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훈 Apr 08. 2020

나쁜 생각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고 하십니다.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고자 글쓰기란 행위를 본인만의 저항방식으로 전유했죠. 전 나쁜 생각에게 지지 않으려고 써왔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마치 저를 위대한 사람의 반열에 올리는 것 같아 조금 낯뜨겁긴 하지만, 사실 21세기란 누가 더 '자기 포장'을 잘하냐의 싸움 아니겠습니까. 별 거 아닌 것들이 대단한 무언가로 소비되고 치장되는 시대에, 저라고 포장 좀 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요. 자기 치장 좀 한다고 제가 세상에 엄청난 해를 끼치는 거도 아니고 말이죠. 이런다고 제가 뭐 대단히 주목받는 일도 없습니다. 그랬다면 제가 지금 여기서 구구절절 제 사연을 끄적일 시간은 없었을 겁니다. 아무튼 전 지금 브런치 '작가' 신청을 위해 무언갈 쓰고 있습니다. 포장이 필요한 상황이란 말입니다. 브런치에 잘 보여야 하니까요. 그러니 포장 좀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쩌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됐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글'이 위대한 사람들이 써온 글과 같은 성질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본격적으로 무언갈 쓴 건 2015년입니다. 대부분이 무언갈 찍는데 몰두하던 시절에, 글이란 걸 쓴 이유는 간단합니다. 기자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럼 또 질문이 생기죠. "왜 기자가 되고 싶었는데?"라고 말이죠. 그것도 간단합니다. 세상에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유란 건 거창한 성질의 무엇인가 봅니다.


지방대를 다니다 편입을 했습니다. 통학거리가 좁아졌어요. 왕복 두 시간에서 왕복 40분 정도로. 주류의 삶과 더 근접하게 살 수 있으리란 막연한 희망도 있었고요. 그게 2015년 언론사 입사 지망생들이 모인 '아카데미'란 장소에 발들이게 만들었습니다. 고대 철학자들은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대단한 진리를 깨닫기도 했다고 하는데, 저도 그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무언갈 깨달았습니다. 간단합니다. 세상에 대단한 사람은 많고, 난 기자가 될만한 깜냥이 못 되는구나. 


출발선이 달랐던 거죠. 논리적 글쓰기란 걸 생전 한 번도 못해본 편입생이 학창 시절부터 탄탄한 논술 수업을 듣고, 학보사 일을 해온 친구들과는 필력도, 관점도 같을 수가 없으니 말이죠. 누군가는 말하겠죠.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근거로 제시하면서, '노오력'하고 꾸준히 하면 언젠가 그들을 역전할 수 있으리라 말이죠. 아이고.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아마 늘 비주류로 살 수밖에 없던 어떤 약자가 만들어 낸 희망의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마치 니체가 도덕을 약자들의 관점이 만든 일종의 정신승리라고 서술했던 것처럼 말이죠. 요즘 시대에 쉬는 토끼는 없습니다. 수업을 들었던 아카데미에도 잠시 휴식을 취하는 토끼는 없었습니다. 


세상에 비관과 좌절만 있는 건 아닙니다. 위기가 기회라는 얘기는 관점의 전복을 상징하기도 하잖아요. 발 빠른 토끼들은 제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저들이 투자한 시간만큼을 투자한다면, 나도 언젠가 저들의 관점과 필력을 가질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말이죠. 물론 사회가 정한 모범적인 타임라인에 걸맞은 삶은 포기해야 했죠. 근데 요즘은 누구나 몇 가지씩은 포기하면서 살잖아요. 아무튼, 훌륭한 친구들과 훌륭한 모임을 가지면서 훌륭한 무언가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들 내로라하는 언론사의 기자들이 됐습니다. 저만 빼고요.


제가 원래 말이 좀 많은 편입니다. 나쁜 생각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는 말을 하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본론으로 돌아와야죠. 각설하고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글을 쓰면서 좋은 건 스스로를 돌아보는 지점이 생긴다는 거였어요. 단순히 오늘 하루만 회상하는 게 아니라, 먼 과거까지도 곱씹어보게 되더라고요. 수능 공부도 제대로 안 했던 사람이 '특정 시기의 역사'를 글감으로 끌고 와서 쓰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어요.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건 '제 얘기'를 하는 거뿐이었죠. 당연히 읽어줄 사람이 만무했죠. 글에는 독자를 위한 흥미요소와, 적절한 정보 거기에 설득력까지도 적절히 버무려져야 하니까요. 


독자 없이 쓰는 글은 제게 분명 도움이 됐습니다. 무수히 많은 '나쁜 생각'들과 마주할 수 있었거든요. 자, 여기서 짚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나쁜 생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죠. 그걸 하려면 '나쁨이란 무엇인지'와 '생각이란 무엇인지'를 먼저 정의할 필요가 있고요. 그래서 제안드립니다. 제가 그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별 볼 일 없고 내세울 거 없는 사람이 가진 개똥철학을 펼칠 수 있는 작은 평수의 공간 하나를 임대해주세요. 


제 이름은 김승훈입니다. 전혀 유명하지 않은 잡지사에서 에디터 일을하고 있습니다. 일반 대중이 떠올리는 에디터란 직업의 성질과는 결이 많이 다르지만, 그들 못지않은 열정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과거에 여러 번 브런치 작가 신청을 거절당했습니다. 전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쓰기도 합니다. 몇 년 전보다 더 정성을 들여 작가 신청을 위한 텍스트를 따로 썼습니다. 그땐 없던 명함도 생겼습니다. 제출 가능한 포트폴리오도 제법 쌓여있네요. 이제 저를 위대한 브런치에 상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전 독자가 필요합니다. 반응이 마렵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