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학년도가 끝났다.

by 나무 향기

2023년 12월 29일 수업 일수 190일간의 긴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1년은 365일이고 한 해를 아이들과 보냈는데 190일이라고 쓰고 보니 6개월 10일 남짓이다. 얼굴 마주 보는 날이야 190일뿐이지만 마음 밑바닥과 생각의 한 부분은 늘 아이들 걱정이라 종업식을 하는 날이 되어야 1년이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에 모든 걸 마음과 손에서 내릴 수 있다.

올해는 정말 무난한 학부형과 무난한 학생들 덕분에 큰 괴로움 없이 한 해를 보낼 수 있어서 많이 감사하다. 주변의 다른 일상에는 괴로울 일도 많았고 부침도 많았지만 학교 일은 그럭저럭 운이 좋아서 다행이었다. 늘 한 두 명씩 크게 힘들게 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작년 올해는 그냥 잔챙이 수준의 애먹이는 아이들 뿐이었다. 내 일상이 평화롭지 못하니 학교 일마저 괴롭다면 내 삶이 어떤 식으로 흘러갔을지 장담도 못할 수준인데, 26.08년이 되어 가는 교직 생활에서 작년 올해만큼 업무적으로나 학급 아이들 상태로나 이렇게 평화로운 적이 없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렇게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되는 게 인생이라 인생의 큰 흐름 앞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마지막 알림장을 쓰며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사말을 남겼다.

우리 반 학부형들은 대체로 무심하다. 큰 감사도 없고 큰 비난도 없고 큰 반응도 없다. 나는 이게 오히려 너무나 좋고 감사하다. 뭐든 과유불급이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상태가 딱 좋다.

큰 감사나 호사 뒤에는 내가 조금이라도 잘못했거나 실망시킬 일이 생기면 큰 비난이 되돌아올 수도 있고, 처음부터 큰 비난이 있다는 건 내가 학급 경영을 잘못했거나 학부모가 비뚤어진 사고방식을 가진 경우니 이것도 문제이다. 그래서 감사 문자에도 알림 문자에도 아무 반응 없는 올해 부모들에게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다.


그 와중에 진짜 속까지 나를 믿어주시는 한 분이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이 어머니는 그냥 순수하시다는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는 분이다. 아이는 모범생이고 진취적이고 씩씩하고 욕심이 많다. 그 욕심이 과해서 걱정이 될 때가 많은데 어머니도 그 부분에 대해서 너무 잘 파악하고 계시고, 내가 드리는 조언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시는 분이다.

이 아이의 욕심이 우리 큰 아이와 닮아 보일 때가 있다. 다른 점이라면 우리 큰 아이는 적극성이 부족하고 이 아이는 엄청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아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어머니는 아이의 욕심에 부딪힐 일이 많으실 건데 늘 깊이 생각하고 아이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주시고 계시는 걸 알 수가 있다.

학부모들을 보며 늘 나의 지난 시간을 떠올린다. 나는 저 때 또 아이에게 성질이나 부리고 있었구나. 아이에게 적절한 조언을 줄 생각을 하지 못하고 화나 내고 있었구나. 학부모들에게 배운다.


올해는 나를 이유 없이 사랑해 주는 아이도 하나 있었다. 물론 다른 아이들도 꽤 있지만 이 아이는 세 남매의 맏딸인데 예쁘게 생긴 만큼이나 마음도 너무나 예뻐서 그냥 나를 이유 없이 좋아한다는 걸 느끼 수 있다. 내가 크게 잘해준 것도 없고 크게 칭찬해 준 것도 없지만 그냥 나를 나 그대로 좋아해 준다. 사람을 이유 없이 사랑할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그만큼 정갈하고 깨끗한 마음을 타고났거나 그렇게 길러졌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정말 뽑기 운이 좋았다. 우리 반 아이들이 나에게 와줘서 너무나도 너무나도 감사한 한 해이다.


마지막 시간에 아이들 이름으로 삼행시 짓기를 돌려서 하고 선생님 이름으로 삼행시를 지어보라고 했다. 처음 아이가 한 말을 다 따라 하는 아이들이지만 삼행시 때문에 눈물이 날 뻔한 걸 고대로 삼켰다.

나이 50에 애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순 없기에. 선생님 눈물 흘리세요라고 딴지를 거는 2학년 같지 않은 2학년 아이들도 있었지만 각자 나름의 속도대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라 받아들일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날이니만큼 모든 걸 허용해야 되지 않겠나.

이쁜 우리 선생님.

sun 같은 넓은 마음에

Kind 한 마음을 가진 선생님 감사합니다.

착하고 귀여운 2학년 애기들. 애들은 애들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게 해도 어른보다 순수한 게 아이들이고, 까진 것 같아 보였어도 결국 까진 척할 뿐인 게 아이들이다.


이렇게 2023년 한 해를 마무리했다. 우리 반 아이들과 부모님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내가 잘해서 잘 흘러간 한 해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더 감사하다.

내년에도 뽑기 운이 좋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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