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의 삶
백수린 작가의 소설 <여름의 빌라>를 보다가 어떤 문장 앞을 보고 한 참을 멈춰있었다. 나조차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심리 상태를 누군가 정확히 짚어주어서.
"안주를 지향하지만 탈주를 동경하고, 고독을 좋아하지만 타입과의 결합을 원하는..."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 인생의 결정적인 한 장면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나는 평생 이렇게, 나가지 못하고 그저 문고리를 붙잡은 채 창 밖을 기웃거리는 보잘것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으니까."
이보다 더 명쾌하게 삶의 대한 나의 미적지근한 태도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문장은 없을 것이다. 안정적인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고, 새로운 환경에 던져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지만 그 안전한 곳에서조차 행복하지 못하고 창문 밖을 보며 모험을 꿈꾸는 삶.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약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항상 ‘모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어릴 적엔 유달리 보물 찾기를 좋아했고 조금 커서 학생이 되어서도 수업 중 창밖을 보며 지금이라도 당장 모험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 마음과는 달리 누구보다 책상에서 착실하게 공부를 했지만 때로는 핸들을 틀어 정 반대로 질주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래서 늘 그냥 하는 사람이 부러웠다. 해보고 안되면 말지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체력과 여유가 있는 사람. 가진 것이라고는 넘치는 체력과 무모함으로 무장되었을 어린 시절부터 왜 나는 무턱대고 덤비지 못했을까. 나를 가로막았던 것은 환경이었을까 내 기질이었을까.
성격 유형 검사 설명지에서 본 문장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지 않는 유형". 그 당시에는 웃어넘기고 말았는데 가끔씩 무언가 새로운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번 돌다리도 두드리기만 할 거야?'
월요일로 넘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헛헛한 마음에 좋아하는 젤라또를 시키고 화이트 와인 한 잔을 따라 테이블 앞에 앉아 본다. 일요일 밤이 되면 유독 발동하는 보상 심리. 내일도 출근해야 하는 가여운 나를 위해 주는 선물. 그러고 보면 나는 무언가를 하기 전에 참 많은 보상이 필요하다. 그냥 하면 되는데 무엇이 어려워 시원하게 들이받지 못하는지, 무엇이 두려워 한참을 최적의 경로만 찾고 있는지. 참 약하고 여린 몸과 마음이다.
내가 가진 것은 재능일까, 성실함일까. 성실함도 재능이라면 그러하겠지만, 성실함은 경품 뽑기에서 나올 수 있는 상품들 중 아마 3-4등 정도겠지. 문고리를 붙잡은 채 창 밖을 기웃거리는 이유는 그냥 용기가 없어서다. 패기롭게 문 밖을 나섰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냥 돌아오게 되는 게 무서워서. 멋진 주인공처럼, 재능 있는 위인들처럼 인상적이지 않고 아무 감흥 없이 그저 성실하기만 할까 봐 두려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