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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 Feb 15. 2024

생각은 그만

나의 포레스터를 찾아서

영화를 열심히 다운로드하여 보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엔 스트리밍 서비스가 없었다(내가 알기론). 재미있는 영화, 감동적인 영화를 검색해서 열심히 보고 싸이월드에 감상문도 가끔  끄적였다. 그 기록들은 전혀 ‘싸이’지 않게 되었지만. 요즘은 취향도 자산인 시대라 그 시절 열심히 검색해서 실제 감명 깊게 본 영화의 리스트, 폴더에 저장하고 CD로도 구워둔 노래의 리스트를 잘 남겨두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지금이라도 기록하면 되겠지만, 슬프게도 기억이 안 난다. 10-20대의 내 감성도 휘발되어 버렸다. 아주 조금은 남고 또 새로운 향기들이 첨가되었겠지만. 기록의 중요함을 다시 실감한다. 감명 깊게 봤는데 기억해내지 못한 영화 중 하나가 ‘파인딩 포레스터’이다.


몇 년 전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BMW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농구공을 든 똑똑한 흑인 청년이 랩인가 말로 BMW를 자랑하는 차주를 발라버리는 장면‘이 있는 영화를 떠올렸다. 하지만 끝내 그게 무엇인지는 기억해내지 못했다. 2023년 여러 글쓰기 연수에서 강사님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영화가 ‘파인딩 포레스터’였다. 그리고 BMW 장면이 나오는 영화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은둔한 베스트셀러 작가와 가난하지만 글쓰기에 재능 있는 흑인 소년의 이야기였는데 왜 그 장면만이 뇌리에 박혀 있었는지.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그래야 나의 글쓰기도 잘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023년 현재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근처에 있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무료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 영화도서관(https://www.koreafilm.or.kr/)‘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영화를 조용히, 혼자, 마음껏, 무료로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니. 누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2023년에 ‘헤어질 결심’을 보러 한 번, 그리고 ‘파인딩 포레스터’를 보러 방문한 이번이 두 번째이다. 이곳이 영화관보다 좋은 점은 헤드폰을 끼고 혼자 보기 때문에 영화관 빌런에 의한 소음이나 핸드폰 빛 방해가 없다는 것이고, 집보다 좋은 점은 무료인 데다가 집중이 잘 되고 희귀 영화까지 구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토요일에 운영을 하니, 개학하고 나서는 매주 토요일 예약을 해서 영화를 보는 것을 리츄얼로 만들어야겠다. 그동안 주말까지 너무 운동만 했다.

영상도서관에서 오롯이 혼자만의 영화 즐기기


‘파인딩 포레스터‘로 돌아가자면, 이번에도 웃고 울었다. 마지막 포레스터가 공황장애(혹은 대인기피증)를 극복하고 자말의 학교로 찾아와 자말이 쓴 편지를 낭독하고 퇴학에서 구해주는 장면에서. 현재의 취향이 생기기 전인 대학 시절에 본 영화였는데, 다시 보니 내가 왜 이 영화를 좋아할 수밖 에 없는지 알게 되었다. 글쓰기, 성장캐, 농구, 사제지간, 우쿨렐레 BGM(My favorite things, somewhere over the rainbow) 등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듬뿍 담겨 있다. 다시 보니 스토리의 비약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감동적인 영화이다. 게다가 ‘일단 타이핑을 해라’ ‘생각은 그다음이야’ ‘초고를 일단 써’라는 포레스터의 대사가 나에게 던지는 말 같았다. ‘shut up and go to the gym.’ 짤은 나에게 의미가 없었지만(이미 매일 가고 있고 오히려 매일 가는 것이 좋지 않으니 운참하는 중), ‘Just type.’이라는 메시지는 울림을 주었다. 김영하 작가의 강연 중에도 일단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아야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같은 맥락이겠지. 이제 울림은 그만 받고, 울림에 진동할 시간이다. 지금처럼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글을 쓰는 행동만이 나에게 필요할 뿐. 퇴고보다 초고가 우선! 나의 포레스터는 내 글을 실행에 옮기게 도와준 이 영화를 비롯하여 글쓰기 멘토들, 그리고 ‘실행을 하는 나’인 것으로. I’m my boss and my Forrester.


오늘은 <소설로 작별하기>라는 글쓰기 연수에 처음 참여하는 날이다. 운동에 돈과 시간을 쓰듯이 글쓰기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입금으로 강제성 부여하기! 조금씩 작가에 가까워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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