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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Jan 16. 2024

돈은 잃었지만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어 감사하다

힘든 일이 끊이질 않는다.

자식 때문에 힘든 순간들이 계속되고 있는데, 얼마나 시련을 감당할 수 있는지 누가 시험이라도 하듯이 또 다른 일이 나를 힘들게 한다.

항셍 지수 연계 ELS, 요즘 신문지상에 간간이 나오는 이야기다. 올 초부터 폭탄을 맞게 되는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닐 것이다. 삼 년 전 항셍 지수가 1만을 넘었는데 지금은 5300 정도이다. 연일 하락장이다.

ELS는 6개월마다 상환여부를 살피고 최종 만기는 3년인 상품이다. 상환 조건에 해당되면 6개월, 1년, 1년 6개월 이런 식으로 6개월마다 평가해서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거나 상환 시기가 6개월 뒤로 미뤄진다. 시중 은행 예금보다 1, 2퍼센트 정도 금리를 더 쳐준다. 3년 만기가 돌아왔는데 상환 조건에 부합되지 못하면 주가 지수 하락에 연계해 원금 손실을 보는 상품이다. 그냥 반토막 수준이 아니고 주가지수가 확 떨어질 경우 엄청난 손실을 볼 수 있는 상품이다.

처음 상품에 자산을 넣었을 때 걱정이 엄청 심했다. 인터넷에서 ELS로 전세 자금을 날린 분이 올린 글을 여러 차례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ELS 상품에 가입하고 온 남편한테 화도 마구 냈었는데, 그 뒤로 별 일이 없어서 계속 그 상품에 자산을 투자했다. 겨우 그 1프로 이자에 맞들여 ELS에 모든 자산을 넣은 지 6년째이다.

별 문제가 없었는데 올해 핵폭탄을 맞게 됐다. 현금 자산이 모두 들어가 있다. 

2년 전 급전이 필요할 때 상환이 안되고 난 뒤로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2년 동안 어떻게 되겠지 긍정 아닌 긍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는데 항셍지수는 계속 떨어졌고 현실은 목전에 왔다.

남편과 나의 검소한 생활로 모여진 자산이, 몇 년 간 쉬지 않고 일한 근로의 대가가 한순간에 다 날아가 버리는 상황이 다가온다. 삶이 안정권에 들어가야 될 중년에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될 상황이 되어버렸다.

무기력과 눈물로 얼룩진 하루를 보내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입장이 바뀌어서 친구에게 이런 상황을 듣게 되면 나도 똑같은 말을 건넬 것이다.

"죽고 사는 문제 아니니 힘내라. 건강 잃는 것보다 낫잖아. 시련은 감당할 만큼 온단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입장 바뀌어도 나도 건넬 수 있는 말이 저 정도일 것을 알면서도 전화를 한 건 하소연과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저 친구에게 하소연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계란 하나 사러도 밖에 나가고, 지금 당장 외투 입고 나가서 걷기라도 해 봐."

고등학교 친구이니 내가 퍼드러져서 넋을 놓고 모든 것을 손에서 놓고 있을 것이라 짐작되어서 하는 말이다.

오늘도 톡으로 김창옥 강사의 유튜브 영상을 보내며 몇 분 몇 초부터 보라고 한다. 마음 다잡아야 될 일이 많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도 김창옥 강사의 유튜브도 웬만한 건 다 본 상태이다. 친구가 보낸 영상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별말 없이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친구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미안하기도 하지만 고마운 마음이 더 크다. 친구의 큰 아이는 대학원을 다니고 둘째도 이제 고 3 졸업이니 가까이 산다면 자주 만날 수 있을 터인데, 1년에 한 번 보기도 힘든 상황이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주말부부로 큰 아이를 임신하고 엄청난 입덧에 시달릴 때 친구는 죽을 사들고 와주었다. 그때 죽을 건네던 친구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7년 동안 이어지는 감당하기 힘든 아들의 문제와 2년 동안 이어진 항셍지수 하락에서 얼마나 많은 속앓이를 했는지 모른다. 그 속에서 기댈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상상해보곤 한다.

힘겨운 상황이 있어도 출근을 하고 소란스러운 아이들과 부대끼며 잊기도 했고, 문득문득 떠오르는 억울함과 괴로움은 바쁜 일과 속에 묻히기도 했고, 네가 살아야지, 네가 건강해야지 말해주는 가족과 친구들 덕분에 하루하루 버텨올 수 있었다.

내 속을 티끌까지 탈탈 터는 내 모습이 싫어서 친구에게 달 만에 전화를 하면서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지 했건만 결국 말했다. 어떤 답이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털고 싶지 않았건만 편안한 사람 앞에서 모든 이야기는 술술 쏟아져 나왔다. 해결책은 없지만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친구와 전화를 끊고 어질러진 집을 좀 챙기고 오랜만에 밥도 챙겨 먹었다. 

불쑥불쑥 억울함은 계속 올라올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괴로움과 스트레스로 내 건강마저 잃는다면 모든 걸 잃게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한참의 세월이 걸리겠지만 건강해야 잃어버린 돈도 다시 모을 수 있고, 사랑하는 아이들도 챙길 수 있다. 이미 결정 난 사실 앞에서 3년 전 상품 가입하던 날을 떠올려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계속 자책하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불쑥불쑥 억울함은 두더지 게임 두더지처럼 정기적으로 툭툭 올라올 것이다. 그러면 또 무기력해지고 괴로워질 것이다. 하지만 툭 툭 올라오는 두더지를 힘껏 내리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길러야 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긍정적인 생각,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으려는 마음, 무엇보다 내 선택을 자책하지 않는 자세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기에 누구나 다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 다만 잘못된 선택이 주는 교훈이 삶이 끈을 놓아버리는 것이라든지, 되는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라든지, 왜 이렇게 어리석은 나인가라는 자책 따위가 되어선 안될 것이다.

오늘 겨우 한 발 딛고 일어선 나는 내일 또 한 발 뒤로 물러설지도 모른다. 그러면 친구의 말을 떠올릴 것이다.

"쓰레기 버리러 밖에 나가, 계란 하나 사러 밖에 나가, 시련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주어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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