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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맹 Aug 22. 2023

독일어 돌팔이 이론 펼치기

매우 쓸데없는 분석

경고 Achtung! 독일어를 잘하시는 분에게는 짜증스러운 글입니다.


"나한테 저 소금 좀 건네줄 수 있어?"를 독일어로 말하는 것이 왜, 그토록, 힘든 일인지 성토하고자 한다.


먼저 "나한테 저 소금 좀 건네줄 수 있어?"는 독일어로 Kanst du mir bitte das Salz reichen?이다.


1. 무엇보다 먼저, 단어를 알아야 한다. 저 문장을 독일어로 말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단어를 알아야 하는데 mir가 나한테, das Salz가 저 소금, bitte는 좀, reichen은 건네다 그리고 kann? 은  수 있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2. 그 단어의 소리 내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독일에서 좀 살면 소금이라는 단어는 자주 쓰이기에 그래도 쉽게 배울 수 있다. 소금은 영어로 솔트(salt)이고 여기서 약간 비틀어서 독일식으로 틱, 췩, 거리면서 탁음을 좀 넣어주면 된다. 즉 '솔(sal)'은 '짤(sal)'로 바꾸고, '트(t)'는 '쯔(z)'로 만들어 짤쯔! - 영어에서 z가 단어 끝에 쓰이는 경우는 우리가 잘 아는 단어로 재즈 (jazz), 퀴즈 (quiz)로 시작하여 퓨즈 (fuzz), 버즈 (buzz), 왈츠 (Waltz- 벌써 독일어네...) 등 한정적이다. 독일어 중에서 z으로 끝나는 단어도 많지는 않을 테지만 일상생활 중에 자주 사용되는 단어 중에 끼어있기도 한 데다 나는 그 발음을 잘 못하기 때문에 z를 내뱉는 순간 독일인들의 알쏭달쏭해하는 얼굴과 마주 대해야 한다. z는 나를 매우 민망하게 만드는 알파벳이기도 하다.

 

'나한테'라는 뜻의 mir는 영어의 me에서 혀뿌리에 힘을 콱 주어 아랫니를 주욱 밀어주면서 미어...라고 발음하면 된다. 릴랙스한 미국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다가 혓뿌리에 힘을 콱 주고 심각한 표정의 독일병정의 얼굴로 이미지를 갈아치우면서 동시에 아래턱을 주욱 빼면서 길게 소리를 늘여 미어..라고 소리 내면 된다. 


동사 reichen이 문제인데 그 어느 언어에서도 비슷함이나 연관성을 찾기 힘든 나 홀로 폼이다. 한국어로 건네주다, 영어 pass와 독일어 라이흔은 아무런 공통점이 없지 않은가... 이럴 때는 뇌에게 SOS 도움을 청해야 한다. 연관단어가 없으니 그냥 기억해 달라고. 그러면 뇌가 답한다. 라이흔을 자주 입력해 달라고... 자신에게 출력을 자주 요청하면 어느 순간 저장될 것이라고 하지만 공짜로 한방에는 안 해준다고. 그래서 여태껏 못 배운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3. 사람 미치게 만드는 독일어 어순을 알아야 한다. 나는 "나한테 저 소금 건네줄 수 있어"라고 생각하면서 내뱉기는 "할 수, 너, 나에게, 제발, 소금 건네주다?" 이렇게 해야 한다.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사람의 삶의 지평을 바꾸는 일이다. 나에게 새로운 코드를 입혀 다른 시각과 다른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매우 고매한 행위이다. 당연히 언어는 써먹기 위해 배우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의 정체성의 지평을 넓히는 상위개념의 배움이 자리하고 있다. 이 포인트에서 나는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언어 (독일어)는 내가 배우려고 선택한 언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남편을 선택했더니 딸려오게 된 반갑지 않은 부산물(byproduct)이고 나는 남편과 독일어를 사용하지 않기에 이 골칫덩어리 부산물을 꾸준히 배우지 않고도 살아가는 방법을 택했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전수하기 위해 집에서 꾸준히 한국어만 써서 그렇지만 이 부분은 크게 변명하지 않으련다. 그러면서도 독일어 잘하는 엄마들 널려 깔렸다). 그. 러. 나. 독일에 살지 않는가. 동방예의지국의 K여인은 예의를 지킬 줄 알기에 꾸준히(?) 포기하고 자빠지고 일어나기를 계속하면서 독일 산지 20년이 가까워 오는 오늘날까지 기초 독일어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부끄럽지만 슈퍼마켓에서 쓰는 레벨의 독일어로 오늘날까지 살아왔다. 그리고 그것의 가장 큰 이유는 어순이다! 할 수, 너, 나에게, 제발, 소금 건너줘? 이렇게 말하려면 생각하는 방법 자체를 바꾸어야 하는데 의지박약으로 내 고집을 꺾을 수가 없다.


4. 어순과 함께 따라오는 또 하나의 고통은 동사의 변형이다. 칸, kann(할 수 있다 can)이 2인칭 두, du (너 you)를 만나 kannst 칸스트로 변형되는 것이다. 물론 can 동사는 어렵지 않은 변형에 속한다. 그러나 독일어 동사의 수많은 변형은 배울 때마다 정말 아프다. 그렇지만 한국어 배우는 내 학생들이 한국어 동사 변형, 특히 높임말에 따른 수많은 변형을 배우면서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면 숙연해진다. 인간의 언어는 복잡다기하고 동사의 변형은 정말 우리 인류가 어떻게 이렇게 찬란한 문화를 이루었는지 볼 수 있게 해주는 한 단면이다. 모든 언어에 있는 동사변형을 어린 인류들은 걱정 없이 힘들이지 않고 자동으로 습득해서 사용한다. 이런 어린 인류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5.  친한 척을 할 것인가 거리를 둘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영어와 다르게 독일어는 친하면 너 (du) 폼을 쓰고 거리를 두고 싶으면 (안 친하고 싶거나 존대하고 싶은 상대에게) 당신 (sie) 폼을 쓴다. 한국어 존댓말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독일어의 du와 sie폼의 다른 점은 새발의 피이기에 이것으로 불평할 생각은 없다. 이 정도는 관대하게 넘어가준다. 내가 꼭 배워줄게.


6. 관사 문제. 이것이 사실은 넘기 힘든 산이다. 모든 명사에 성이 있다는 것... 수많은 명사를 외우면서 앞에 관사까지 배워야 하는데 이는 마치 명사에 색깔이 있어서 명사의 뜻뿐 아니라 그것이 빨강인지 노랑인지 파랑인지 색깔까지 외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것에 대해 애초에 내식으로 전략을 세웠다. 말하면서 사실 데어 (남성)인지, 디(여성)인지, 다스(중성)인지 정확하게 발음할 필요가 없는 적이 많다. 나의 해결책은 데어도 아니고 디도 아니고 다스도 아니게 매우 빠르게 '더(영어의 the처럼)'라고 약하고 빠르게 발음하고 넘어간다.


독일학생들이 어떤 특정 명사에 대해 관사문제로 논쟁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빵에 발라먹는 초코크림 '누텔라'가 여성인지 중성인지에 관해서였는데 사전에서는 여성명사로 규정지었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여전히 중성으로도 쓰이거나 여성으로 규정지은 것이 사람들이 널리 알고 있는 관사규정의 법칙을 살짝 어긴 결정이라 끊임없이 논란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런 관사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관사는 원어민들 사이에서도 때로 의견이 분분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소금은 그냥 짤쯔가 아니라 중성의 색을 입혀 다스 짤쯔! 소금은 왜 중성일까. 짜니까 나에게는 남성이어야 할 것 같은데, 자신에게 찝찔함을 선사하는 젠더여야 하지 않을까. 관사는 정말 나의 컨셉과 맞는 것이 없다. 나에겐 그냥 열린 우주다.

7. '제발(비테)'을 넣어서 문장을 공손하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말은 정말 친한 사이에서 그냥 소금 좀 줘봐. 하면서 '좀'정도 넣어주면 크게 문제 되지 않고 게다가 목소리를 나긋나긋하게 만들면 충분히 상대방으로부터 소금을 획득할 수 있다. 영어나 독일어는 아무리 친하더라도 심지어 가족사이에서도 제발 please, 독일어는 비테 (bitte)를 넣어줘야 훌륭한 인성을 갖춘 사람이 된다. 애미 애비 및 사방팔방에 친해지면 반말할 수 있지만 '제발'을 넣어서 문장을 공손하게 만드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매우 심플하고 바람직한 공손법이다. 우리말처럼 공손표현이 우그리 장창 많은 경우, 그냥 한국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존댓말을 제대로 배우는 것보다 빠를 수 있다.


우리의 존댓말은 서양 한국어 학습자들에게 쥐약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어와 독일어는 1대 1이다. 한국어의 존댓말과 독일어의 관사 데어, 디, 다쓰!


이제 문장을 조립한다.

수 있어 Kannst 너 du 나에게 mir 제발 또는 좀 bitte 관사 소금 das Salz 건네다 reichen?


문장에 필요 없는 주어도 자리를 맞추기 위해 반드시 넣어줘야 하고, 소금 앞에 관사도 넣어주고 홀까닥 어순을 뒤집어서 말해야 한다.


이렇게 뒤집어 말하기를 일상화 상용화 한다는 것은 초보학습자에게 매번 말 한마디 한마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전투하는 것과 같다. 짧은 시간에 모국어를 재구성해서 독일식으로 재조립해야 하는 고통을 견디고 연습과 반복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구성해 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지난하고 어려운 일 끝에는 다행히도 그 세계에 사는 타인과 연결될 수 있다는 짜릿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멋지다! 이러한 과정이 점점 편안해지면서 완전히 거꾸로 생각하는 타인과도 진하게 소통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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