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 '요즘 저는 아버지께 책을 읽어 드립니다'의 출간 이후, 추천사를 써주신 목사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잠시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목사님께서 꼭 이 말은 꼭 해야 한다는 어조로 손가락까지 치켜드시고 말씀하셨다.
"계속 글을 쓰세요!"
"네?!"
부모님을 위로하고자 책을 낭독하고, 기록으로 남기면 좋겠다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계속 글을 계속 쓰겠다고는 생각 안 해봤는데...
무조건 네! 하기엔 당황스럽고, 그냥 흘리기에는 정황상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있어 어떤 판단도 보류하고, 그저 마음속 한편에 저장해 둔 순간이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몇 달간 계속된 매체 인터뷰 때마다 기자분들의 마지막 질문은 비슷했다. "다음책은 뭔가요?"
그럴 때마다 이런저런 정리되지 않은 내용들을 주절댔지만 내 안의 목소리는 정작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진짜가 아니잖아!" 라며 입을 닫으라고 외쳤다.
작가라는 호칭, 인터뷰를 당하고 있는 상황조차 어색하기 짝이 없는 내게 거는 가당치 않은 기대에 대한 황송함, 당혹감, 부담감이 섞인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난 3년 가까이 공들인 첫 책을 막 냈다고요! 이 시간을 좀 더 누리면 안 될까요? 첫아이 출산하고 젖 물리는 산모에게, 둘째는 언제 낳을 거냐 묻는 상황이랑 뭐가 다른가요?"라고 마음속 항의를 하며 한동안 글을 쓰는 일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겠다 생각했다.
그러던 중, 한 일간지에서 '내 인생의 책'이란 칼럼에 실을 글을 부탁해 왔다. 부담감은 있었지만, 해보고 싶은 일이었기에 승낙을 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골라 형광펜을 들고 천천히 읽고, 다듬고 또 다듬어 가며 느껴지는 감동을 정리해, 일주일쯤 걸려 1,000자의 길지 않은 글을 완성했다.
그런데 그 일주일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작가의 아름다운 인생 이야기를 읽고, 그에 반응하는 내 영혼의 울림을 관찰하고 생각의 조각들을 연결해 글이라는 집을 짓는 일! 나는 그 일을 정말로 즐기고 있었다. 출간 막바지 여러 가지 부담감으로 인해 잊고 있었던, 글을 쓸 때마다 느꼈던 기쁨을 그제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내가 글을 쓰는 걸 진짜로 좋아하게 됐구나!
그때부터 "계속 글을 쓰세요!"라는 권고의 목소리는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세요. 그곳에 당신의 길이 있습니다!'라는 천사의 전언과도 같이 들려왔다. 두 번째 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됐다.
처음 책을 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의 모양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서점에 진열된 책들은 너도 나도 화려한 표지를 자랑하고 있었다. 글 읽기를 좋아하는 나 조차도 표지가 좋은 책을 집어 들고, 글만 빼곡한 책을 만나면 갑갑함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작은 삽화 하나라도 들어있어야 책을 읽는 즐거움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남에게 맡기지 말고 직접 해볼 수는 없을까?
어느 날 문득, 아파트 상가에서 발견한 작은 아뜰리에의 문을 두드렸고 거기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고졸업 후, 34년 만이었다. 선연습을 하다가 올리브 가지, 해바라기, 목련꽃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5만 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해 산, 64색 색연필 케이스 속 다양한 색의 색연필들은 보는 것만으로 감각적 포만감을 주었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꺼내 선을 그어가다 보면 그리고자 하는 대상이 스케치북위에 형체를 드러내는 순간이 주는 경이로움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쓰던 물감과 붓을 챙겨 어렵다는 수채화도 도전했다. 책상서랍 깊숙한 곳에서 몇 년을 휜 채로 묵혀져 가며 시들시들 생을 마감하는 줄 알았던 붓들조차, 다시 쓰일 수 있다는 희망을 찾게 돼 신이 나는지, 열심히 물감을 빨아들이고 종이 위에서 미끄러지듯 춤을 추었다.
같이 그림을 그리는 선배들도 편안하고 따뜻했다. 미술을 전공하시고 플라워아트를 오랜 기간 하셨던 원장님이 보여주시는 꽃과 자연의 색채는 그 자체로 창조주에 대한 찬양이었다. 목소리도 조심조심, 걸음도 조심조심하시는 85세의 어머님은 색채도 형태도 하늘하늘 시폰과 같은 그림들을 그리셨다. 맛있는 간식과 웃음이 넘쳤다. 연세 지긋하신 분들의 삶의 이야기 속인생공부는 값진 보너스였다.
어느 정도 선과 색 표현에 자신이 붙자, 아이들 어릴 적 모습이나 아이들 닮은 동물도 그리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존재들을 그릴 때, 더 깊이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 감을 느꼈다. 그리는 대상이 나한테 어떤 의미를 갖느냐에 따라 그림에 쏟아지는 에너지의 레벨이 달랐다.
그림은 '사랑'인가 보다!
책에 넣을 그림을 그리겠다는 정해진 목표가 있으니 게을러질 수가 없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열심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 누군가 초보자한테 인물화는 어렵다고도 했고, 병상에 누우신 모습보다는 아버지의 건강한 모습을 그리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병상에 누우신 아버지에게 책을 읽어드리는 그림. 그건 내가 맨 처음 붓을 든 이유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감사하게도 직접 그린 그림 4점을 책의 삽화로 넣을 수 있었다.
책이 나온 후, 신문인터뷰와 방송출연 등 여러 가지로 바빠져 한두 달 그림을 쉬었다. 그때만 해도 앞으로는 매일이 바빠질지도 모르겠다는 어이없는 상상을 하고 있었는데, 정작 세 달쯤 지나자 모든 게 잠잠해졌다. 한 바탕 푹 풍이 밀려나간 후 정적이 흐르는 바닷가 모래사장처럼, 거품이 잦아든 맥주잔처럼 다시 조용하다 못해 답답하게 느껴지는 일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의 마음이 참으로 간사한 것이 출간초기 모여드는 관심이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었는데, 정작 조용해지고 나니 섭섭하다 못해 허탈하기까지 했다. 허탈함이 나를 우울의 늪으로 데려가기 전, 빨리 일상의 루틴을 찾아야 했다.
그림만큼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것이 없었다. 다시 시작할까?
그전엔 그려야만 하는 목표가 숙제처럼 주어져서 오직 그곳을 향해 나가 가느라 진짜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젠 좀 더 자유롭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보면 어떨까?
아이들을 키우며 시킨 사교육중 가장 잘했다 싶은 부분 중 하나가 미술교육이다. 두 명의 아이들은 그림을 통해 각자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어떤 재료를 좋아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자신에 대한 많은 것들을 발견하곤 했다.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방학이면 아뜰리에를 찾아 자신들이 수년간 공들인 캐릭터와 대상들을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가며 공부와 일상에 지친 스스로를 다독이며 자신도 모르던 자신을 만나곤 한다.
그래 이제 나도 나를 찾는 그림을 그려보자!
그리고 다음책으로그림을 그리면서 느끼고 경험하는 일들을 정리해 보는것이 어떨까? 첫 책은책을 낭독해 가며나와 주변의 이야기를 그렸듯, 이번에는 그림을 그리며 내게 새롭게 다가오는 세상의 이야기를 풀어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