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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봇 Sep 03. 2024

한국이 좋은 나라라 나에게 독이 되었다

미국으로 이사를 온 지 꽤 시간이 흘렀다. 미국 생활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실제로 이곳에 와 살기 시작한 후 계절의 흐름을 몇 번 봤다는 걸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빠르게 흐른 시간에 깜짝깜짝 놀라고는 한다. 


사실 고백할 것이 있다. 미국으로 거처를 옮기고 나름 짧지 않은 시간 살고 있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이 나라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은 그나마 나아졌지만 미국에 이사 온 순간부터 꽤 오랜 시간 매일 같이, ‘이 나라는 도대체 장점이 뭔가’를 자주 떠올릴 정도로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냈다. 


미국으로 이주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애초에 아무 관심 없던 나라에, 제대로 된 정보도 없이 이사를 온 게 화근이었고, 때문에 처음부터 정착지로 생각한 적이 없던 곳이라 늘 마음이 붕 떠 있는 채로 살았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가족. 친구들이 미국 생활에 대해서 물어보면 열정적으로 때로는 반쯤 포기한 모습으로 미국 생활이 얼마나 불편한 지 불만을 한가득 쏟아내고는 했다. 사실 현지인인 남편 덕에 정말 편히 누리고 있는 게 많은 데도 말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많은 상황에서 한국과 비교가 되는 턱에 미국에서는 왜 이런 것도 안될까, 이곳의 시스템은 왜 이 모양일까 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고는 했다.

 

그런 나에게 누군가 말했다. 오히려 한국이 좋은 나라라 너에게 독이 된 것 같다고. 

깨끗하고 편리한 교통 시스템에, 예약 없이 쉽게 갈 수 있는 동네 병원들, 신속한 공무처리에, 넘쳐나는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들, 전화하면 금방 오시는 수리 기사님, 밤늦게 사람들이 거리에 다니는 게 이상하지 않은 나라. 정말 자랑할 만한 한국의 장점들이다. 해외 생활을 해 본 사람들, 아니 굳이 이민까지 아니더라도 장기 체류를 해 본 사람들은 한국이 얼마나 말도 안 되게 편리한 부분이 많은 지 뼈저리게 알 것이다.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을 가 봐도, 일반 식당부터 중요한 공무 처리까지 한국만큼 속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그래서 그런 신속함과 편리함에 익숙해져, 조금만 무언가 늦어져도, 조금만 더 일처리가 복잡해도, 조금만 시스템이 불편해도 참을성이 금방 바닥을 쳐 불평불만을 입에 담게 된다. 한국의 편리함에 길들여져 버려, 이런 것들이 당연해지도록 뒤에서 자신을 갈아 넣으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 둔감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편리해지려면 그만큼 다른 사람이 고생해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를 나는 좀 늦게 깨달았다. 야근이 별로 없는 남편의 미국 회사를 칭찬함과 동시에, 이 나라는 왜 이렇게 늦게까지 여는 업체가 없냐며 얼굴을 찌푸렸고, 워라밸이 있어 좋다는 에어컨 수리 기사 친구에게는 다행이라며 웃어주고는, 우리 집 에어컨이 고장 났을 때는 수리공을 왜 며칠씩 기다려야 하냐며 남편에게 짜증을 냈다. 내가 조금 불편하기에, 일하는 사람들이 가족과도 충실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을 간과하고 말이다. 


이런 불편한 게 당연한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작은 거에 감사해하는 반전이 있다. 음식이 빨리 나오면 놀라워하고, 수리 기사가 약속한 시간에 집을 방문하면 고마워한다. 내가 사는 곳이 시골이라 이곳 사람들이 더 강한 참을성을 보여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긍정적인 태도와는 거리가 좀 있는 사람이라 이런 생활에 적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지만, 애초에 밝고 좋은 생각만 하는 이들은, 같은 이민자여도 나처럼 불만을 입에 담기 전에 감사해 할 수 있는 장점을 더 누렸을 것이다. 


한국이 너무 빠름과 편리함을 추구한다는 사람들의 말에 ‘그게 뭐가 어때서? 그래서 좋지 않나?’라고 생각했는데, 좋은 것은 맞지만 문제는 빠름과 편리함만을 추구하게 됐을 때 생가는 부작용이었다. 이런 사회적 부작용에 대해서는 다큐와 뉴스에서 많이 다뤘음에도 워낙 익숙한 나머지 체감이 덜 되었는데, 의외로 외국에 살며 그것에 길들여져 부정적인 에너지를 내뿜고 있는 나를 보고, 이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일반화시켜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만, 미국 생활을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주로 그 이유를 밖에서 찾았던 게 사실이라, 이제야 비로소 그 시선을 나에게 돌리고 불평하던 입을 닫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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