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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데이 Oct 01. 2022

누구나 호호 아줌마가 필요해

“그런 거 다 괜찮아요. 호호”


말이 가진 위력.

활짝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해주니 지난 모든 날이 괜찮다고 여겨진다.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좋아 ‘왜 이제야 나타나셨어요.’ 묻고 싶을 정도다. 부쩍 자주 마주치게 된 이웃은 요즘 나를 볼 때마다 호호 웃으며 그렇게 말해준다. 붙잡고 힘들다고 하소연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러고 보니 여기 산지 벌써 3년이나 되었다. 그 이웃과는 여태까지 눈인사만 하는 사이였다. 유례없던 바이러스가 일상을 침범하기 시작했을 때 살던 곳을 떠나 여기로 왔다. 물론 바이러스로부터 도망쳐야만 하는 영화 같은 상황은 아니었다. 남편의 직장 발령 제도에 의한 것이었다. 하필 코로나 공포에 전 세계가 사로잡혀 있을 때 이사를 해야만 하다니 마음이 심란했다.


 지역사회 커뮤니티에서는 00 학교, 00 회사, 00 식당에서 감염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특파원이라도 된 것처럼 전하고 있었는데 왜 더욱 조심하지 못했는지 어쩌다 몹쓸 병에 걸리고 만 것인지 이제 와서 달라지지 않을 것들로 갑론을박을 벌였다. 오프라인에서는 다들 하하 호호 웃지만 온라인에서는 감염된 사람들이 마치 중한 죄라도 지은 것처럼 마녀사냥이 이뤄지고 있었다. 지금은 다들 저마다의 코로나 무용담을 가지고 있지만 그땐 그랬다.


 돌아보면 어린 두 아이를 건강하게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던 거 같다. 큰 아이가 생후 30개월, 둘째 아이가 6개월이었다. 이런 상황일수록 엄마인 내가 새로운 곳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압박도 심했다. 이사라는 것이 그렇듯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 문제였다. 이전 설치를 해야 하는 가전들 때문에 사람을 들일 일도 많았는데 그럴 때면 모두의 안전을 위해 마스크 착용을 부탁한다는 사전 안내 메시지를 받았다. 집 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서 멀찍이 떨어져 인사하는 게 조금 우습기도 했지만  뉴스에서 연일 병상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전하는 걸 보니 결코 우스운 일은 아닌 게 분명했다.


용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직원이 나 대신 고객 서명란에 사인을 하겠다고 했다. 내 이름을 단말기에 받아 적으며 새롭게 생긴 규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거의 대각선의 끝에 서서 필요한 이야기만 했고 방문 직원들이 떠나고 나면 모든 창을 열어 재빨리 환기했다. 집 앞 놀이터도 한동안 한적했다. 땀을 흘려 잠깐 마스크를 벗고 놀던 아이들도 다른 아이가 오면 얼른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엄마들은 사람이 많아졌으니까 이제 집에 가자며 아이들을 다독였다. 팬데믹은 일상의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선배님, 저 지금 노아의 방주에 타고 있는 거 같아요.”

 절친한 선배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코로나 시대의 육아라는 글자에 담긴 희로애락이 버거울 때가 종종 있었다. 임신과 출산으로 이어지던 기쁨과 환희의 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다들 기나긴 인고의 세월을 쌓고 있겠지.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행복한 순간이 많지만 때론 내가 엄마라는 게 불행하다는 몹쓸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다. 남편도 아이들도 아군인데 때론 그들이 적군이라 착각했다. 끝없는 뒤치다꺼리에 지쳐 불호령을 내리는 날도 있었다.


그때는 정말이지 노아의 방주에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바깥에 큰 비가 내린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안전한 방주에 올라탔는데 이 비는 언제 그칠는지 배의 문은 언제 다시 열릴 건지 한낱 인간으로서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배에서 내리지를 못하니 서로의 밑바닥을 다 들여다보고 사는 기분이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역할인 본능에 충실할 뿐이었으니 사실 내 밑바닥만 보고 살았다.


우리는 일층에 살고 있는데 코로나 팬더믹으로 집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좋은 선택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말 못 할 후회가 하나 있긴 했다. 도무지 말이 안 통해 한바탕 큰소리를 외쳐대고 났을 때인데 못난 엄마라는 자책감도 괴롭지만 밖에서 누군가 들었을까 봐 또 스트레스를 받았다. 우리 집이 조용할 때면 바깥소리가 들려오는 걸 듣고 아차 싶었던 것이다.


 일층은 모든 것이 금방 탄로 난다. 다른 이웃이 몇 층에 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는 사람은 많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면 우리 집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데 일층 생활은 대체로 만족스럽지만 평화롭지 않은 날일수록 이런 점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가뜩이나 처음 보는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인데 마스크로 반쯤 가린 얼굴은 더 기억하기 어려웠다. 유독 자주 보는 이웃이라 할지라도 구분하지 못했다. 저 사람이 내 호통 소리를 들은 건 아닐까, 우리 애들 우는 소리를 들은 게 아닐까 혼자 민망해하고 기가 죽을 뿐이었다. 그래도 겉으로는 아닌 척 호호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 나면 아주 어릴 때 텔레비전에서 본 애니메이션이 생각났다.



‘방글방글 아줌마/ 투덜투덜 아저씨/ 아줌마가 펼치는 꿈속 같은 이야기/ 꼬마친구 숲 속 친구 모두 모두 즐거워/ 아무도 모르지만 숲 속 요정 알아요/ 호호 아줌마가 작아지는 비밀을/ 새를 타고 하늘을 나는 호호 아줌마/ 개미만큼 작아지는 호호 아줌마/ 오늘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하호호 아줌마 /우리 호호 아줌마’


티스푼을 목에 걸고 다니다가 그만큼 작아지는 호호 아줌마. 물론 나에게 티스푼만큼 작아지는 능력은 없다. 그저 문을 열고 나가면 하하호호 웃으며 다니는 말 그대로 ‘호호 아줌마’ 일뿐이다.  다만 내가 집 안에서 괴물로 변한다는 비밀만큼은 나의 우아한 이웃들이 모르길 바랐다.


 누군가 이젠 엔데믹 시대라고 하더니 일상의 모습이 점차 회복되고 있다. 놀이터도 다시 시끌벅적해졌고 엄마, 아빠들도 같이 나와 아이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대화를 나누곤 한다. "처음 봤을 때 둘 다 아기였는데 많이 컸네요." 누군가 말을 걸어 보니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다. "저 같은 동 7층 00 엄마예요." 그러고 보니 오전과 오후로 아이들이 등 하원할 때 자주 마주친 분이었다.


더 이상 인사가 아닌 일상 이야기를 처음 나누게 되었다. 엄마들이 재밌어 보였는지 아이들이 시원한 것 좀 마시고 싶다며 달려온다. 그러면 그만 놀고 집에 가서 물 마시자고 하니 들어가기는 싫지만 목은 마르다고 음료수를 달라고 떼쓰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대게 밖에 나오면 엄마가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것을 알고 그 기회를 틈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면이 있다. 그 모습을 보던 이웃이 자기 아이 몫인 음료를 건네주며 "괜찮아요. 다들 그래요. 호호" 웃어 보인다. 그 뒤로도 그 이웃과는 몇 번 더 놀이터에서 마주쳤다. 그분은 늘 웃으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괜찮다는 말은 들을 때마다 고마웠다.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는 노는 게 노는 게 아니었다. 왼쪽에서는 큰 아이가 도와달라고 외쳐대고 오른쪽에서는 작은 아이가 넘어져 울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유모차, 기저귀, 물티슈 등 엄마들만 아는 짐들을 지고 다니느라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었다. 이제는 그 시간들을 지나 놀이터 벤치에 앉아 아이들 노는 모습을 멀찍이 지켜보는 6년 차 엄마가 되었으니 그 이웃도 내 모습을 쭉 봐왔을 것이다.


 다음날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그분을 또 마주쳤다. 마스크를 벗고 있는 얼굴은 처음 봤는데 어제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 아닌 거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길래 나도 얼른 마스크를 벗었다. 이른 아침 민낯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처음이었다. 바라볼수록 예쁜 얼굴이다. 갑자기 그녀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맨날 애들한테 큰소리치고 우리 창피해서 이사 가야 된다고 그랬어요. 호통 치려면 남들 들을까 봐 창문도 닫고요. 애가 울면 나도 울고 애가 소리치면 나도 소리치고 그러다가 목도 쉬었다니까요. 괜찮아요. 다른 이웃들도 다 그렇게 키웠어요.” 호호 아줌마가 미소로 치부를 드러내며 나를 위로하고 있다. 의젓하고 사랑스러운 두 아이를 거저 키우는 거 같아 부러웠는데 그녀도 그러는 줄은 몰랐다. 그녀의 고해성사가 묵혀두었던 내 죄에 하사된 면죄부 같았다. 속마음으로 외쳤다. ‘천사님, 어디 계시다 이제야 나타 나신 건가요!’


 문 밖에서 만난 호호 아줌마 두 명이 서로 명랑한 기운을 주고받는다. 나는 문득 이웃의 이름이 알고 싶어졌다. 아이들의 이름이 아니라 그녀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우리는 3년 만에 00 엄마에 가려진 본인 이름으로 통성명을 했다. 마스크 속에 가려졌던 예쁜 얼굴, 예쁜 이름. 서로 좋은 하루가 되기를 빌어주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기분이 좋아지며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확신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호호 아줌마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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