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일주일에 두 번씩 운동 겸 취미 생활로 무술 도장을 다니고 있었다. ‘가라테’라는 일본 무술이지만 미국식과 합쳐져 전통 무술이기보다는 체력 기르기, 호신술, 게임 등이 접목된 수업이었다. 그날은 각종 장애물을 설치해 두고 빠르게 코스를 통과하는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 장애물 중 하나가 무릎 높이의 설치물을 제자리 뛰기로 뛰어넘는 것이었다. 1시간 동안 잘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차를 탔는데, 남편이 아까 제자리 점프를 할 때 착지가 잘못된 것인지 허리 쪽에서 ‘뚝’하는 이상한 소리가 났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계속해서 허리가 불편하다는 것이다. 운동하다 보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일단 자고 나면 좋아질 거라며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침대에 똑바로 누우면 통증이 심해진다며 거실 소파에 앉아 자겠다고 했다. 이불을 한 아름 끌어안고 소파로 향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한밤중에 달리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 혹시 몰라 그의 옆에 핸드폰을 놔두고, 자다가 너무 아프거나 불편하면 방에 있는 내게 전화하라고 했다. 오직 만일에 한해서였지, 거실에서 침실까지 몇 걸음이나 된다고 설마 전화할 일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
서랍장을 뒤흔드는 진동 소리에 잠이 깼다. 핸드폰에는 남편의 이름이 떴다. 전화를 받자, “거실로 나와봐. 나 못 움직이겠어.”라는 남편의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뭔 일인가 싶어 거실로 나가 불을 켜니, 아까 잘 때 앉았던 그 자세 그대로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는 남편이 겁에 질린 얼굴로 몸이 마비되었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통증이 너무 심해 아예 움직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일어설 수 조차 없어 소파에 앉은 채로 내게 전화를 한 거라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남편의 몸을 둘러업고 일으켜 세워주고 싶었지만, 의지와 달리 내 몸은 그의 무게를 감당하기에 너무나 보잘것없었다. 그래서 911에 전화하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끄덕이던 남편도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부르지 말라고 했다. 구급 대원들이 집에 와도 억지로 자기 몸을 꺼내 들것에 눕혀 구급차에 실을 텐데, 지금 몸 상태로는 그 고통이 어마어마할 것 같다는 것이다. 차라리 어차피 똑같이 아픈 거, 그나마 내가 조절하며 조금씩 움직여서 우리 차로 응급실에 가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911을 부르면 그 금액이 상상 이상이라 부담이 된다는 이유도 있었다.
남편이 몸을 의지할 수 있는 지팡이 같은 게 필요했지만, 집에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급한 마음에 생긴 것 비슷한, 보안 방지용으로 쓰고 있는 막대기를 그에게 건넸다. 밤중에 침입하려는 도둑을 막기 위해 손잡이와 바닥 사이에 비스듬히 막대기를 고정시켜, 문을 열 수 없게 하는 도구다. 지팡이로 쓰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길이도 짧았지만, 집에 있는 도구는 그것뿐이었다. 비명을 지르며 내 손과 막대기를 이용해 소파에서 몸을 떼어낸 남편은 차가 있는 곳까지 아주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평소라면 5초 만에 탔을 차, 이번에는 10분 가까이 걸린 것 같다. 다행히 집에서 응급실은 멀지 않았다. 10분 이내로 갈 수 있는 장소에 있었다.
차를 세우고 휠체어를 가져와 남편을 태워 병원으로 들어갔다. 엑스레이 촬영을 위해 도와줄 건장한 남자 간호사가 나타났다. 그래도 보통 사람을 앞에서 예의를 지키려는 남편이지만 움직이는 게 너무나 아팠는지 자기도 모르게 욕을 하고 사과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힘들게 엑스레이 촬영을 했건만 응급실 당직 의사는 사진상 잘못된 게 아무것도 안 보인다며, 그저 근육이 심하게 놀란 것 같다고 진통제와 근육 이완제를 줬다. 나는 뼈라도 부러진 줄 알았는데, 이상소견이 없다는 의사의 말이 의심스러웠지만 한편으로 다행이라며 다시 남편을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반쯤 향했을 때, 응급실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아까 봤던 당직 의사였다. 다시 응급실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놀란 마음에 다시 병원으로 향하자 로비에 의사가 마중 나와 있었다. 우리를 보내고 다시 한번 엑스레이를 확인했는데, 아주 미세하게 척추뼈 중 어긋난 부분이 보인다고 했다.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서는 MRI를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MRI까지 찍고 나자, 그가 통증을 호소하는 부분에 확연한 문제가 나타났다. 당직 의사는 본인은 정형외과 전문의가 아니라 자세히 말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우리가 찾아갈 수 있는 정형외과 두 곳의 연락처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4시였다. 해가 밝자마자 바로 정형외과로 향하고 싶었지만, 미국에서는 응급 상황이 아니면 예약 없이 병원을 가기도, 전문의를 만나기도 쉽지 않은 시스템을 갖고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보험을 받아주는 곳인지, 의사가 비어있는 시간대가 있는지 등 뭐가 맞아야 갈 수 있는데, 집에서 제일 가까운 병원에서는 아예 신규환자를 받고 있지 않았고, 그다음 병원은 빨라도 3일 뒤에 의사를 볼 수 있었다. 아플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미국은 정말 거지 같은 의료 시스템을 갖고 있다.
근육 이완제와 진통제로 간신히 3일을 버티다 전문의를 만났고, 물리치료 병원을 소개받아 다닌 후 현재는 걷는 데 문제가 없어질 정도로 나아진 상태다. 수술을 하기 쉬운 부위도 아니고, 자연치료가 되는 부분도 아니라 남편은 꾸준히 통증이 있는 부분을 운동과 스트레칭으로 관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우리는 도장을 그만두었고 보험 적용해서 300만 원 가까이 되는 진료비를 청구받았다. 내가 직접 운전해서 응급실에 가도 이 정도인데, 그날 911에 전화까지 했다면 도대체 얼마가 청구될지 상상하기도 싫다. 미국에서 아프면 죽어야 된다는 말을 농담처럼 했는데, 농담이 아닌 것 같아 무서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