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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hee Yang Jun 18. 2020

국회 앞 낙태 반대 시위자들께 전하고 싶은 편지

국회 앞은 늘 시끄럽게 북적인다. 사회에 전하고 싶은 각자의 메시지를 들고 밤낮으로 목소리를 내는 분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출퇴근길에는 늘 이분들이 전하려는 이야기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편이다. 어떤 간절한 마음으로 이 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내가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에 대한 이야기도,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할 이야기를 전하는 분들도 계셨던 한편 나도 모르게 한숨이 푹 쉬어지는 메시지도 있다. 그중 하나는 단연코 낙태 반대 시위자들의 주장일 것이다. 





거의 매일 여럿의 낙태 반대 시위자들이 곳곳에 포진해 계시지만,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 패턴은 거의 유사하다. 태아의 사진을 들이밀며 죄책감을 유발하고, 출산율도 낮은데 낙태가 웬 말이냐고 한다. 태아 사진에 덧붙인 문구도 가히 충격적이다. "엄마, 살려주세요"라니.



오늘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길에도 어김없이 보여지는 같은 문구에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는데, 함께 있던 언니에게서 의외의 말을 들었다. 여성인권에 관심이 많은 본인도 사실 낙태죄 폐지를 완전히 지지하기엔 망설여지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이유는 말할 수 없는 태아의 생명 보호와 관련된 것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미국의 예시를 들어 과연 낙태죄 폐지가 여성 인권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비단 언니의 의견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이제껏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논쟁에서 줄곧 목격해왔던 문제제기다. 그리고 충분히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다만 제기할 수 있는 반론이 훨씬 강력하며, 논리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위 두 가지 주장은 결국 설득되기 어려운 지점이 더 크다. 여성 인권에 관심 많은 언니도 이런 우려가 있다는데, 국회 앞에서 밤낮으로 시위 중인 분들의 확고한 신념은 얼마나 더하겠는가. 그러다 보니 이 문제에 대한 아무런 배경과 고민이 없다가도 이들의 메시지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비슷한 인식을 가지게 될 사람들도 충분히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시위자분들을 완전히 설득시키기란 불가능할지라도, 내 출근길마다 메시지를 던져주고 계시니 나도 짧게나마 답장을 드리고자 한다.



첫째, 태아의 생명권 보호의 주장에 관해 나는 아직도 우리나라 낙태죄에 관한 논의가 <태아의 생명권 VS 여성의 결정권> 차원에만 머물러있다는데 아쉬움을 느낀다. 이 대립구조는 낙태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로 귀속시키고, 결국 여성의 처벌로써 모든 책무를 방치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몸을 '태아 생산의 수단'으로 바라봐왔던 사회적 인식도 한몫한다. 자연스럽게 여성만이 낙태 문제에 있어 도덕적, 윤리적 판단의 대상으로 세워지게끔 한다. 이렇게 터부시 되다 보니 결국 음지로 향하는 여성들이 늘고, 신체적 리스크를 껴안으며 건강권을 크게 위협받는다. 또한 이 과정에서 막대한 시술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저소득층의 여성들은 더욱 위험한 선택지로 내몰린다. 낙태죄 폐지 전 미국이 겪었던 사회적 불평등 고착화 문제가 이를 잘 보여준다. 모두 '임신하지 않을 권리'를 국가가 규정하는 폭력이 빚어낸 비극이다. 생명 경시의 문제를 풀어내고 싶다면 낙태의 범죄화가 아니라 청소년기 성교육에 주목하는 것이 오히려 훨씬 합리적이지 않을까.



둘째, 과연 낙태죄 폐지가 여성 인권에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선 '낙태죄가 존재함으로써 발생하는 다층위의 폭력'보단 훨씬 진일보한 결과를 이룰 수 있음에 확신한다. 여기서 언급되었던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았다. 1973년 낙태 합법화 당시의 낙태율은 약 16%였는데, 이후 1980년 29.3%까지 높아졌다가 최근인 2014년에 다시 14%로 떨어졌다. 그러나 낙태 합법화 직후의 치솟은 낙태율은 '안 할 사람들이 낙태를 해서가 아니라, 해야 할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했기 때문에' 보여지는 결과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미국 이외의 전반적 해외 사례들을 살펴보았을 때에도 낙태죄 유무가 낙태율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지 입증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2019. 04 KBS 팩트체크) 무엇보다 낙태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여성의 신체다. 당신들께서 왈가왈부하시지만 결국 내 몸, 우리 몸에 관한 이야기라 누구보다 우리 자신에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여성에 대한 처벌 여부에 대한 고민이 아닌 여성에 대한 신뢰의 형성이다. 캐나다의 임신중지권연대 대표 조이스 아서는 "임신 중지가 논란이 되는 사회는 여성에 대한 불신이 저변에 깔려있다. 사회가 여성을 믿고 지지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평등한 교육과 경제적 기회를 누리게 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여성인권의 진전을 진심으로 응원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는 이야기다.



추가적으로 종교적 맥락에서 반대하신다면, 글쎄. 그렇다면 당신은 성경에서 제시된 모든 것들을 철저히 이행하고 계신지 묻고 싶다. 고기도 일절 먹지 않고, 직물 혼방의 옷을 걸치지 않으셨는지 궁금하다.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크기의 죄가 아니냐 물으신다면, 그 죄의 경중을 판단하는 것이 언제부터 우리의 몫이었는지도. 이처럼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층위의 모순을 야기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믿고자 하는 신이라면, 인류애적 관점에서의 관용과 자애를 충분히 베푸실 것이라 생각한다. 동성애 혐오론을 절대 납득할 수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 좋아하는 신부님의 강론 중 '생명 중시를 위한 낙태 반대'에 대한 이야기에 이의를 제기했던 것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의 친구들과 나 자신을 위해 그러한 발언에 맞설 것이라 말씀드렸던 것 또한.



마지막으로 정말로 태아의 미래와 아동의 인권을 생각하신다면, 그 아이들이 세상에 나와 살아갈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고민해주셨으면 좋겠다. 원치 않는 생으로 태어나 축복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삶이란 얼마나 큰 불행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신 적 있는가 묻고 싶다. 아시다시피 당신들께서 말씀하신 '생명'에 대한 논의이므로, 그리 단순하고 간단하게 결정할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서로 연결된 생명들을 위해 우리는 어떤 사회적 환경을 갖춰가야 하는지 첨예한 고민을 다루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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