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정확했다. 13살이 된 지금 아들은 나를 찾지 않는다. 더 이상 놀아달라 소리도 하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늘 궁금해하며 이것저것 귀찮을 만큼 질문을 늘어놓던 아들은 내게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는다. 결국 그 시간은 왔다. 너무도 빨리..
나 때는.. 라때는.. 그때는..
아들과 가끔씩 대화를 할 때면 "나 때는.."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놀랬어.
속으로 되새겨 봤어.. '어? 지금 내가 뭐라고 한 거지? 나 때는 이라고 한 건가?'
일단 아들이든 대화 상대가 누구든 간에 '나 때는'이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했어.
그 말을 어린 친구들이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 말 자체의 어감이 가둬놓는 느낌이랄까?
나 자신도 그 당시로 가두어 놓고, 대화의 상대도 그 당시로 끌어들이려는 강제성이 느껴진다고 할까?
대신, '그때는'이라는 단어로 바꾸기로 했어. '나 때는'이라는 말은 그 중심이 나 자신이 중심이 되지만
'그때는'이라는 말은 그 중심이 그 당시의 상황이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대화할 때 거부감이 덜 하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어른들의 지나온 과거와 경험은 지금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삶의 참고자료로서의 역할만 하면 될 것 같아.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의 아이들은 그 당시 상황이나 경제적 환경, 사고방식, 가치관들까지 모든 것들이 달라졌으니 참고자료도 업데이트가 필요하지 않을까?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데..>
확증편향에 대하여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 자신의 견해 또는 주장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사실 여부를 떠나) 선택적으로 취하고,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
나이가 들수록 주변에 원망스럽고 미워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일부 사람들의 당황스러운 시와 때를 가리지 않는 오지랖에 경황없이 대처하다 보니 화를 많이 내기도 해.
우리는 어릴 때나 나이가 들어서나 늘 무리를 형성하기 나름인데 그 무리가 2명이던 10명이던 친한 사람들끼리 자주 소통하며 살아가는데 무리 대다수의 의견은 내 의견과 상관없이 소속감을 느끼고 자의적이던 타의적이던 무리 내에서의 위치를 지키려면 내 의견도 그들과 같아야 해.
가만 생각해보면 이러한 삶의 습관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과정까지 영향을 미치고 개인의 확증편향과 집단 확증편향으로 이어지게 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
쉽지 않겠지만 아들에게 많은 사람들을 접하고, 그들과 어려움 없이 대화를 나누며, 소속감을 느끼게 하고,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배우게 하며, 많은 사람과의 대화를 접하게 해 주려는 아빠의 노력은 아들에게 어쩌면 어른이 돼가면서 얻게 되는 자연스러운 확증편향이라는 테두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새로운 가치관과 환경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되었음을 알았으면 해.
나의 마음을 무엇으로 가득 채울 것인가?
매일 팔을 올려 겨드랑이를 보여주며 "털 났어요?"라고 물어보는 아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겨드랑이 털이 나고 다리에 털이 나면 어른이 된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언젠가는 아들의 겨드랑이와 다리 털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난 아직 아들의 겨드랑이와 다리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아니 털이 나도 몰래 깎아버릴지도 모른다. 아들이 자라는 게 때로는 두려울 때가 있다. 시간이 멈추었으면 할 때가 있다.
점점 순수한 모습이 사라지고, 어른스러운 말투를 하거나 질문의 심란한 난이도가 깊어지면 나도 모르게 다리에 털이 난 건가? 쳐다보게 된다.
겨털(겨드랑이 털)과 다리털의 발모를 곧 앞두고 있는 아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른이 된다는 건 우선 마음속에 빈 그릇을 가지고 시작해야 되는데 빈그릇은 클수록 좋아.
그 마음이라는 빈 그릇에 많이 담을 수 있으면 더 좋은 거야. 그럼 무얼 담아야 할까?
그 빈 그릇에 넘쳐도 좋으니 아들의 꿈도 가득 담았으면 좋겠고, 타인의 여러 가치관들을 마음속에 담아 그것을 이해하며 그것에서 새로운 가치관과 개념들을 찾아낼 수 있는 현명함을 그릇 속에서 찾아냈으면 좋겠어.
"그렇게 된다고 믿으면 아들의 삶의 방향은 그곳을 향해 흐르게 되고, 아주 천천히 바라는 바대로 삶이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해." 중간에 포기하는 것만 아니라면 말이야.
<너희들 뒤에는 항상 내가 있을거야>
지금 살고 있는 것은 살아지니까 사는 게 아니고, 꿈을 향해 살아가기에 살아갈 수 있는 것임을 잊지 않았으면 해..
선선하게 부는 바람마저 따뜻한 바람으로 만드는 볕이 따사로운 오후에..
타닥타닥 자판기를 두드리며 혼자만의 진지함을 즐기고 있는 매 순간순간마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