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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gjoon Jan 25. 2019

영화 '그린 북', 어떠세요?

스포일러 없는 영화 이야기



 혹시 ‘맨체스터 바이 더 씨’라는 영화 보셨나요? 안 보셨다면, ‘곡성’이나 ‘더 헌트’는 어떠신가요? 크레딧이 올라간 후 굉장한 여운이 남는 좋은 작품들입니다. 다만 그 여운의 느낌이 어둡죠. 자리에서 일어나 영화관을 나서는 발걸음도 괜스레 무거워지고 혼자 어딘가를 무작정 걷고 싶어 집니다. 집에 도착한 후 잠들기 전까지 이런 느낌이 가시질 않고 오늘은 뭔가 잠을 설칠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좋지 않은 영화라는 건 아닙니다. 관객을 지하 깊은 곳으로 끌고 들어가서야 비로소 강해지는 메시지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오늘의 내가 우울할랑 말랑한 기분이라면 독이 될 수도 있는 영화들이죠.      





 이와는 반대로 우울함의 밑바닥에서도 사람을 끌어올려줄 수 있는 미치도록 훈훈한 영화가 ‘그린 북’입니다. 보는 내내 말 그대로 미소가 가시질 않았어요. 물론 60년대 초반의 인종 차별이 원색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에선 인상이 찌푸려집니다. 하지만 배불뚝이 아라곤 아저씨(토니)가 점점 마음을 열게 되면서 말 그대로 해결사 역할을 기가 막히게 수행해줍니다. 덕분에 차별에 대한 메시지는 남으면서 훈훈함은 오래가죠(개비스콘 카피 같네요). 가끔씩 노리고 치는 개그 장면들도 상당히 높은 적중률과 비거리를 자랑합니다. 훈-훈하게 미소 짓다가 빵 터졌다가, 잠시 심각해졌다가 또 미소 짓다가. 결국 영화가 끝나면 행복한 기운이 영화관 전체에 스며있습니다. 먼저 일어나시는 분들께서 나누는 말씀들만 들어봐도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는 평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     


 이쯤 되면 영화의 단점이 나와야겠죠? 관객의 입장에선 백 퍼센트 만족한 영화였지만, 사실 플롯은 아주 단조롭습니다. 그동안 나왔던 실화 기반의 드라마 장르에서의 공식을 그대로 따릅니다. 때문에 반전이나 극적인 전개를 기대하시는 분이라면 실망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제게는 기존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진부한 영화라기보다는 정해진 항로를 쭉쭉 순항하는 튼튼한 배처럼 느껴졌어요. ‘쓰리 데이즈’처럼 관객을 쉼 없이 쥐고 흔드는 영화도 좋지만 가끔은 이런 편안하게 의자에 몸을 파묻고 보는 영화도 정말 좋으니까요. 아, ‘쓰리 데이즈’는 진짜 엄청 재밌으니까 보시는 걸 추천할게요.     


위에서부터 반지의 제왕 시리즈(2001-2003), 폭력의 역사(2005), 그린 북(2019)에서의 비고 모텐슨.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인공 토니 발레롱가 역을 맡은 비고 모텐슨이 정말 미친 듯이 매력 있습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고운 머리 휘날리며 사뭇 여성들과 남성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했던, 영화 사상 최고의 간지 캐릭터 아라곤이 배가 이만큼 나와서 핫도그를 26개 먹는 모습이라니요. 정의감에 불타는 전사 아라곤에서, 2005년의 ‘폭력의 역사’에서는 담담하게 소름 끼치는 킬러 톰 스툴을 지나, 2019년엔 능글맞은 배불뚝이 토니 발레롱가까지. 정말 다양하게 연기하는 배우인데, 그 다양했던 역할을 죄다 찰떡같이 소화해냅니다. 왜 이 영화에서 이 캐릭터가 매력적인지를 설명하는 게 싫을 정도예요. 시간이 되신다면 영화관에서 직접 확인하시는걸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사실 토니와 합을 맞추는 환장의 파트너, 돈 셜리 역할을 맡은 마허샬라 알리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습니다. 이 캐릭터는 또 왜 이렇게 매력적인지, 둘의 케미가 왜 언터쳐블 뺨칠 정도로 찰떡같은지 말이에요. 하지만 말씀드렸듯이 이건 스포 없는 영화 이야기니까요. 이 이상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영화를 보실 때의 재미가 혹시라도 떨어지실 수 있어 언급을 자제하겠습니다. 사실 어떤 영화가 재밌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스포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계세요.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합니다. 완벽한 백지상태로 영화관에 들어설 때의 설렘은 각별하니까요 그런 분들은 이 글을 스스로 피해 주시겠죠?      



    

 사방에서 끔찍한 소식이 들려오고 서로 물고 뜯기 바쁜 요즘, 친구 혹은 연인과 함께, 아니면 가족과 함께, 아니면 저처럼 혼자서라도 꼭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입니다. 집 가는 길 걸음걸음이 가뿐해질 정도의 훈훈함을 여러분도 느끼시길 바랍니다!               


tjlim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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