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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 Jul 15. 2020

드라마와 현실, 그 어느 사이

슬기로운 의사 생활과 내가 경험한 병원 생활

어찌어찌하다 수술도 하고 입원도 하게 됐다. 그동안 이런저런 마음고생으로 부쩍 힘들기도 했고 생각이 많았지만 나보다 더 힘든 고통 속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였기에 나의 고생은 고생도 아님을......


입원해 있는 동안 많이 아픈 와중에도 시간이 무료하여 그동안 화제였던 ‘슬기로운 의사 생활’을 몰아보게 됐다. 물론 너무 아파 정주행까지는 못했으나 간간히는 보게 되었다.

따뜻하고 사명감에 불타는 주인공들을 보며 울고 웃으며 마음이 따스해졌지만 눈을 돌려 나의 병실을 보면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나의 주치의는 수술 포함 3번 뵌 것이 다인데 수술 시에는 마취로 기억이 없으니 내 눈으로 대면한 것은 고작 두 번이었다. 아주 간단하고 사무적인 이야기들만 하고 가셨다. 그 후에는 전공의인지, 인턴인지 모를 젊은 여자분이 매일 오셔서 이런저런 수술 후 감당해야 할 일들을 말씀해 주셨는데 하소연은 다 짤렸고 아프든 어쨌든 걸어야 한다는 것이 주 주제였다. 당연히 아플 테지만 걷기만이 회복을 빠르게 하는 방법이라고 매번 이야기해 주고 가셨다.

수술 후 다음 날은 백혈구며, 혈압 수치도 좋지 않아서 가만히 서 있는 것도 힘든 날이었는데 그럼에도 ‘걸어야 한다’는 이론적인 이야기만 강하게 하셨다. 이런 나를 알아준 것은 간호사 선생님이셨다. 너무 하셨다며 백혈구 수치며 혈압이 이 모양인데 당연히 서 있는 것도 힘든 게 맞다며 수치가 안정되면 걸으라고 어깨를 토닥여 주셨다.(이 분은 분명 드라마 속의 수빈 간호사 선생님을 닮았다. 아니, 이 분이 바로 그 캐릭터의 모델이셨을 것이다.) 그러나 간호사 선생님들은 3교대이므로 그분을 다시 만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내 병동이 아닌 곳에 자리가 나는 대로 입원한 상태여서 바로 병동도 옮겨야만 했다. 정말 나에게 큰 위로가 되셨던 그분께 감사 인사도 못하고 병동을 옮겨야 해서 어찌나 아쉬웠는지....


그 후 옮긴 병실의 간호사 선생님들은 하나 같이 피로에, 힘들어 보였고 여유가 없었다. 서너 시간마다 반복되는 혈압체크, 열 체크와 약 챙기기.... 그 전 병실 간호사 선생님이라고 하지 않은 건 아닌데 여긴 유독 피로해 보였다. 큰 수술을 했거나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들을 너무 자주 보아 마음이 피폐해진 탓일까? 나 같은 환자는 그저 철부지에 지나지 않았다.

내 병실의 반 이상은 항암 환자들이었던 것이다.


남편이랑 입원한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들에게는 이 일이 ‘직업’이라는 것에 결론을 내렸다. 어떻게 매일 매 순간 만나는 모든 아픈 이들에게 따뜻할 수 있겠는가. 그들도 따뜻함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다 퍼주고도 온전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특별한 사람들이다. 어떻게 평범한 우리가 매일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하여 살 수 있겠는가. 나 역시 내 일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고는 하지만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때때로  좌절시키는 누구 한 사람 때문에 힘들어 다 놓고 싶은 위기의 순간이 있지 않았는가 말이다. 드라마에선 그 모습이 다 이므로 그런 모습은 잘 보여주지 않는다. 열심히, 긍정적으로, 자신이 가진 열정을 다 하는 온전히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만을 보여준다. 고뇌할 때 조차도 사명감과 감동을 놓지 않는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나를 다잡으면 되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그리 해 주기를 기대하기 전에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가면 되는 것이다 생각하게 됐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내 병동 현실 속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었지만 나 역시 드라마 속 주인공과는 같지 않으므로 그들에게 이상적인 모습을 바라는 것은 모순이었다. 그들도 어찌 생각해 보면 퇴근 후의 삶과 주말이 소중한 한 가정의 부모이거나, 딸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이가 이상적이기 바란다면 나부터 그런 모습이 되어가면 되겠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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