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교사 도전기 (1)
10월 중순, 여느 때처럼 공문을 훑어보고 유용한 정보를 골라 정독했다. 해외 파견 및 초빙 교사를 모집하고 있었다. 둘의 차이를 지금은 알지만 공고를 읽을 땐 비슷한 줄 알았다. ‘해외‘와 ‘근무’ 두 단어의 조합이 심장을 오래간만에 세게 울렸다.
매년 공문은 왔을 텐데 자세히 들여다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내 교과 교사를 모집하고 있었다. 올여름 치앙마이를 다녀와서인지 동남아에 끌렸다. 덥다지만 한국 더위도 못지않음을 체감했기 때문에 날씨는 괜찮았다. 음식도 맛있고 물가도 저렴했다. 여름옷만 있으면 되니 옷에 드는 소비가 줄 것 같아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해 볼 기회가 될 것이라 기대가 되었다. 가족과 비행기를 타야만 만날 수 있는 곳에 살게 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어, 엄마와 통화를 하며 슬쩍 물어보았는데 그녀는 대답은 명쾌했다.
“딸린 거 없을 때 실컷 경험해 봐야지. 나는 걱정하지 마. 먼저 가 있어.”
한 줌의 망설임은 증발됐지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동남아에서 내 전공을 모집하는 학교는 방콕, 호찌민, 하노이, 자카르타에 있었다. 각 학교의 제시 조건, 그에 따라 생활할 수 있는 수준 등을 유튜브, 쳇베이커(내 챗 지피티 애칭, 이하 ‘쳇’)의 도움을 받아 정리했다. 네 도시의 문화, 생활수준, 물가, 러닝코스, 헬스장을 중심으로 물어본 결과, 쳇은 ‘방콕’을 추천했다. 바트로 제시된 월급과 상여금을 원으로 환산했을 때는 실망했다. 월세를 포함한 예상 생활비를 계산해 보니 한국보다 저축을 늘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설렜다.
문득, 소설 쓰기 모임에서 만난 문우가 방콕 학교에서 근무하고 올해 돌아왔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학교 밖에서 만난 사람이 같은 직업에 같은 교육청 소속인 것도 신기하고 반가웠는데 이렇게 나도 방콕 학교에 관심을 갖게 될 줄이야. 연락처는 몰랐지만 인스타 친구였고 메신저로도 검색되는 사이였기에 연락이 닿았다. 학교 생활과 생활비 등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었고 감사하게도 솔직하고 시원하고 사려 깊은 답이 돌아왔다. 공문을 접하고 7일 만에 결심했다. 일단 도전이다!
꿈은 막연함에 그쳤지만, 계획은 구체적으로 발전했다. 공문을 여러 번 정독하고 교감 선생님께 지원 의사를 알렸다. 그랬더니 본인도 일본국제학교에 지원했었다면서 선뜻 자소서와 계획서를 공유해 주시고, 관련 카페의 링크도 보내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참고하여 내 나름의 서류를 만들었다. 이틀이면 될 줄 알았는데 공강, 퇴근 후 시간을 포함해 4일이 걸렸다. 마감이 4일 후였기 때문에 더 다듬을 수는 없었다. 대면 수업 영상도 보내야 했다. 수업 모습을 급히 찍어 20분 내로 편집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카메라에 익숙해서 평소대로 수업에 활발히 참여해 주었다. 학교장 추천서까지 작성하고 교장 선생님께 인장을 받았다. 도장을 찍어주시며 덕담과 지인의 사례를 들려주셨다. 행정실에서 직인을 받고, 마침내 모든 서류를 완성했다. 이메일까지 보내니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교무실 한 구석 조용하게 분주한 나의 방콕학교 지원 작전은 마쳤고, 그날 밤은 헬스장에 가지 않고 축배를 들었다. 이제는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4일 후 1차 (서류) 합격 메일을 받았다. 쾌재를 불렀다. 기쁨은 숨길 수 없어서 교무실 동료 샘들에 슬며시 알렸다. 아쉬워하시면서도 내 일처럼 기뻐하시고 축하해 주셨다. 면접이 남았다고 알려드렸지만, 될 것 같다고 말해주셨다. 소문을 내기는 싫었지만 소문이 난다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번에 떨어지게 되더라도 나중에 좋은 기회를 알게 되었을 때, 누군가 나를 떠올려줄지도 모르는 일일테니.
지원을 망설이게 했던 이유는 두 개가 더 있다. 모두 새로운 도전으로 얻은 기회이다. 내년에 내가 방콕에 있게 된다면 두 기회는 다른 사람에 돌아갔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 아니라도 그 자리는 채워질 수 있다. 쥔 것을 내려놓아야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있다. 비워야 채운다. 남보다는 나를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의 젊음은 오늘뿐이고, 기회는 잡아야만 성립하니까.
이제 남은 것은 면접이다. 면접 후의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최종 결과가 나오면 다음 편을 이어 쓰겠다.
Wish me luck.
- 파견 교사: 교육부 소속으로 호봉, 성과급, 상여금 모두 한국에서와 동일하게 승계.
- 초빙 교사: 한국에는 고용휴직을 하고, 해당 국가에서 교사로 정식 채용됨. 월급은 호봉에 관계없이 고정이기에 호봉이 높을수록 금전적으로는 손해. 성과급은 없고 상여금은 한국의 4분의 1 수준. 다만, 이주 시 항공권, 비자발금비용, 매월 집세의 일부, 교통비 등이 제공되는데 이는 학교마다 다름. 한국 돌아와 복직 가능. 경력 인정됨. 기여금 폭탄 예방하려면 해외 근무 하면서도 내면 된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