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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학생들의 웹툰 번역 도전기 2년 차

불교철학부터 강아지시선까지, 원작자와 소통하며 완성한 문화 번역의 여정

by 문맹

번역을 넘어 '재창조'의 예술로

지난 11월, 독일 보훔대학교에서 특별한 전시회가 다시 한번 막을 올렸다. 올해로 2회째를 맞는 이 전시는 제주문화진흥원이 제공한 김종숙, 고경숙, 정지원, 양정원, 윤찬호, 배중열, 황호연, 이연수 작가의 웹툰 여덟 편을 독일어로 번역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지난 4월부터 한 학기 동안 진행된 웹툰 번역 수업의 결실이다.


작년 첫 전시가 한국 웹툰을 독일에 소개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올해는 한층 깊어진 문화적 이해와 창조적 해석이 돋보였다. 학생들은 단순히 언어를 옮기는 것을 넘어, 한국 문화와 철학을 독일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창조하는 문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장법사에서 시작된 끝없는 질문"… 언어를 넘어 세계관과 만나다

번역 프로젝트에 참여한 알리시아와 아론은 팀원들과 함께 이번 학기 내내 웹툰 번역 작업에 매진했다. 그들이 맡은 작품은 불교 철학이 깊이 녹아있는 고대 판타지 배경의 웹툰이었다.


"처음 웹툰을 봤을 때는 '이 낯선 표현들을 도대체 어떻게 번역해야 하나' 싶었어요." 알리시아는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불교 철학에 깊이 뿌리를 둔 이야기였고, 고대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줄거리와 언어 모두에서 예측 불가능한 요소들이 많았죠."


하지만 가장 보람찬 순간은 어려운 토론을 거듭한 후 마지막 모임에서 찾아왔다. "팀원들과 함께 앉아 번역본을 최종 검토하던 그 순간, 방 안에 조용한 성취감이 퍼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우리는 해냈어요.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불교나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도 따라가며 즐길 수 있는 번역본을 만들어냈죠." 그녀의 목소리에는 그때의 감격이 여전히 배어 있었다. "우리의 노력이 이렇게 결실을 맺는 것을 보며, 저를 포함한 팀 전체가 진심으로 자랑스러움을 느꼈습니다."

'삼장법사'를 어떻게 옮길 것인가 - 단어 하나가 여는 문화의 문

한국어에서 독일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불교 경전에서 영감을 받은 언어와 표현들이었다. 특정 단어들에 대해 독일어로 직역하거나 교과서적인 번역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도전은 주인공의 이름 '삼장법사'에서부터 시작됐어요." "'법사'는 독일어로 여러 가지 번역이 가능했기 때문에, 이야기의 톤과 배경에 가장 잘 맞는 것을 선택해야 했어요. '삼장' 역시 퍼즐 같았죠. 처음에는 '김 선생님'처럼 이름과 호칭의 조합이라고 생각해서 'Mönch Samjang(승려 삼장)'으로 번역했습니다."


더 조사해 본 결과, '삼장'이 실제로는 세 가지 불교 경전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교적 맥락에서 '법사'와 결합하면 '삼장법사'는 '삼장을 통달한 스승' 또는 '삼장을 전하는 법사'를 의미해요. 하지만 이런 번역은 웹툰의 톤에 비해 너무 길고 격식적이었습니다."


알리시아와 함께 작업한 아론은 당시를 떠올리며 말했다. "이건 그냥 이름 문제가 아니었어요. 이 단어를 어떻게 번역하느냐가 이 세계관과 이야기의 분위기를 독일어 독자에게 어떻게 열어줄 것인지와 연결되어 있었죠."


팀원들은 '삼장법사'라는 이름을 두고 수주 간 토론한 끝에, 영어식 표현인 'Monk Samjang'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독일 독자들에게도 이국적인 느낌을 살리면서 불교 전통에 대한 짧은 문화 맥락 설명을 함께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단어 하나가 문화적 세계 전체를 문으로 열고 닫는다는 사실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소리는 언어가 아니라 감각이었다" - 의성어 번역의 도전

웹툰 번역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 중 하나는 의성어였다. 베이자의 팀은 이 문제로 깊은 토론을 거쳤다.

"크루즈선 경적 소리를 '뿌우우'에서 'tuut'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우리는 소리 자체보다 장면의 무게감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또 고양이가 조용히 고개를 드는 장면의 ‘벌떡’ 소리는 독일어 의성어로 옮기기보다 행동 자체를 번역해 'starrt(응시하다)'로 바꾸었다. 이는 번역이 소리를 텍스트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분위기를 옮기는 일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캐릭터의 '목소리'를 다시 만드는 일 - 아나가 고른 단어 하나의 빛

소년과 별의 세계를 다룬 웹툰을 맡은 아나는 캐릭터의 말투와 감정선을 되살리는 데 주력했다.

"원문에서 '괜찮아요!'라고 말할 때, 그 아이는 단순히 괜찮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감을 찬란하게 표현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독일어로 'Es ist mir schnuppe!'를 선택했죠."


단어 하나의 결이 캐릭터의 나이, 표정, 감정, 세계를 함께 번역하고 있었다. 이처럼 번역은 단순한 언어 전환이 아니라, 캐릭터의 정체성과 감정을 새로운 언어로 재창조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강아지의 시선'을 독일어로 옮기기 - 다나가 경험한 시점의 혼란

다나의 팀이 맡은 작품에는 말풍선이 없었다. 글은 배경과 이미지 속에 직접 녹아 있었고, 화자는 사람과 강아지 사이를 오갔다.


"누가 말하는지 모르는 순간이 너무 많았어요. 한국어에서는 주어가 생략될 수 있지만, 독일어에서는 반드시 정해야 하니까요."


또 강아지의 이름 '냇길'을 그대로 가져오지 않고, 의미적 뉘앙스와 발음의 자연스러움을 살려 'Bakki'라는 새로운 이름을 만들었다. 이는 번역이 창조적 해석의 예술임을 보여주는 결정이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로 감정을 생각했다" - 에니세가 경험한 정서의 번역

에니세의 팀이 맡은 웹툰은 70세 여성이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을 다루었다. 노년의 고독과 자존의 회복을 담은 서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서의 온도'였다.

에니세는 감정이 담긴 대사를 읽을 때, 무의식적으로 한국어→터키어→독일어로 감정을 해석했다고 말한다.


"문장을 번역하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이 어떤 언어에서 가장 솔직하게 살아나는지를 생각해 보는 과정이었어요."


그들이 붙인 제목은 "Ein Koffer voller Zweifel(의심으로 가득한 여행 가방)". 작품의 여정을 단 한 줄로 응축해 낸 제목이었다.

캠퍼스에 걸린 대형 포스터, 한 학기의 여정

자신의 번역 작품이 전시회에서 대형 포스터로 전시된 것을 본 알리시아는 감회가 남달랐다. "우리의 모든 노력이 이제 캠퍼스의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정말 자랑스러웠어요."


수업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알리시아는 불교에 대해 매우 기초적인 이해만 갖고 있었다. "하지만 웹툰을 번역하는 과정을 통해 훨씬 더 깊은 감사와 폭넓은 지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 것은, 특정 불교 전통에 대해 우리가 가졌던 질문들 중 일부가 나중에 원작자로부터 직접 답변을 받았다는 점이에요. 친절하고 너그러운 배려였고, 우리 프로젝트가 더욱 개인적으로 다가와 보람차게 느껴졌습니다."

관람객의 시선: "웹툰은 단순한 만화가 아니다"

전시회를 관람한 바네사는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다양한 장르와 스토리라인을 가진 여러 종류의 웹툰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재미있고 흥미로웠어요."

전시를 본 후, 바네사의 웹툰과 번역에 대한 인식도 변화했다. "많은 사람들이 웹툰을 만화처럼 생각하고, 젊은 독자층을 위한 가볍고 때로는 재미있는 스토리라인과 연관 짓잖아요. 하지만 전시된 다양한 웹툰 줄거리를 보고, 다른 학생들과 함께 직접 번역 작업을 해보면서, 웹툰에는 심각한 주제를 다루는 다양한 장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특히 번역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웹툰의 대사는 상대적으로 짧은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번역할 때 다른 종류의 도전을 제시한다고 생각해요. 압축된 형식으로 많은 정보를 전달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의성어 같은 것들도 정확하게 번역해야 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웹툰과 번역에 대한 제 인식이 확실히 바뀌었습니다."

한독 문화교류의 새로운 모델이 되다

보훔대학교의 웹툰 번역 프로젝트는 단순한 언어 학습을 넘어 문화 이해의 깊이를 더하는 교육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학생들은 번역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 철학, 문화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이를 독일 문화권에 맞게 재해석하는 능력을 키웠다.


특히 원작자와의 직접적인 소통이 이루어졌다는 점은, 이 프로젝트가 단순한 학술 활동을 넘어 실질적인 문화 교류의 장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통해 학생들은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수용자를 넘어, 그 의미를 다시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해석자이자 창작자가 되었다. 웹툰 번역은 단순한 언어 학습이 아니라 다른 문화의 감정과 세계를 자기 언어로 살아 있게 만드는 과정임이 분명해졌다.


보훔대학교의 웹툰 번역 프로젝트는 앞으로 한독 문화 교류가 어떻게 더 입체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 하나의 모델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한국 문화 콘텐츠의 저력과, 그것을 세계로 확산시키는 젊은 세대의 열정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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