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봇 Sep 19. 2024

미국 시골에서 제일 무서운 소리

미국살이 초반에는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 중 가장 무서웠던 건 역시 ‘탕탕’ 거리는 소리였다. 한국에서라면 별로 신경 쓰지 않았을 소리지만, 이곳에서는 이게 총소리인지 폭죽 소리인지 타이어 펑크 나는 소리인지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안전하다고 믿고 있는 지역임에도, 총격 사건이 잊을만하면 지역 뉴스에 나왔기 때문에, 늘 밖에서 총소리 비슷한 게 나면 곤두섰다. 숲이나 둘레길을 걸을 때도, 주변에 야외 사격장이나 사냥터가 있으면 ‘탕탕’ 거리는 소리에 박자를 맞추며 걸었다. 지금은 아주 가까이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면 전보다는 덜 신경 쓰게 되었다. 그런데 근래 아주 낯선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우리 집에서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집 안이 아니라 뒷마당이다. 


이른 아침, 쓰레기 통을 내놓기 위해 뒷마당으로 갔는데 ‘칵칵’ 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났다. 새소리도 아니고 물건이 바람이 흔들리는 소리도 아닌,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집 안에 있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지만, 집 밖으로 나가면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거슬리는 소리였다.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천천히 집 주변을 걷다가 진물이 잔뜩 흐르는 나무를 발견했다. 울타리 바로 옆에 심어져 있는 나무였다. 아주 높이 자란 세 그루의 소나무로, 우리 집 영역에 있는 나무다. 거기서 바로 그 ‘칵칵’ 대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무가 말을 할리도 없고 스스로 움직여 소리를 낼 리도 없으니, 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는데도 내게는 여전히 나무가 어떻게 그런 소리를 내는지 미스터리였다. 내가 마당에 서서 한참 동안 안 들어오자 따라 나온 남편 역시 그 소리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낯선 소리지만 어릴 때 들어본 적이 있는 소리라며 골똘히 생각하다, 나무 곳곳이 작은 점 모양으로 파여 있는 걸 보고 바로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아냈다. 나무에서 나는 소리는 맞지만, 소리는 나무가 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나무속으로 들어가 그걸 갉아먹고 있는 벌레였던 것이다. 


이들은 딱정벌레의 일종으로 잘 다듬어진 나무보다 자연 그대로의 나무를 좋아하는지, 나무속으로 파고 들어가 나무가 쓰러질 때까지 먹는 애들이다. 남편이 어릴 때 살던 집에도 나무를 갉아먹는 벌레가 있었는데, 그냥 놔두었다가 나무가 갑자기 집 쪽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큰 곤욕을 겪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현재 갉아 먹히고 있는 우리 집 나무들도 고개를 완전히 젖히고 봐야 할 정도로 높이 자란 탓에, 만일 갑자기 쓰러지면 우리 집이나 이웃집 지붕을 깔아뭉갤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이 ‘칵칵’ 거리는 벌레의 식사 소리가, 나무가 아닌 내 목을 갉아먹고 있는 것 같았다. 


방법은 하나. 벌레가 나무를 다 먹어 쓰러뜨리기 전에 우리가 먼저 나무를 쓰러뜨리는 것이다. 나무에서 쉬는 시간 없이 계속 소리가 나는 걸 보면, 이 벌레는 나무가 쓰러지기 전까지 절대 식사를 멈출 것 같지 않았다. 어느 집이 뭉개지건 손 놓고 있다가는 조만간 대참사가 날 것이 분명했다. 서둘러 전문 나무꾼을 불러 견적을 받았다. 나무꾼이 오자 벌레에게 먹히고 있는 나무는 한 그루가 아닌 두 그루라는 걸 알아냈다. 그리고 그 나무들을 베어주는 대가로 나무꾼은 300만 원이 넘는 돈을 요구했다. 나무 베어주는 데 300만 원이 넘는다니! 일반 회사원들의 한 달 월급 정도 되는 돈 아닌가! 갑작스러운 지출과 큰 금액에 머리는 어지럽고 심장은 벌렁벌렁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집에 있는 도끼로 내가 찍어 베어버리고 싶지만, 끝도 없이 뻗은 이 큰 나무를 개인이 혼자 도끼 들고 설쳤다가 무슨 일을 낼지 알 수 없는 일이었기에 나무꾼의 도움을 물리칠 수도 없었다. 


미국 시골 주택에 산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일이다. 다른 것보다 집 자체를 유지하기 위한 돈이 정말 많이 들어간다. 매달 나가는 집 대출금 외에도, 주택 보험료 (자연재해가 심한 곳이라 안 들 수가 없다), 병충 퇴치 이용료, ‘터마이트’ 관리 이용료, HOA(공동 지역 관리비) 등 집 관련으로 나가는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태풍과 벌레 많은 해안가 더운 지역이라 위의 것들을 무시하고 살 수 없으니 여기 산다면 필수 비용이다. 눈 안 내리는 남쪽이라 거진 4월부터 10월 정도까지 에어컨을 틀고 살기 때문에 전기세가 공과금에서 얼마나 많이 차지하는지 굳이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최근에는 집 Gutter(홈통) 수리도 해서 추가 요금이 들어갔는데, 먹깨비 벌레가 하필이면 우리 집 나무를 고르는 바람에 이번 달에는 추가로 300이 날아갈 예정이다. 탕탕 거리는 총소리가 무서운 게 아니라, 실제로는 ‘칵칵’ 거리는 벌레 먹는 소리가 제일 무서운 것이었다. 이렇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는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 오늘은 삭막하게만 느껴졌던 아스팔트 동네가 그리워지는 날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