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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맹 Aug 12. 2024

남편의 나지막한 속삭임의 정체

주의) 부부 29금 토크

남편과 나는 다시 올해 6월부터 주말부부로 산다. 1년 그리고 6개월, 내가 출근한 시간을 빼고는 24시간 붙어 지냈다.


집에 있는 동안 남편은 장보기부터 시작해서 가족의 매 끼니를 담당하고 집안 청소, 까탈스러운 고 3 막내딸 돌보기까지 주부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매사에 성실하고 요리를 위시한 집안일을 너무 좋아하는 남편이 행복해하며 척척 집안일을 해내는데 감히 불만을 제기할 수 없는 상황임은 분명하였으나 무엇인가가 나를 매일 같이 불편하게 했다. 요리도 싫어하고 집안일이 다 싫은 내게 모두 해주는 남자가 있는데 대체 왜, 불만이 쌓여가는가!


남들처럼 은퇴해서 집에 눌어붙은 남편 밥 차려주기가 싫다라던가 노는 꼴을 못 보겠다던가 그런 것도 아니요,  남편이 집에서 뒷짐 지고 아무것도 안 하면서 일터에서 하던 것처럼 이것저것 마누라를 부려먹으며 보스놀이를 하는 것도 아니요, 성실한 주부로  나보다 훨씬 살림을 잘하고 있는데 대체 왜! 일 끝나고 돌아오면 앞치마 두르고 따뜻한 밥 차려주는 남편을 대체 왜 버거워하냐는 말이다.  남편 없으면 매일 라면만 끓여 먹는 주제에...

내 감정이 나도 이해가 가지 않아 오랫동안 생각해 봤다. 결론은 잘못 뭉쳐진 근육 같은 나의 감정의 정체는 내 생활안에 나만의 공간이 충분치 않아 생긴 불만이었다. 젊은이들처럼 일 끝나고 쇼핑도 가고 친구랑 커피도 마시고 하면서 이런 공간을 자발적으로 만들면 되는데, 일터에서 체력을 바닥 내버리고 한시라고 빨리 집에 돌아가서 뻗어 버리고 싶은 마음에 냅다 집으로 오기 때문인 것이다. 집에 들어오는 순간 막살고 싶은데 뜨악 집에 두 명의 복병 (남편이랑 딸내미- 아들은 다행히도 작년에  내보냈다)이 있는 것이다. 내 맘대로 못살고 맞춰서 살아야 하는 두 명. 그러다 보니 내 공간에 365일 하고도 반년동안 꾸역꾸역 같이 숨 쉬며 살고 있는 이 주부가장이 점점 버겁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석 달 전 프로젝트가 하나 나왔고 남편이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머얼리 뮌헨 근처로. 남편이 돈 벌러 나가줘서 그런가 갑자기 가슴이 탁 트이면서 집안에 나만의 공간이 쫘악 펼쳐지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들어오면 배고프고 힘들지만 라면으로 때우거나 새우깡 한 봉지 들고 유뷰브의 세계로 빠지기도 하면서…작은 일탈을 시작하면서 가슴의 멍어리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아... 이거였다. 나는 짜여진, 규칙적인 생활을 못 견디는 것이었다. 직장생활에서도 그것을 견뎌야 하는데  집에서까지 그렇게 살기가 여간 힘들었던 모양이다. 막살고 싶은데 남편이 조직적으로 짜 놓은 집안 생활에 맞추려다 마음에 응어리가 졌었다. 진단 끝!


어쨌든 이렇게 주말부부 생활이 시작되었고 그동안 떼어놓지 못해 안달이었던 남편이 심지어 너무 보고 싶기까지 하다. 웬 떡이냐! 갑자기 1석 10조의 기쁨이 생겼다. 일 년 육 개월 동안 몸속에 사리를 키운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인가. 우주에 존재하며 삼라만상을 관장하는 모든 신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뮌헨 어귀로 출근을 하기 시작한 남편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집에 없다. 금요일 저녁 늦게 에너지가 다 소진되어 들어와서는 토요일 일요일도 주중에 못한 일들을 정리하고 다음 주를 계획하느라 홈 오피스에 갇혀서 방 밖을 잘 나오지 못한다. 그 모습이 짠하기도 하고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북받쳐 오르며 드는 생각. 인생 말년에 주말부부는 축복이구나. 난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이 여러모로 틀림없다.


남편 없는 주중 생활. 집안 일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바쁘긴 하지만, 배고프면 대충 냉장고에서 아무거나 꺼내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고 과자나 스낵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딸내미가 아직 복병이긴 하다. 아빠가 없어서 엄마가 아무거나 먹는다고 자꾸 야단친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일탈을 즐기고 있다. 주중에 남편을 그리워(?)하다가 월요일 새벽 기쁜 마음으로 작별을 고하면서...

그러다 오랜만에 남편이 없어서 아쉬운 일이 생겨버렸다. 얼마 전부터 갱년기 증상인지 피부의 이곳저곳이 간지럽기 시작했는데 팔, 다리의 가려움은 바디로션을 덕지덕지 바르면 어찌어찌 견뎌내겠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이 가렵기 시작했다. 이름하야 엉덩이 꼬리뼈 바로 아랫부분. 이상한 것은 피부가 짓무르거나 상처가 생긴 것도 아닌데 항상 꼬리뼈 언저리가 가렵다는 것이다. 구글도 해보고 여기저기 피부이상에 대한 리포트들을 읽어봤지만 내 증상처럼 피부가 뽀송한데 미친 듯이 가려운 것에 대한 설명은 없다. 갱년기 가려움증의 일환인 것 같아 꼬리뼈에 수분공급을 시작했는데... 몸이 유연하지 않아 팔이 잘 돌아가지도 않을뿐더러 엉덩이 골은 보이지가 않으니 명중해서 딱 가려운 그 자리에 크림을 이겨 바르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월화수목, 매일 밤 엉덩이 골 전체에 크림을 얼기설기 바르고 (그곳은 열어 놓고 오래 있기 부끄러운 곳이라) 그냥 옷을 입어버리고 그 축축한 느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서 그런가 가려움증이 잘 낫지를 않았다.


금요일. 밤늦게 돌아와 현관에서 여행가방을 치우면서 신발을 벗고 있는 남편에게 엉덩이골 특정부위의 미칠 것 같이 가려운 사정을 급히 전달했다. 딱 그때 하필 가려워서 미치고 팔짝 뛰는 중이었다. 나는 원래 튼튼하고 매사에 둔해서 아픈 사람들을 잘 이해 못 하지만, 예민하고 그래서 아픈 데가 많은 (?) 남편은 남이 아프거나 다친 것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듣고 의사같이 처방도 한다. 꼬리뼈 가려움증에 대한 설명을 열심히 듣더니 늘 그렇듯이 바로 의사로 둔갑했다. 얼렁

봐주겠다고…


그동안 남편이 여기저기 아프다 하면 별 것 아닌 일에 수선 떤다고 놀리고 어린애라고 핍박주던 나의 만행들이 머릿속에 병풍처럼 지나가면서 후회도 되고 미안하기도 하지만 이미 늦었다. 쪽팔림이 하늘을 찌르지만 누가 알았나 이런 날이 올 줄? 일주일 만에 퇴근한 남편 앞에서 하늘을 찌르는 창피함을 뒤로하고 소파에서 엉덩이를 깠다.


신속하고 조용하게 검사를 마치더니 아직 괜찮단다. 크림 좀 바르면 금세 나을 거라고 나를 진정시킨다. 그리고는 간지러운 부분에 정확하게 크림을 발라주었다. 내가 하면 한 번에 다다를 수 없어서 오른쪽, 왼쪽, 여기저기 범벅을 만들며 마사지를 해서 크림을 바르는 건지 긁는 건지 모르게 되는 때가 많았는데 역시 눈으로 부위를 보고 발라서 그런가 단번에 꼬리뼈 아래 부분 딱 가려운 그 자리에 크림을 투척했다. 그러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C.Y.C.라고 말했다. 잠시, 이게 무슨 소리일까 했지만 이 민망한 상황에서 빨리 빠져나오기 위해, 고맙다고 재빨리 전하고 꼬리뼈를 바지 속으로 감췄다. 그게 더 중요했다.


금요일 밤은 덕분에 다른 날 보다 덜 가려웠다. 남편이 크림을 명중시켜서 그런가 효과가 가려운 부분에 제대로 침투한 모양이다. 그래서 그 다음날 아침에도 치료를 부탁했다. 이번에도 별말 없이 치료를 해주었는데 크림을 발라 주면서 또 나지막하게 C.Y.C.라고 말했다.


뭘까? 이번에도 궁금했지만 하도 나지막하게 말하길래, 그리고 바지를 올리는 것이 더 중요했기에 묻지 않았다. 그리고는 일상을 시작했다. 또 하루를 일로 보내려 하길래 점심을 먹고 남편을 끌고 나왔다. 시내, 강변을 산책하고 사람구경도 시키고, 광합성도 좀 하고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먹고 먼지와 더위에 범벅이 되어 저녁에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물을 마시고 있는데 조용히 내게 다가오더니 또 C.Y.C? 하고 물었다. 얄밉게 살짝, 아주 살짝 웃으면서 C.Y.C. 했다.


그때서야 퍼뜩하고 시그날이 왔다. 내 엉덩이뼈에 크림 바르는 것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구나 하고. 아... 얄밉기도 하고 기막히기도 하고... 어찌 몰랐나 하는 생각도 들고.... (두 번째 C를 뒤집으면 엉덩이 모양이 되고 가운데 Y가 엉덩이 뼈 부분의 갈라짐이다... 이걸 설명하는 것도 매우 우스운 일이다)


남편은 재미있거나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매사에 진지하고 불평 많은 전형적인 독일사람이라... 이 속삭임의 정체를 빨리 눈치채지 못했다. 이 기막힌 깨달음에 실소가 나오면서 왠지 남편의 소심한 복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멀리 일하러 가도록 종용하고 혼자 집안을 차지하고 살게 된 것을 너흐무 좋아한 부인에 대한 복수. 혼자서 크림조차 못발라서 훤히 뒤를 보이는 주제에… 라고 하는 것 같아 부글부글 끓는다.


분하긴 한데 이 가려움증이 끝날 때까지 치료가 필요하기에 참는다. 복잡하고 묘한 마음을 말로 풀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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