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이어 시도 도전
얼마 전 시작한 새로운 활동은 ‘시 쓰기’를 배우는 일이다. 문학의 최고봉은 시라는데 나에게 대부분의 시는 난해하다. 시는 해석이 아닌 감상의 영역이라고 하는데 극 사고형 인간인 내게는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여느때처럼 공문 제목을 훑어보다가 유명 시인에게 시쓰기를 배울 수 있는 연수가 눈에 들어왔다. 제목을 클릭해서 상세 내용을 살펴보았다. 퇴근 후나 토요일에 진행되어 수업 결손 없이 참여가 가능했다. 게다가 일회성이 아니라 총 18시간을 6차시로 나눠 진행될 예정이었으며 시인이 대면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욕심이 났다. 경쟁이 치열할 것을 예상했는지 담당 연구사는 모집을 폼림픽 방식으로 진행했다. 나는 당장 스마트폰의 개인 일정 캘린더 및 학교 노트북의 데스크 캘린더 프로그램에 기록했고, 50인 안에 드는 데 성공했다. 나이스! 에세이만 쓰다가 소설 쓰기를 배우면서 세계관이 확장된 것처럼, 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차올랐다. 공문 열심히 보는 나 자신, 이런 기회 열어주신 연구사님 모두 땡큐!
이 글을 쓰는 시점은 3시간 짜리 수업을 두 번 들은 시점이다. 시는 아직 난해했지만, 시인의 강의는 명쾌했다. 짬바가 있는 교사의 입장에서 보아도 강의는 짜임새가 매우 훌륭했다. 허투루 제시하는 예가 없었으며 각 예는 각각 주장의 근거로 적절했다. 중간중간 유머는 말해 뭐해. 강의 시간도 잘 지켰다. 이건 반칙인데. 문학계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시인은 시쓰기를 클래스 101과 같은 플랫폼에서 인강으로 진행해도 잘 하실 것 같았다.
시인은 다양한 매체에 얼굴을 비추고 있었으며 출판사 문학팀 편집자라는 본업도 있었다. 전업 작가인 줄로만 알았는데 본업이 있는 작가라는 점에서 내적 친밀감이 높아졌다. 약간의 시기심과 함께. 이제부터는 시쌤이라고 하겠다. 나의 시 선생님이기도 하고, 시샘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니까. 시쌤은 본인에게 시를 쓰는 일은 취미에 가까우며 매일 20분만을할애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직업’과 ‘노동’의 정의를 들여다보며 본인이 ‘시인’이 맞다고 주장했다. 시를 쓸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게 되지만 그것은 본인이 좋아서 선택한 행위이며,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금전적 대가가 높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본인의 직업은 시인이 맞다고 했다. 수필집 ‘밥벌이의 지겨움(김훈)’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했다.
“나는 일할 때도 있었고 놀 때도 있었지만 놀 때 인간이 온전해지고 깊어지는 걸 느꼈다. 기자를 보면 기자 같고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 같아 보이는 자들은 노동 때문에 망가진 거다. 뭘 해 먹고 사는지 감이 안 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다.”
뭘 해 먹고 사는지 감이 안 오게 사는 일은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도 같아서 위로받았다.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제목도 독서 욕구를 일으켰다.
매일 20분을 시 쓰는 데 쓴다는 것은 짧게 느껴질 수 있지만 매일 그 시간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고 했다. 23시간 40분에 해당하는 해야 하는 일들이 그 20분을 침범하기란 쉽기 때문이다. 20분은 절대 사수해야 한다고 시쌤은 말했다. 그게 나와 그의 차이였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서도 ’매일 쓰는 시간‘을 정하지 않았고, 써야만 했던 시간들도 쉽게 침범당했다. 일주일에 한 편의 에세이를 쓰고, 한 편의 초단편 소설을 쓰는 일을 위해 매일 20분을 투자했다면 마감을 지킬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하루키가 들어가는 필명이 무색하게 글쓰기에 게을렀음을, 직업 정신이 없었음을 반성한다.
마침, 작가 명함이 완성되었다. 교사라는 직업 특성상 명함을 만들 필요가 없었지만 ‘작가’ 정체성만을 담았다. 소설을 쓰다가 만난 출판사 문학팀 편집자님의 권유로 만들었다. 글을 쓰다가 만난 사람들은 덕업일치가 된 경우를 자주 본다. 편집자님이 소개해준 디자이너 또한 현업은 편집자였으나 부업이 디자이너였다. 책이 좋아서 편집자를 직업으로 삼고, 책을 디자인하거나 쓰는 일까지로도 업이 확장되는 것이다. 아무도 책을 사지 않고 읽지 않는 시대라지만 그럼에도 책을 사서 읽는 사람들이 결국 쓰는 사람도 된다. 시쌤은 첫 수업 마지막에 20분 동안 일기를 쓰도록 했다. 매 수업마다 일기 쓰는 시간을 줄 것이며 여기서 단어를 끄집어 올려 마지막 차시에는 본인만의 시를 써볼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써온 일기의 단어들은 에세이가 되었는데, 이제는 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설렘이 생겼다.
그는 돈도 되지 않는 혹은 돈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일에 몰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나의 ‘정체성’이 될 수 있으며 이 정체성은 은퇴하지 않는다고 했다. 생물학적 수명이 끝날 때까지. 교사로서 은퇴하더라도 소설가, 시인, 에세이스트, 에세이툰 작가로 남을 수 있는 나의 정체성을 명함에도 새겼으니, 이제는 엉덩이로 새길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