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으로 가득찬 방을 정리한다는 것
구글 검색창에 “좁은 방 인테리어”라고 검색했다. 이 검색어에는 나의 큰 고민이 담겨있다.
내 방은 참 좁다. 그런데 내 욕심은 참 크다. 나는 싱글이지만 내 침대는 슈퍼싱글이다. 집에 가면 항상 침대가 날 부른다. 사실 집에 오면 날 반겨주는 존재는 침대뿐이다. 방에 가면 걔만 보인다. 그래서 난 침대와 참 많은 것을 함께한다. 같이 책을 보고, 글을 쓰고, 과제를 하고, 유튜브를 보고, 영화도 보고, 카톡도 하고, 영어공부도 하고, 과자도 먹는다. 이 많은 일을 침대 위에서 하는 이유는 침대 위 말고는 적당한 공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결심했다. 이 침대를 버리기로.
침대를 버리기로 작정하고 둘러보니 내 방에는 참 많은 것이 있었다. 책상도 꽤 컸고 보조책상도 있었고 내 키보다 큰 책장도 두 개나 있었다. 책은 또 왜 이리 많은지. 헹거에는 입는 옷과 안 입는 옷의 비율이 4:6 정도 된다. 방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난 참 미련이 많은 사람이다. 사용하는 것보다 사용하지 않는 것이 많다. 변명을 좀 보태면 사실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언젠가 사용할 거란 뭔지 모를 확신을 주는 물건들이다. 아무튼 내 방에는 하도 오래돼서 나도 용도를 알 수 없는 아이템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것도 언젠가 그 용도를 알아챌 것 같은 걱정에 사로잡혀 버리지 못한다. 생각해보면 난 전 여자 친구의 사진도 쉽게 지우지 못했다. 그 사람이 떠났다고 해서 그 기억이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기억도 왠지 언젠가 꺼내야 할 때가 생길 것 같아서 남겨두게 되더라.
책을 버리는 일도 참 어려운 일이다. 어떤 책은 아직 안 읽어서 버리지 못하고, 어떤 책은 읽어서 버리지 못한다. 앞으로 안 읽을 것 같은 책을 정했는데 그 책 첫 페이지를 펴보니 정성 어린 편지글이 적혀있다. 누가 선물한 책도 버릴 수가 없다. 대체 방 정리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내가 소유한 것 중에 진정 소유한 것은 무엇이며 버려도 되는 게 있긴 있나. 내 신발장에는 신발도 많다. 그중에 2-3개만 돌려 신는데 버릴 수가 없다. 버리려고 하면 그 신발을 신고 걸었던 시간들, 거리들이 떠오른다. 이거 원, 방 정리하다가 정신분열에 걸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의미 없지만은 않았다. 방을 정리하면서 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했다. 그렇게 새롭게 만난 나에 대해 나름 정의해보았다. “미련함” “지저분함” 등등의 말이 떠올랐지만 이런 말보다 “기억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해봤다. 좀 더 과장하면 “기억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잊히는 기억을 붙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부질없듯이 아로새겨진 기억을 지워버리려고 애쓰는 것도 부질없다.
기억을 내다 버려서 내 삶이 아름다워지는 것보다 시간이 지나고 수 없는 미화를 거쳐서 아름다운 기억으로 변모되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 또 그렇게 수많은 기억들이 퇴적되면 처음에 모난 돌 같던 기억들이 단단하게 굳어지고 층층이 쌓여가면서 아름답고 장엄한 지층을 이루지 않을까. 기억을 지우려고 애쓰기보다 기억의 진화와 퇴보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향유하기로 마음을 정한다.
결국 내 좁은 방은 정리한 것 치고는 꽤 그대로다. 몇 권의 책을 버렸을 뿐이다.(텝스 기출문제, 토익 파랭이) 오히려 뒤적거리다 침전되어있던 기억들이 떠올라서 더 어지럽혀졌다. 이제 정리할 자신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