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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데이 Nov 28. 2022

둥근 해가 떴습니다!

까꿍! 오늘 아침도 둥근 해가 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최고의 위로는 아침이 밝는다는 거다. 속 편한 소리 한다고? 물론 가늠할 수 없는 다양한 이유로 해 뜨는 게 싫은 사람도 있을 거다. 나도 때로는 아침이 밝아버렸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적이 있다. 보고 싶지 않은 얼굴 때문에 학교 가는 게 몹시 싫었던 날, 전날 벌여놓은 실수로 회사 가는 게 고역 같던 날, 할 수만 있다면 죽을 때까지 미뤄두고만 싶은 중압감이 누르는 날이 그랬다.


그런 날은 보통 잠을 잘 이루지 못했으므로 해가 뜰 때까지 뻑뻑한 눈을 문지르며 비몽사몽 간을 헤매었다. 혹자는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밤사이 온갖 상념에 젖어  덜 마른 빨랫감처럼 매트리스 위에 축축하게 늘어져있다가 이제는 정말 자야겠다고 마음먹으면 갑자기 커튼 사이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들어오고야 말았다. 속절없이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럴 때 누워있는 몸보다 일으키기 어려운 건 누워있는 마음이었다.


그래도 가야만 하는 곳이 있다는 건 어쩌면 행복한 일이다. 해가 밝아도 갈 곳이 없어 어젯밤 머문 자리에 가만히 누워있어 보니 그것도 마찬가지로 괴로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더 이상 번듯한 건물 안에 마련된 개인 책상이 나를 설명해주지 못하고 때로는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괴로웠으나 어느 정도 같은 분류에 속해있음을 증명해주던 동료도 사라지고 나니 이번에는 편안한 보금자리에 덩그러니 놓인 진짜 나를 마주하는 게 더 불편했다.


해가 뜨는 게 그다지 달갑지 않던 날 생각했다. '인생 돌아가는 거 진짜 쳇바퀴 같다.' 그렇다고 해마저 뜨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처음에는 편히 쉴 수 있는 밤이 즐거울 테지. 보고 싶었던 콘텐츠 영상을 몰아보기도 하고 충분치 못했던 수면 욕구도 좀 채워보고 그러다가 노는 게 지겨워지면 미뤄둔 책도 좀 읽어보고 공부도 좀 하겠지. 안타깝게도 생산적인 걸 추구하려는 시도는 얼마 못 가 다시 단순한 즐거움에 대한 탐닉으로 바뀌어버리고 말 거 같다.


재밌는 상상도 해본다. 해가 뜨지 않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름대로 생각해보는거다. 가장 먼저 돈을 좇는 사람들이 반응하고 긴 밤을 즐길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체험판으로 무료 제공할 것이다. 그다음에는 유명세를 좇는 사람들이 협찬을 받아 SNS에 각종 해시태그를 걸어 #해가 뜨지 않는 세상 #밤의 매력 따위 글을 올리며 누가 더 그럴싸하게 즐기나 겨루겠지. 대중은 해가 없는 세상에 불만을 토하는 자신이 뒤처지는 건가 의심하다 결국 그들이 판매하는 제품을 따라사고 장소를 찾아가며 개인의 돈과 시간을 들여 밤을 소비하느라 바쁠 것이다.

 

그 즐거움이 끝날 때쯤 돈을 좇는 사람들은 이제 지불능력이 있는 자들만 누릴 수 있도록 해가 뜨는 세상에만 있던 과거 경험을 값비싸게 판매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 컨텐츠는 소위 말하는 지식인들이 대중이 놀고먹는 기간 동안 연구에 매진하여 돈을 좇는 자들에게 적당한 임금을 받고 구현해낸 것이다. 지식인은 본인이 만든 창작물 생리를 알기 때문에 새로운 세상에서 소외받을 일은 없다.


그러는 사이에 해가 있어야만 의미가 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자리는 모두 사라져 버렸을 테고 더이상 소비할 능력이 없는 대중은 자신의 별 볼일 없는 벌이 수단을 탓하다가 생각해보니 이건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며 뒤늦게 연대를 외칠 것이다.


소수를 위한 프리미엄 서비스를 누리던 정치인들은 민심을 달래며 우매한 자들의 표를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그제야 서민과 소외계층도 공평하게 햇빛을 누릴 수 있도록 해드리겠다며 다문화, 다자녀, 성소수자, 장애자 그리고 영유아 정도에 한하여 월 4회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광합성을 제공할 것이다. 나머지는? 정부가 가정당 일정 비용을 차등 지불할테니 이용 의사가 있는 사람은 건강보험으로 소득을 증명하라고 하겠지.


맞다. 이건 모두 판타지일 뿐이다. 태양을 공전하는 지구가 기특하게 스스로 자전까지 해주는 덕분에 낮과 밤이 생긴다는 걸 우리는 모두 배워서 알고 있다. 태양은 그대로 있지만 만약 지구에 도달하는 빛이 없어서 어둡다면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모든 존재가 위협받으므로 얼마 가지 않아 생태계가 붕괴될 것이다. 반대로 태양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면 지구는 태양의 인력에서 벗어나 맹렬한 속도로 우주 속 어딘가로 날아갈 것이다. 결국 해가 뜨지 않는다면 우리도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마침내 나는 둥근 해가 뜨는 아침이야말로 모두에게 공평한 위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의 환경적 요소들은 이미 창조자가 공평하게 제공해 준 것이다. 나 역시 말은 이렇게 하더라도 이 공평한 위로조차 잊고 사는 날들이 많다. 불과 얼마 전에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하루가 지겹고 고단했다. 밤이 깊었으니 당장 누워 쉬고 싶었지만 할 일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먼저 아이들을 씻겨야만 했다. 그런데 둘째 아이가 눈치를 챘는지 새는 발음으로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겠는가. "엄마, 오늘 하루가 조금만 남았으니 조금만 힘내요."


때로는 지구에 와서 30년을 넘게 살아온 나보다 고작 40개월 살아낸 꼬마가 더 지혜롭다. 하루가 남은 만큼만 힘을 내라니 살면서 그렇게 지혜로운 위로를 들은 적이 있었나 싶다. 남은 하루와 다가올 내일을 생각하니 마가렛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마지막 대사가 떠올랐다. 누구라도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이 소설은 전 세계적으로 대성공을 기록하며 1937년에 소설 부문 퓰리처상을 받았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흥행을 거두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번역으로 훨씬 유명하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해가 뜬다는 건 과거의 그들에게, 현재의 우리에게, 멀리 있는 당신에게, 여기 있는 나에게 공평하고도 변함이 없는 유일한 위로다.  내일은 이 노래와 함께 일어나 둥근 해를 기쁘게 맞이해야지.


"둥근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제일 먼저 이를 닦자 윗니 아래 이 닦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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