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이 보내는 학부모 편지
안녕하십니까? 6학년 0반 담임교사입니다.
요즘 국어 시간에 아이들과 논설문을 배우고 있습니다. 논설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견을 정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주장이 정해진 후, 그 주장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선 근거가 필요하지요.
예시자료, 전문가의 인터뷰, 주장대로 하지 않을 때의 문제 상황 등을 휴대폰이나 교실에 있는 태블릿 pc로 찾아보며 글을 쓰게 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보며 글을 쓰니 내용이 훨씬 다채롭고 깊이 있었습니다.
모둠원의 글을 같이 돌려 읽으며 발표할 내용을 선정하고 아이들 앞에서 발표를 하였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의 글이 이 정도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참 놀랍고 대견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건 중학교 수준의 글이라고, 선생님도 너희들 나이에 이렇게 쓰지 못했다고 얘기했습니다.
진심이었습니다. 아이들의 글이 참 훌륭해서 칭찬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며칠 있으면 101주년 어린이날입니다.
어린이날을 생각하며 아이들이 행복한 날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마음에 담아두고 살아갑니다.
뜬금없이 떠오르는 어린 시절 기억 덕분에 웃음을 짓기도 하고 마음 한구석이 아파오기도 하지요.
제 어린 시절의 기억은 아팠던 기억이 많습니다.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단점이 많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가장 큰 단점은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는 것입니다.
말을 더듬는 형을 따라 하며 놀리다 시작된 말더듬이 그렇게 저를 괴롭힐 줄은 몰랐습니다.
타인과 말을 하는 것조차 꺼리게 될 정도로 제 스스로 위축되었고 지금까지 제 마음속에는 누군가를 놀려서 말을 더듬게 되었다는 죄의식이 이따금씩 저를 억누릅니다.
두 번째 단점은 다한증입니다. 어릴 때부터 손과 발에 땀이 흐르듯이 나는 병이 있었던 저는 필기를 하거나 시험을 볼 때 종이가 젖어서 항상 손수건을 들고 다녀야 했고, 항상 발에 땀이 나서 냄새가 심할까 친구네 집에도 놀러 가지 않았습니다.
또한 보통 사람과 다르게 색을 보는 것, 어릴 때부터 뒷머리 색이 하얀 것 등등 어릴 적 제 기억들은 제 단점이 누군가에게 들킬까 위축되고, 모든 것이 나의 잘못처럼 느껴져서 마음속에 돌덩이를 안고 지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때의 저는 왜 나에게만 이런 고통이 모여있을까 괴로웠었고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자책한 날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저를 향한 칭찬의 말을 자주 해주시던 6학년 선생님을 만나고 제 단점에 매몰되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장점을 알게 되었고 교사의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린 저에게 ‘나도 커서 선생님이 되면 아이들의 장점을 찾아 칭찬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어릴 적 제 생각과 연결되는 경험을 자주 합니다.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볼 때마다 예전 어릴 적 제 모습과 그런 제 모습을 격려해 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겹쳐 떠오릅니다.
문득 이런 생각도 떠오릅니다.
‘이 아이도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지는 않을까?’
‘홀로 그 고통을 감당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을까?’
어쩌면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이 제 속에 어린 내가 가장 듣고 싶어 했던 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릴 적 못난 모습이 부끄러워 꾹꾹 누르기만 해서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자유로워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이들과 지내며 제가 좋은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쩌면 어른이 되어 버린 제가 어릴 적 저에게 보내는 사과 편지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린이날을 생각하며 어린이들의 지금이 행복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이유는 아이들은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한 현재의 누적이 아이들이 미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