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토 지친 몸의 회복을 위해 잠만 잤다. 요즘 아이들 책에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야말로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잠만 잤다. 그랬더니 몸살 기운이 간신히 가신다.
아파도 꼭 금, 토, 일 아픈 게 예전에는 속이 상했다. 말랐다 살쪄라는 소리를 끝도 없이 듣고 살 때도 잘 아프진 않았으니 근골이 장대해진 지금은 내가 아프다고 하면 다들 못 믿을 것이다. 너무 튼튼해 보이는 체형이라 속이 상해서 평일에 좀 아프면 안 되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행이고 감사하단 생각이 든다. 평일에 아프다고 해서 결근을 쉽게 할 수 있는 직장도 아니고 내 결근으로 보결을 들어오는 선생님들께도 민폐이고 30명의 아이들에게 가는 피해를 생각하면 쉬는 날 아픈 게 그야말로 행운인 셈이다.
자고 나니 체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물론 잠으로만 보내 버린 이틀의 시간은 아깝고 할 일을 하지 못했음에 조급증이 드는 것도 있지만, 나이 들어서 몸 상태보다 하고 싶은 일에 집착하는 것도 추하다는 생각을 하면 어느 정도 위안이 된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집안 청소를 하고 냉장고를 정리하며 필요한 물품들을 배송시켰다. 이 추운 날 장바구니 들고나가 2,3일에 장을 한 번씩 봤을 엄마의 삶에 대해서 그전에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고달픈 삶을 살았을 엄마를 생각하면, 그렇게 살라면 온갖 불평이 난무할 나를 생각하면, 손가락 클릭 몇 번으로 필요한 것이 문 앞까지 오는 세상사에 감사할 일이다.
보통 배송이 끝나면 카톡으로 배송 완료가 오는데 오늘은 개인 번호로 문자가 와 있다.
왜 굳이 개인 번호로 문자를 넣었을까? 혹시 배송 사고를 당하신 건가?
문장마다 있는 마침표 두 개가 왜 이리 신경이 쓰이는지 모르겠다.
문자 넣으신 분의 마음과 상관없이 온전히 내 마음이리라 생각되지만, 마침표 두 개에서 온갖 감정이 전달된다.
추운 날 배송하는 고달픔. 무거운 짐을 내리고 배달하고 다시 내려가는 단순 반복되는 일의 지겨움. 행여 배송이 잘못되면 책임을 져야 될지도 모를 불안감. 감사할 일도 없건만 형식적으로 보내야 되는 감사 합니다라는 말의 무거움. 우리는 왜 마음에도 없는 형식적인 감사를 하고 살아야 되는 건지. 행여 발생할 문제들을 미리 예방하는 차원의 형식적인 감사 인사. 감사할 사람은 물건을 배송받은 나인데. 삶이 고달프게 와닿는다.
배송 기사의 문자 앞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걸 보면 아직 더 자야 될 모양이다. 지친 마음은 회복될 기미가 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