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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 Jul 19. 2019

웃으며 거절은 못하지만

아빠를 닮은 너에게

 

며칠 전 아들 둘과 같이 밖에서 캐치볼을 하고 있었다.

한참을 재미있게 캐치볼을 하고 있는데 예담이의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가 우리가 야구하는 것을 보더니 멈춰 섰다.

“나도 야구 같이 하면 안 돼?”하고 물었다.

그 순간 예담이의 표정을 살폈는데 예담이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머뭇거리고 있다. 하기 싫은 눈치였다. 하지만 긍정도 제대로 된 거절도 하지 않고 있는 예담이를 보며 며칠 전 일이 생각났다.


며칠 전, 집에서 나와 책을 보고 있는데 야구를 하자고 그 아이한테서 연락이 왔다. 예담이는 가기 싫은 눈치였는지 “지금 책 보고 있는데” 하고 말했다. “그래서 야구 안 할 거야? 야구 안 하면 나랑 약속 어기는 거야.”라는 그 아이의 화난 목소리가 나에게도 전해졌다. 그 말을 듣고 예담이는 “그래 알겠어.” 하고 전화를 끊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있던 내가 물었다.

“걔랑 야구하기 싫어?”

예담이는 내 말을 듣자마자 참았던 감정이 터졌는지 울면서 말했다.

“학교에서 걔가 계속 괴롭혀서 같이 야구하기 싫단 말이에요.”

예담이 기를 들어보니 선생님한테 혼나서 기분이 나쁘면 자기한테 와서 비키라고 소리 지르고, 놀다가도 쉽게 짜증내서 같이 하기 싫다고 했다. 그런데도 같이 야구하자고 했는데 안 한다고 하면 그 친구 기분이 안 좋을까 봐 억지로 한다고도 했다. 결국엔 거절하지 못한 채 밖으로 나갔다.    


그 일이 생각나서 야구를 같이 하자는 그 친구에게 아빠인 내가 대신 거절했다.

“예담이는 네가 학교에서 자꾸 속상하게 해서 같이 야구하기 싫다고 하더라. 오늘은 우리끼리 할게.”

그 아이에게도 자신의 행동 때문에 친구가 속상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냥 피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방법도, 그 친구에게도 도움이 되지도 않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 친구도 이내 마음이 불편했는지 “저도 예담이랑 같이 하고 싶지 않았어요.”하고 자전거를 타고 가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거절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예담이의 모습이 못마땅해서 꾸중을 했다.

“왜 하기 싫은데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렇게 서 있었어? 하기 싫으면 싫다고 얘기를 해야지.”

“그렇게 말하면 그 친구도 속상하잖아요.”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면 너는 마음이 편해? 그러다 싸우거나 속상하게 하면 넌 ‘왜 걔 부탁을 들어줬을까?’ 하며 후회할 거 아냐.”

“...”     


나는 그런 예담이가 밉다. 나와 너무 닮은 예담이라서 말이다. 내가 가장 미워하는 내 모습을 닮은 예담이가 안쓰러우면서도 너무 밉다.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몇 번이나 피해를 봤음에도 다음에 같은 상황이 생기면 여지없이 반복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 남의 부탁은 거절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겐 사소한 부탁조차 하지 못하는 나. 예담이가 겪게 될 수많은 갈등의 상황이 너무나도 뻔히 보여 속상하다. 속상한 마음이, 나의 단점에 대한 미움이 그것을 닮은 아이에 대한 미움으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항상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길 바랐다. 정확히 말하면 좋은 사람이라고 비치길 바랐던 것 같다. 내가 좀 더 손해 보더라도 다른 사람이 좋았으면 그 걸로 됐다며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나의 희생에 진정으로 감사했고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탐했다. 좋은 선생님, 좋은 아빠, 좋은 남편, 좋은 사람으로 이름 붙여진 수많은 말이 점점 나를 옥죄어왔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불어난 좋은 사람이란 거인은 나를 숨 막힐 듯 좁은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나에게만 일어나도 감당하기 힘들었던 그 거인의 그림자가 내 아들에게도 드리워져있는 것을 느꼈지만 동병상련의 고통은 곧 잘 미움으로 변질돼 아들을 못 마땅해했다.


그날 밤,

아들 곁에 누워

“예담아, 다른 사람이 하기 싫은 부탁을 할 때 거절하기 힘들지?”

“네, 부탁을 들어주고 싶은 친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는데 부탁을 안 들어주면 친구를 따돌리는 것 같아서 불편해요.”

“아빠도 그랬어. 물론 지금도 그렇고. 아빤 예스맨이잖아.”

“맞다. 아빠 예스맨이지?”

“아빠도 거절하는 게 힘들었는데 이젠 하기 싫을 땐 솔직하게 얘기하려고 해.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면 행복하지 않잖아. 네가 걔랑 야구하러 갈 때는 즐거워 보이지 않더라.”

“네, 즐겁지 않았어요.”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어. 모든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다 들어주면 다른 사람들이 진짜 네 생각이 어떤지 몰라서 만만하게 보거나 널 멀리하게 될 수도 있거든.”      


아빠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예담이도 생각이 많아졌나 보다. 그러다 갑자기 묻는다.      

“아빠, 그런데 걔는 자기가 먼저 야구 같이 하면 안 되냐고 물어봤으면서 아빠가 오늘은 같이 하기 싫다고 하니까 자기도 나랑 같이 하기 싫다고 했을까요?”

“사람은 보통 자기 마음을 다치고 싶어 하지 않아. 그래서 자기 마음을 아프게 하면 아프기 싫어서 보호하고 싶어 지는데 아빠의 말이 조금 아팠나 봐. 그래서 자기 마음을 보호하려고 그렇게 말한 것 같아.”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으면 다른 사람도 기분이 안 좋을 것 같아요.”

“그래. 맞아.”     

예담이가 아빠의 말에 조금 힘을 얻길 바랬다. 사실 나에게도 그러했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으니까.      



다음 날, 학교 마치고 딱지치기를 하러 나간 예섬이가 중앙현관 벨을 눌렀다. 비밀번호를 아는데 벨을 누른 게 의아해서 통화버튼을 눌렀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아빠를 찾는다.

“아빠 예담이 형아가 ○○형아(어제 그 아이)랑 싸워요.”

급히 밖으로 나가며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예담이를 찾으러 가는 길에 집으로 걸어오고 있는 예담이를 보았다. 예담이는 아빠를 보자 참아왔던 눈물이 나오는 것을 애써 억누르는 듯했다. 다행히 치고받고 싸우지는 않았나 보다. 예담이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걔가 나한테 딱지를 빌려달라고 하잖아요. 전 주기 싫어서 안 준다고 했어요. 근데 걔가 저한테 욕을 했어요. 그래서 저도 걔한테 평소에 나 괴롭히고 화풀이하는 게 속상했다고 소리 질렀어요. 그랬더니 말하는 도중에 지랄한다고 욕을 하고 그냥 갔어요. 저는 아직 할 말이 남았는데요.”      

“예담아, 하고 싶은 말 했으니까 됐어. 걔도 이제 네 마음이 어땠는지 알게 됐을 거야. 그래서 너한테 전처럼 함부로 대하지 않을 거야.”      

예담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해서 속이 시원해졌나 보다. 눈물이 쏙 들어갔다.  예담이 얘기를 듣고 나니 나도 마음이 조금 놓였다.     


 예담아, 우리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자. 그 대신 매 순간 좋은 선택을 하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나를 위한 좋은 선택을 하자. 우린 맘이 불편해서 다른 사람 마음까지 헤아리다 때론 지치기도 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기를 너무 자책하며 살지 말자.  


아들아, 아빠를 닮은 너에게 참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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