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쓰여 있었다. 내가 지금 여기 있는 이유를 나는 몰라요. 당신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몰라요. 이제 뭘 해야 좋을지 나는 몰라요.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나는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초록 아보카도 머리핀을 한 아기의 눈동자가 그렇게 읽혔다. 둘러싼 꼬마들은 아우성을 해댔지만 아기는 자기만의 세상에 있는 듯했다. 어쩌다 보니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그러나 꾸준히 기어올라 놀이터에 놓인 원통 미끄럼틀에 들어서버린 것이다. 태어나서 겨우 한 해나 살았을까 싶은 아기였다. 연지를 바른 것보다 더 고운 발간 볼을 하고서 줄을 선 꼬마들이 아래로 내려가지도 못하게 그렇다고 거꾸로 올라가지도 못하게 턱 하고 막아선 채로 앉아있었다.
엄마는 왜 자꾸 우리 아가 이리 온 하며 불러대는지, 언니 오빠들은 왜 자꾸 비켜달라고 하는 건지, 지나가던 어른들은 왜 자꾸 귀엽다고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투명 원통에 들어앉아 인형처럼 커다란 눈만 꿈벅일 뿐이었다. 꼬마들 입장에서 보자면 인파가 몰리는 시간에 가뜩이나 붐비는 통로를 한참이나 점유하였으므로 방해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아기는 정말이지 무해한 존재였다.
아무런 의도가 없는 순수한 눈망울. 연신 귀엽다 외치며 웃고 있는데 어쩐지 좀 슬퍼지는 기분이었다. 그런 눈을 한 적이 있었나. 그런 눈을 바라본 것은 또 언제였던가. 뻔한 의도가 보이는 그 눈빛을 보고도 모르는 척해야 했던 것이 나였고, 또 내 앞의 당신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이 아니라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함 자체를 용서받을 수 있던 날들 또한 얼마나 짧았던가.
아기는 결국 엄마에 의해 바깥으로 옮겨졌고 미끄럼틀 정체 현상도 해결되었다. 아 그리워라. 아무것도 모르던 날들이여. 아는 것이 힘이고 모르는 게 약인 세상이 문제없이 돌아가는 까닭은 귀여운 아기들이 세상이 병들지 않을만큼의 순진무구함을 담당해주는 덕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