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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 Aug 04. 2020

내가 나일 수 있게 하는 것

무엇으로 나를 정의할 수 있는가?

내가 좋아하는 것


오래전 안톤 슈낙의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고 나서 행복하게 하는,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 글을 그 당시 유행했던 싸이월드에 주르륵 적어두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아쉽게도 싸이월드와 함께 어떤 글을 적었는지, 그 기억도 사라졌지만......


그리하여 다시금 적어본다.


눈부시게 빛나는 푸른 하늘을 좋아한다. 그 하늘에 몽글몽글 피어있는 하얀 구름을 좋아한다. 가만히 있을 때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산들바람을 좋아한다. 쨍한 햇살 아래 빛나는 싱그러운 초록 잎사귀들을 좋아한다.  아이들이 까르르르 웃는 소리를 좋아한다. 깊은 밤 홀로 깨어 보는 별빛을 좋아한다. 뜨거운 여름날 깊은 계곡에 발을 담그면 들려오는 물소리, 이리저리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을 좋아한다. 깊고 푸른 바다의 파도소리, 밟을 때마다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어 발가락을 간질이는 고운 모래가 가득한 뜨거운 모래사장을 좋아한다. 운전 중 라디오를 켰을 때 그 언젠가 눈물 나게 빛나는 순간에 들었던 노래가 나오면 어느새 시간이 멈추고 다시 그 시절 그때로 돌려놓는  마법 같은 음악을 좋아한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라던가,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같은...... 넓은 창가에서 보는 눈 내리는 모습, 우산 속에서 듣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좋다. 놀랍게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도 열심히 살아가는 작은 곤충들, 길가에 무심하게 피어있는 놀랍게 아름다운 들꽃들을 좋아한다. 책을 읽다가 혹은 영화를 보다가 발견하는 주옥같은 글이나 말을 사랑한다. 그들은 별이 되어 가슴에 박히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걱정하며 여전히 잔소리하는 엄마 목소리, 어깨를 토닥이는 아빠는 투박한 손놀림, 엄마가 제일 좋다는 딸아이의 갑작스러운 고백, 세상 무엇보다 내가 소중하다는 남편의 한 마디...... 이런 가족들의 모습과 음성, 그 순간 뿜어 나오는 모든 기운을 사랑한다.


내가 나일 수 있도록 하는 것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도록 하는 그것은 어쩌면 눈물 나게 사랑스럽고 감동스러운 그 어떤 한순간들이 아닐까? 몇 날 며칠에 걸쳐있는 어떤 중요한 사건이 아닌, 그 어느 순간 말이다. 발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숙여 가만히 들여다보고 감탄하는 그 순간, 사랑스러운 음성에 이끌려 마주 보고 미소 짓는 그 순간, 바로 그 순간 나는 온전히 내가 되는 것이 아닐까?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거창하고 위대한 무엇이 아니고 일상 속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어느 한순간이라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그리고 그 순간 정말 행복함을 느낀다. 모두에게 선망받는 유명한 사람이 되어서, 재산이 많아서, 모두가 우러러보는 위대한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라 샤라랑~~~~~~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종을 치듯 반짝 빛나는 순간, 그 때야 비로소 나는 내가 된다. 어떠어떠한 수식어가 붙은 내가 아니라 그냥 나 자체.


가끔은 어떠 어떠한 내가 아니라 그저 온전히 나이고 싶다.



베란다에서 키우는 토마토에 꽃이 피고 열매가 달렸다. 이 놀라운 발견의 순간...... 마음이 빛나는 행복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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