일었고, 몇 번 더 그 헛헛함을 경험한 뒤로는 만남 자체를 주저하게 됐다.


생각해보면 그날 나는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 같다. 상사와의 틀어진 관계 때문에 괴로워 친구를 만나면 하소연을 늘어놓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승진을 했다며 월급이 생각보다 많이 오르진 않았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용기가 없었다. 훗날 그 친구가 당시에 아픈 어머니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는 걸 또 다른 친구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러니까 그때 우리는 각자의 아픔을 애써 감추고 의미 없는 웃음으로 시간을 때우다 헤어진 셈이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가슴 깊은 곳에 감춰둔 채.




어른이 된다는 건 좋고 싫음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좋아도 실실실, 싫어도 실실실, 실없이 웃게 되는 거라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좋고 싫음의 경계가 더 명확해졌던 거다. 때때로 싫은 나를 완벽하게 감추고 괜찮은 척 상황을 견뎌내는 것. 그날 나는 승진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C의 들뜬 마음을 망치고 싶지 않았고, C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을 거다.


상대에 대한 배려라는 이름으로 자기 자신을 애써 감춰냈다. 찌질한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못난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그냥 웃었다. 내 안에 숨겨둔 나의 가장 싫은 모습이 혹여나 드러날까봐 경직된 마음으로 그렇게 만남의 시간을 버텼다. 버티는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만남은 헛헛해질 수밖에 없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관계에 대한 불확실성은 자꾸만 우리를 멈칫하게 만든다. ‘내 이야기를 해도 될까’ 머뭇거리는 동안 관계는 조금씩 더 벌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내 못난 치부를 드러내며 속내를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가 별로 없다. 그렇지만 아쉽지는 않다. 꼭 속내를 모두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적당한 거리가 주는 안정감.  아주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거리가 주는 안정감이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내 감정 상태 하나하나, 일상의 소소한 경험 하나하나까지 공유하며 누군가를 의지한 채 살았던 시간보다 훨씬 편안하다.


주변에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꽤 많다. 멀어진 틈을 메우기가 버거워서, 멀어진 틈을 인정하는 것이 두려워서 부단히도 애를 쓴다. 그러나 그 틈은 혼자만의 노력으로 메워질 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벌어진 틈 사이에 산뜻한 바람이 불어오기도 하니까. 관계에 연연해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대신 이제는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조금 더 가져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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