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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맹 Feb 07. 2024

동사가 쩍하고 분리되는 언어를 어떻게 배우는가

독어 분리동사 German seperable verbs

(독일어 잘하시는 분은 읽지 마세요. 속 터지십니다.)


독일 대학은 드디어 방학이고 채점할 시험지들을 다 뒤로하고 늘 그렇듯이 일단 독일어 참고서를 손에 잡았다. 방학마다 짬날 때만 독일어 공부를 개미 눈물처럼 하다 멈추기를 십 수년. 그래서 내 독일어 실력은 독일 개미랑 대화할 실력 밖에 안된다.


오늘 내가 뿌셔야 할 챕터는 분리동사, 아무리 보고 들어도 내 것이 되지 않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독일어 구조가 아닐 수 없다. 아니 어찌 동사가 쩍하고 떨어져 분리될 수가 있단 말이냐? 독일 사람의 입에서 동사가 분리되어 나오는 것을 들으면 그래, 그건 당신들의 말이고 당신들의 동사이니 뚝 떨어뜨려 잘 쓰는구나 한다. 하지만 내가, 내 입으로, 분리동사를 써서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일단 동사를 분리시킨다는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 (어디 감히 도옹사를 분리시키는가!) 그리고는 단어를 분리시켜 띠엄 띠엄 문장내에 흩뿌린다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몸안에 꽉들어찬 나의 언어 시스템과 박터지게 싸워 자리를 만들어 새로운 언어(독어)는 이렇게 생겨먹었음을 주입시키고 받아들어야 하는데 정신의 탄력을 상실한 반백살의 나이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지 나이탓!


우리의 소원은 꿈에서도 통일인데 동사를 이렇게 마구 찢어 발겨도 된다는 것에 흥분하기만 하고 끝나면 독일어와 이 생애에서 작별해야 한다 (그래서 내 독일어가 아직도 이 모양인게다, 쯧쯔). 새로운 시스템을 받아들이고 난 후에는 나의 뇌속에서 분리시킨 동사를 적재적소에 꽂아 발화해 내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자기분열을 겪어내야 한다.  


독일어로 텔레비전을 보다는 동사는 "fernsehen (펜제엔)"이다. 한 덩이로 보이는 이 동사는 한 덩이, 즉 한 단어로 쓰일 때도 있다. 예를 들어 나는 텔레비전 보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말하려면 Ich (나는) mag (좋아한다) fernsehen(티브이 보기를). 요렇게 '좋아한다' 뒤에 붙어서 한 덩이로 자신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 여기서 끝나면 나의 고통은 그렇게 크지 않는다. 생소한 단어만 익혀주면 (펜제엔, 이것이 티브이 보다라는 것은 잘 들어오지 않지만) 뭐 어찌어찌 기억해서 말해낼 수 있겠다.


그런데 저 동사는 많은 경우 자가분열을 한다. 뜨아! 동사의 자가분열이라니... 붙어 있어도 소리를 기억하기가 만만치 않은데 몸이 떨어지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티브이 보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Ich(나는) sehe(보다) gerne(즐겁게, 기쁘게) fern(티브이)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어떻게 동사 fernsehen을 둘로 딱 잘라서 문장에서 앞뒤에 각각 널브러져 있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인가... 늙고 학습능력을 상실한 외국인인 나에게 이 동사의 자가분열은 정신분열을 일으킨다. Ich (나는) sehe(보다) gerne (좋아하는 맘으로) fern (텔레비전). 한국말로 번역하면 마치 fern이라는 단어가 텔레비전으로 받아들여져 뭐 크게 어려운 것 같이 않아 보이지만 사실 독일어로 텔레비젼이라는 말은 Fernseher로 또 따로 있다. 이 fern이라는 말은 분명 fernsehen이라는 동사에서 로봇이 변신 하듯이 떨어져 나간 조각인 것이다 (이쯤에서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다).


이렇게 단어를 잘라 문장의 앞뒤에 꼽는 것이 가능한 언어를 사용하는 독일 사람들은 생각할 때에도 하나의 개념을 조각으로 나누어 여기 붙이고 저기 붙일 수 있는 능력이 발달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아는 다른 모든(?) 언어 문화권에서 동사는 한단어이다.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한 조각인 구조체를 조각 내다니 이런 독일인들을 용서할 수가 없다.  


긴 글에서 보면 이들의 분리는 이토록 멀어지기도 한다.

Kinder aus sozial schlechter gestellten Familien sehen überdurchschnittlich lang fern, während Kinder aus sozial besser gestellten Verhältnissen Computer und Internet überdurchschnittlich oft nutzen. (사회적으로 불리한 가정의 아이들은 평균 이상의 시간 동안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반면, 사회적으로 더 나은 환경의 아이들은 컴퓨터와 인터넷을 평균보다 더 자주 사용합니다.)

출처: TAB - About us - Team - Zielgruppenorientiertes eLearning (tab-beim-bundestag.de)


아, 동사의 머리부분만 살짝 잘라 유체이탈시켜 문장 맨 꽁당지에 착지 시키다니 독일에서 태어나지 않는다면 독일어를 못하게 만들려고 외국인들을 능멸하는 짓이 아닌가. 게다가 독일어에는 비슷한 꼭지를 사용하는 수백 개의 분리동사가 있다. 이러한 동사들은 기본 동사에 분리 가능한 접두사를 결합하여 붙어있다 떨어져 있다 용도별로 다르게 쓰이는데 아주 관대하게 봐주어 한국어 동사와 견주자면 '보다'에 다시 보다, 또 보다, 함께 보다... 뭐 이런 정도의 느낌일 수 있겠다. (울먹이며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말에서는 동사 '보다'에 붙은 다시, 또, 함께 등은 부사이고 딱 따로 되어 있어 자리도 정해져있는데 독일어는 접두사를 문장 맨 뒤로 튕겨 버린다.


나 같은 초보 독일어 학습자에게 동사를 발화하고 그 한 조각을 문장이 끝날 때까지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다가 마침표 찍기 전에 뱉어내는 것은 무진장 고난이도의 정신적 서커스 같은 작업이다. 단어 외우기도 힘든데 외운 단어가 자가분열을 해서 문장 초입에 반쪽, 문장 맨~~~뒤에 또 다른 반쪽. 게다가 독일어 문장은 길기로 악명높지 않은가.


루빅스 큐브 한 면도 제대로 못 맞추는 아이큐로 새로운 언어 시스템을 배운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인데다가 반백년 동안 별 고민없이 모국어를 마구 사용한데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렇게 깨알같이 불만을 토로 할 시간에 분리동사 리스트를 펼치고 외웠다면 애저녁에 이 싸움에서 이겼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억울함은 토로하고 가야겠기에 오늘도 대나무 숲을 찾았다.


으아아아 힘들다! 역행자가 되어야 하는데 편하게 순행자로만 살고있으니 분리동사를 놓고 불평만 하는구나. 독일어 동사는 자가분열을 하고 이것을 배우려는 나는 정신분열이 일어나고... 인터넷 어디에선가 (벌써 몇 번째) 다운로드한 400개의 분리동사 리스트를 보며 오늘도 한숨을 쉰다.


다음 생애에는 독일 사람으로 태어나리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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