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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데이 Sep 21. 2022

살아있는 수고


 남편이 운전하는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목적지를 향해 가다 보니 창문 밖 나무가 굉장히 가깝게 보였다. 어느새 시가지를 벗어나 외곽으로 빠진 모양이었다. 신호에 걸려 정차하자 우리는 늘 그렇듯 특별할 거 없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창문을 열어보니 나뭇잎이 손에 닿을 듯했다. 마치 진녹색 물감을 부어놓은 것 마냥 물기를 가득 머금은 모습이 싱그러웠다. 더위에 맥을 못 추는 나와 달리 후덥지근하게 불어오는 바람에도 이파리들은 살랑이며 춤을 추고 있었다.


 "와, 저거 봐. 나뭇잎 흔들리는 거 예쁘다.”

나는 금세 기분이 좋아져 말했다. 남편은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의 숲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미묘한 변화의 아름다움을 알아챌 줄 안다. 그러나 오늘은 애석하게도 눈썹을 들썩이는 시선만 돌아올 뿐이었다. 창 밖 풍경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았지만 곧 바뀔 신호에 집중하고 있는 남편에게 와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종종 드라이브하며 산과 숲, 나무 형태와 빛깔에 대한 감상을 한참 떠들고는 한다. 아쉽지만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뭇잎이 흔들리는 걸 보며 느끼는 감상은 오직 나만의 것이었다.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상황과 사로잡힌 생각에 따라 느끼는 것이 다를 수 있으니 아무렴 괜찮다. 어쨌든 나는 길 위의 생명이 펼치는 스트릿 댄스를 1열에 앉아 즐겁게 관람했다.


 우리 집 거실에는 큰 창이 나 있다. 얄궂게도 우리 집 창문을 절반으로 나누어 오른편에는 네모 반듯한 주차장이 있고 왼편에는 키 큰 나무 한 그루와 키 작은 식물이 여럿 자라는 게 보인다. 이사 왔던 그 해에는 창 밖 풍경을 보는 경우가 드물었다. 아이들을 위해 택한 1층은 장점이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밖을 내다보는 것처럼 밖에서도 나를 들여다본다고 생각하면 얇은 홑겹 커튼이라도 가리고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더구나 겨울에 이사를 왔으니 모든 생명이 앙상하고 볼 품 없기도 했었다.


 몇 달이 흘러 완연한 봄이 되어서야 창문 밖 큰 나무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바로 벚나무였다. 마치 긁지 않았던 복권이 당첨되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들은 양 어제까지도 들여다보지 않던 걸 하루에도 몇 번씩 내다보기 시작했다. "우와, 예쁘다. 열매야, 나무야, 창문 밖에 팝콘 열렸어!" 어쩌면 나는 두 아이 태명마저도 그리 지었는지. 아이들은 마음씨 곱게도 팝콘이 새롭게 터지는 소식을 알릴 때마다 한달음에 달려왔다. 마침내 나는 활짝 커튼을 열고 창 밖 아름다움을 누리며 살게 되었다.


벚나무의 분홍 꽃잎은 하루하루 새 날이 밝아오는 횟수에 비례하여 늘어가다 한 차례 비가 내린 날을 기점으로 마냥 줄어들기 시작했다.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계절이 바뀌는 동안 견디고 버티다 마침내 만개하고야 만 녀석들이 허무하리만치 급히 낙화했다. 그걸 보고 있자니 아무 노력도 보태지 않은 나조차 덩달아 기운이 빠졌다. 어떻게 보면 네모난 창문은 액자 프레임 같기도 했는데 얼떨결에 살아 움직이는 벚꽃 액자를 소유하게 되었으니 어떤 모양이든지 자연의 선물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러고는 마침내 꽃 잎 한 장 남지 않고 가지에 있던 모든 생명이 다 떨어져 버렸다. 아쉬움이 미련으로 남았을 때 벚나무의 새 매력을 알게 되었다. 무성하게 자란 연녹색 잎들. 갑작스러운 소나기에도 뜨거운 땡볕에도 너도나도 바람에 몸을 맡겨 춤추며 여전히 가지에 붙어있노라고 증명했다. 찰나에 홀리듯 마음을 빼앗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꽃잎도 곱지만 물에 젖고 볕에 타고 바람에 날려도 가지에 꼬-옥 붙어살아있는 수고를 감당하는 나뭇잎은 기특했다. "와. 나뭇잎 바람에 흔들리는 것 좀 봐!" 거실에서 청소기를 돌리던 남편도 웃으며 대답했다. "나무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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