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맹 Aug 24. 2024

볼 것 없는 곳은 없다, 볼 줄 모르는 인간이 있을 뿐

여행객의 무지- 독일 Allershausen

어제 광란의 질주로 도착했던 독일 공장지역인 알랠스하우젠을 떠나기 전, 아침 먹은 것을 소화시킬 겸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시내(? 그래봤자 대형 슈퍼 서너 개와 드로거리 스토아 밀집지역) 방향은 다 보았으니 반대 방향 동네 모습을 보기 위해서 나는 선글라스를, 딸은 모자를 단단히 착장하고 9.30분경 호텔을 나섰다.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길을 둘러보며 걷다 보니 노란 교회건물이 보인다. 교회 주위의 놀이터, 유치원, 작은 공원을 둘러지나 끝없는 옥수수 밭이 펼쳐진다. 독일인을 닮아 한없이 키가 큰 옥수수밭이… 머리를 감자마자 산발로 100미터 달리기를 한 듯한 수염을 가진 옥수수들이 키 큰 가지에 도롱도롱 매달려있다.

어제 길먼지와 더위로 제대로 동네구경을 못하고 아스팔트로 된 고속도로 옆길만 보고는 이 아름답고 한적한 동네를 공장지역으로 치부하며 한껏 오해하고 떠날뻔했다 (얄팍하기 짝이 없는 나란 인간이여~~~)


굽이 굽이 펼쳐진 작은 강물과 강가를 따라 올망종망 펼쳐지는 각가지 초록색의 나무들은 더위를 식히는데 충분했고, 작은 호수라고 이름 붙여진 곳을 따라가느라 아침이슬에 촉촉해진 잔디를 밟아 신발과 양말이 축축해지는대도 왠지 행복이 샘솟았다.

알랠스하우젠 클라이네 제 (작은호수)

찍찍거리는 벌레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가 서로를 비비대는 소리뿐이고 사방은 고요했다. 숨 쉬는

신발을 신었던 지라 발은 여전히 이슬을 밟아 눅눅했지만 온몸이 더운지라 좀 칙칙한 발이 싫지 않았다.


학기말의 피로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직장 동료와 괜한 신경전을 벌였던 감정통제가 안되었던 두 주가 주마등처럼 눈앞을 지나갔다. 다 덧없는 짓이었다. (지나가면 되는데 왜 닥쳤을 때는 부정적 감정이 그토록 더디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훨훨 날릴 수 있으면서… 이 과정이 빨라지는 것이 철드는 것일진대 나는 철들기 싫은가 보다.

30분을 걷는 동안 대형 교회를 두 개나 봤다. 이 작은 마을에 이 커다란 교회 두 개는 대체 어떻게 운영될까. 물론 독일은 기독교 국가라 세금으로 교회를 운영하긴

하지만 인구수 적은 이 마을에 이런 대규모의 (농장이 딸려있거나 유치원, 초등학교 등의 교육기관까지 함께 운영하는 듯 보이는) 교회는 탈종교의 시대를 사는 독일에서 어찌 살아남는지 궁금했다.


하기사 나도 남편도 신앙생활을 하지는 않지만 기독교와 가톨릭에 각각 교회세를 낸다. 원하지 않으면 세금취소를 할 수는 있지만 그러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종교계 지도자의 성추행문제와 개인비리문제가 대두되더라도 세금으로 행해지는 내가 하지 못하는 선행들이 많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평화로운 마을 어귀 구경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오스트리아로 떠날 채비를 하며 반성한다. 어제처럼 급하게 와서 스치고 지나갔으면 알랠스하우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크게 오해하고 갈뻔했다.


끝없는 옥수수 밭과 노란 교회, 예쁜 정육점과 구불구불 작은 강물과 호수가 여기저기 펼쳐져 있는 작은 동네. 남편이 어디서 근무하는지 알게 돼서 기쁘다…그보다 하루 만에 남편보다 더 많이 이 동네를 알게 돼서 기쁘다.


역시 출장온자와 일만 하는 자는 근무지에 대해 알기 힘들다. 마음의 눈을 열고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있어야 아름다운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요트 타는 여행을 바라진 않지만 깊숙하게 사물을 보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서 뭔가 새로운 것을 항상 밖에서 찾기를 갈망한다. 수양이 안된 인간이기에 한동안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살겠지만 작은 동네

한 바퀴에 생각이 조금 바뀐 것은 반가운 변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