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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훈 Jul 13. 2020

어떤 자살은 탈옥이다


믿음의 크기가 부풀어 오를수록 기대감도 커지기 마련이다. 그게 쾅 하고 터지면 남는 건 실망뿐이다. 한 사람의 말과 생각이 그 사람의 행동과 정확히 일치할 거란 생각은 일찌감치 접어뒀지만, 기어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복습시켜주려는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등장한다. 덕분에 얻은 게 있다. 그런 이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어떻게든 세상에 애정을 가지려는 사람들의 머릿속엔 신뢰 대신 불신이란 단어가 선명해진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 윤리적인 삶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나도 그저 말뿐인 사람일 거라는, 뒤가 지저분할지 모른다는 의심이 지극히 합리적 접근으로 자리했으니 말이다. 설령 내가 하는 말이 실제로 어떤 실천으로 이어지는 삶에 가깝더라도 그걸 절대로 티내지 않을 생각이다. 조금 다른 의미지만, 인정 투쟁이란 게 나도 이젠 지겹다. 누구누구들 덕분에.


자기 잘못과 마주하는 일이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 사람을 나는 여태껏 본 기억이 없다. 어떻게 하면 그걸 회피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봤다. 인상을 쓰거나, 헛기침을 하거나, 목숨을 끊거나. 자기모순적 행태와 마주 앉았다 한들, 그 자리에서 스스로의 과오를 바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인상을 쓰거나, 헛기침을 하거나, 인정에 호소하거나. 


그는 마땅히 마주하고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했다. 피해자에게도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걸 보여줬어야 했다. 말하기를 통해 피해자가 주체로 거듭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어야 했다. 정세랑 작가의 표현처럼 어떤 자살은 가해가 맞다. 거기에 나는 의견 하나를 덧붙인다. 어떤 자살은 탈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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