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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비얀코 Feb 14. 2023

사랑으로 이야기하기, 이야기로 사랑하기 21

로마서 2

"아버지 정신 나신 듯합니다. 다 알아보시네요. 신부님 기도가 효과가 있었나 봅니다!"


막내 동생의 믿기 어려운 카톡메시지가 왔다. 4박 5일을 물도 거부하고 사람도 못 알아보는 섬망증세를 보이시던 아버지가 신부님과 성당 자매님들의 심방 후 거짓말같이 깨어나셨단다. 사람도 알아보시고 며칠 동안 한 자 세로 누워계셨으니 체위를 변경해 달라 하셨단다.  


"우리 집에 성령이 임했나 봐!"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는 지난 4박 5일에 대해 전혀 기억이 없으시단다. 


생을 마감하는 자를 위한 마지막 미사, 종부성사! 그 소리를 듣고 깨어나시다니....


다시 찾은 친정집엔 현관부터 다시 따뜻한 온기가 맴돌았다. 지난번과는 공기부터 달랐다. 방에 들어서자 아버지는 딸의 모습에 반색을 하셨다. 


"아버지! 저 누구예요? 누군지 알아보시겠어요?" 

"우리 큰 딸! 내가 내 딸을 왜 몰라!" 하시며 기뻐하셨다. 


"저번날 애들 왔을 때도 못 알아보시고, 밤에도 계속 소리치시고 하시던 거 생각 안 나세요?" 아버지는 고개를 가로로 내저으셨다. 


"우린 아버지가 저쪽 세상으로 이적협상 중이신 줄 알았어요."  아버지가 피식 웃으신다. 

"조건이 너무 안 맞아서 그냥 돌아왔어!" 특유의 유머로 맞받아치시는 것 보니 정신이 돌아오신 게 확실하다. 


"아버지 부활하셨어요. 이젠 예수의 부활도 믿으시겠네요!" 

"그럼!" 


"아버지 돌아가실 것 같으니 엄마가 얼마나 슬퍼하셨는지 몰라요."

그 어떤 말보다 이 말이 아버지 얼굴을 가장 환하게 만들었다.


이 거짓말 같은 상황에 아버지도, 나도, 가족들도 무언가에 홀린 듯, 흥분과 어리둥절함 사이에서 말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안심할 수도 없다. 촛불이 꺼지기 전 마지막으로 찬란한 빛을 내는 것처럼 노인들 중엔 돌아가시기 전 반짝하고 좋아지셨다가 가시는 경우들도 있다니. 


"죽지 않고 돌아왔으니 다행이지." 

"네. 그런데 너무 두려워하시지 않으셔도 돼요. 그때 아버지가 호스피스 불러달라고 하셔서 같이 읽었던 '사후생'이라는 책 있었잖아요. 그 책에 보면 사후엔 돌아가신 가족이 나와서 따뜻하게 맞아준다잖아요."


"아버지는 누가 나와 맞아줄 것 같으세요?"

잠시 생각하시는 듯하시더니 "누군 누구야. 돌아가신 어머니겠지. 그런데 하도 오래돼서 알아보실 수나 있으실지 몰라."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되지 않을까? 적어도 하늘나라에 가시는 순간에는, 지금의 나이 들고 오래 누워계셔서 약하고 오그라든 모습이 아닐 거다. 늠름한 중학교 시절 배구선수의 모습이거나, 아들들과 야구공을 주고받던 젊은 아빠의 모습일 거다. 그럼 돌아가신 할머니도 애지중지하시던 장남을 곧 알아보실 수 있으시겠지. 


그렇게 아버지는 다시 깨어나셨고 점점 기력을 회복하셨다. 그러나 돌아온 기쁨도 잠시, 자신의 힘으로는 좀처럼 움직일 수도 없고, 먹으면 배설할 때는 사랑하는 가족을 괴롭혀야 하는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식사를 안 하시겠다고 하셨단다. 

"왜 안 드셔?"

"먹으면.... 또 똥 나오잖아. 안 먹을래."

"괜찮아~ 먹어. 먹어야 힘나지. 나오면 내가 치워줄게...."


미국의 시인 에드가 앨런 포의 시 '애나벨 리'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We loved with a love that was more than love.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더 큰 사랑을 했다." 


아버지와 엄마는 결혼 후 52년을 같이 사셨다. 그중 13년을 상상하기도 힘든 고난의 세월을 함께 하셨다. 때로는 이 힘든 상황이 기가 막히고 한탄스러워 모진 말로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도 했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헤어짐'을 간신히 비껴간 두 사람은 단지 사랑이라는 말로 부르기에는 너무도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계셨다. 


3년 전 새벽기도서 만난 영국인 노목사는 왜 아버지께 로마서를 읽어드리라고 했을까? 아니 하나님은 왜 그 노목사의 입을 통해 신앙의 배경이 전혀 없으신 아버지께 쉽지 않은 로마서를 읽어드리도록 했을까? 


13년 전 아버지의 사고로 인해 나는 기도할 곳과 기도할 대상이 너무나도 절실해 처음으로 제 발로 교회를 찾았다. 그때는 성경이 무엇인지 복음이 무엇인지 따위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저 원하는 걸 달라고 조르는 아이처럼 '하나님 당신이 진정 계시다면 왜 바르게 사신 우리 부모님이 저런 고난을 겪으셔야 하는지 설명해 달라고, 아버지가 다시 설 수 있게 해 달라고' 떼를 썼다. 그러나 하나님은 묵묵부답이셨다. 


일을 그만두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하나님과 제대로 항의하고, 매달리고, 씨름하기 위해 나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성경 속에서, 책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고난의 의미를 깨닫고, 나를 찾았다. 40대 중반까지 살면서 풀리지 않던 퍼즐이 모두 그 안에서 풀려나가는 듯했다. 그 기쁨이 너무도 커서 나 혼자 누릴 수만은 없었다. 


7-8년 전 교회 새 신자예배에 아이들과 함께 참석한 날, 한송이의 장미꽃에 꽂힌 성경구절을 선물로 받았다. 세 송이의 장미꽃과 함께 받은 각각 다른 세장의 성경구절을 그때 이후로 책상 유리 밑에 꽂아 두고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2)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서 12:1)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브리서 10:36)


2년 전, 홀로 침상에 누워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있는 아버지의 존재가 안타까워 책을 읽어드리기 시작했고 매일 아침 마치 내 목소리를, 내 시간을, 내 마음을 제물로 드리며 예배를 드리듯 목소리를 악기 삼아 책을 낭독해 왔다. 


주어진 목표는 성경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책인 '로마서'. 이해하는 만큼 느끼는 만큼 낭독으로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기에, 로마서를 쓴 사도바울에 대한 책과 목사님들의 로마서 강해를 수도 없이 읽었다. 구약과 신약의 기본이 되는 책들을 읽어드렸고 아버지가 어머니가 공감하실 만한 신앙서적들도 읽어드렸다. 


이게 도움이 될까 의문이 들 때마다, 하나님이 있기는 하냐는 엄마의 한탄을 접할 때마다, 성경은 무슨 이야기인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책상 위 말씀카드를 쓰다듬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그동안 잘 모르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고, 부모님과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두 분 또한 조금씩 고난에 대해 더 큰 뜻이 있을 거란 기대를 가지기 시작하셨다. 엄마는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수면제 대신 내 낭독파일을 반복해서 들으시며 잠을 청하신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거부감도 있으시고 성경은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런데 섬망에서 정신이 드신 후 아버지의 언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너 글 쓴다며 왜 책은 안 나오니? 신문에도 나오고 그래야지."

"올해 안에 책은 내려고 해요. 신문에까지 나오려면 책이 유명해져야 하는데 아버지 기도 좀 해주세요."


"오 주님! 나의 훌륭한 딸에게 빛을 비춰주소서!" 


아버지는 들어 본 지 오래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하늘을 쳐다보며 기도를 올리셨다. 평생 처음 들어보는 아버지의 간절한 기도였다....


로마서의 핵심 중 핵심이라는 8장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이 맺어지고 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내가 너와 너의 가족들을 너무도 사랑한단다. 너희 아버지와 엄마가 겪는 고난을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가슴 아파한단다. 그러니 그분들을 사랑하는 딸로서 나의 사랑을, 나의 이야기를 전해다오. 쉽지는 않을 거다. 그러나 나를 믿고 따라오렴. 힘들 때마다 내가 함께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그리고 때가 되면 내가 약속한 것을 이루는 그때가 올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6년쯤 전 늦봄, 이른 은퇴 후, 고난의 의미를 알려달라고 그리고 앞으로 나의 인생길을 보여달라고 신에게 쏘아 올린 질문에 대한 답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에 바쳐진 나의 인생 2막이 시작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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