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draw(행운이 행운을 몰고 오려나?)

by 나무 향기

남자아이만 둘이나 보니 멋들어진 옷을 사 줄 필요가 없다. 바지는 그저 고무줄이 들어간 체육복 바지만 사주면 만사 해결이다.


지난 주말 고등학교 입시 설명회를 듣고 둘째 아이와 체육복을 사러 갔다.

아이는 169에 43킬로이다. 뱃가죽은 드러 붙어서 먹어도 배는 나오지 않으며 갈비뼈가 보이고 허리는 가느다랗다. 엄마 아빠가 어릴 때 정말 마른 체형이라 그대로 닮아서 당분간은 아무리 먹여도 살이 찔 일은 없을 것이다. 웬만하면 온라인에서 철 지난 옷을 싸게 사 입히면 되는데 허리가 가늘다 보니 데리고 가서 입혀볼 수밖에 없다.

이마트가 매장 인테리어를 다시 하면서 열심히 이용하던 S-KIDS브랜드 매장이 없어졌다. 그 매장에 가면 체육복 바지는 비싸도 3,4만 원이면 살 수 있었는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모다 아울렛 매장을 찾아갔다. 키즈는 아닌 키에 몸무게는 키즈 수준. 대체 우리 아이에게 맞는 체육복을 살 수 있는 매장이 있기나 할까?

우선 나이키 매장에 가서 가장 작은 사이즈를 입어봤지만 아니나 다를까 길이가 애매하다. 다음 디스커버리 매장. 옷을 사주면서도 오래 걸리면 아이가 짜증 낼까 봐 신경이 쓰인다. 돈을 내고 좋은 걸 사주는데도 아이 눈치 보는 형국이 못마땅하지만 아이의 짜증을 의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 약한 엄마는 그 상황을 피하려고 애쓸 뿐이다.(이게 잘못된 육아란 말이지.) 참 모자란 엄마란 생각을 하면서 이것저것 골라보았다. 두 개를 골랐다.

보통 쇼핑을 하면 가격을 물어보고 입혀보기 마련인데 아침 설명회 이후 아이가 터질까 감정에 신경을 쓰다 보니 후딱 입히기 바빴다. 5개를 입고 겨우 2개를 골랐다. 그나마도 허리는 크지만 집어서라도 입혀야지 여기서 안 사면 쇼핑 싫어하는 아이가 다시 물건 사러 나올 리가 없을 것이기에 계산대로 갔다.

아뿔싸. 나의 실수. 가격을 물어봤어야 된다.

시커먼 색의 디자인 하나 가미하지 않고 단지 DISCOVERY 한 단어 찍혀 있는 그냥 그런 체육복 바지 2개가 218,000원이다.

어쩌겠나. 구차해 보이게 하나만 살게요 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도 바지가 2개는 있어야 바꿔 입을 것이기에 계산을 할 수밖에. 하지만 내 마음의 소리는 공기를 타고 그대로 나온다.

"어머, 뭐가 이렇게 비싸요? 할인 안 해요?"

약간은 일그러지는 표정의 점원은

"할인은 안 해요. 적립해 드릴까요?"

"회원 가입해야 되면 안 할게요."

"응모권 두 장 드릴게요. 1층 중앙에 응모함이 있으니 넣고 가세요."

기쁘지 않은 마음으로 종이쓰레기 또 양산하네 생각하며 남편과 내 이름을 써넣는다. 이깟 응모권 될 리도 없는데.


에스켈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마음이 썩 편하지는 않다.

"여보 이 돈이면 차라리 신세계백화점 가는 게 낫겠다. 10프로 할인이라도 되지. 이마트 매장에 주니어를 위한 매장이 사라져서 아쉽네."

"마트 안 가고 왜 여기 오나 했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잠깐 응모권 넣고 가야지."

"아, 엄마. 어차피 될 일도 없는데 그냥 가. 그거 넣어서 뭐 하게?"

아들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이 순간 이 녀석이 또 지쳤구나 싶어 눈치를 보지만, (아 정말 이건 엄마의 자세가 아니다.) 주어진 건 또 완수해야 찝찝하지 않은 성격이라 응모함으로 갔다.

내 허리까지 오는 커다란 크기의 응모함엔 이미 수많은 응모권들이 그득 차서 동그란 입구밖으로 빠져나올 정도로 다 차 있다. 사람들이 이렇게나 쇼핑을 많이 했구나. 하긴 여기 사람들 먹고살려면 이렇게는 매출이 나야 되겠지 생각을 하며 아무런 기대 없이 두 장을 투척. 어차피 평생 응모에 당첨된 적은 없는 사람이니까.



화요일 퇴근 무렵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다. 보통 모르는 번호는 스팸으로 뜨는데 안심등록 25건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렇다고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받을 내가 아니다.

수요일은 오전부터 전화가 두 통 걸려온다. 모르는 전화는 절대 안 받는데 가끔 촉이 오는 전화가 있다. 걸어보았지만 받지 않는다. 퇴근 무렵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다.

"전화가 자꾸 와서요."

"네, 모다 아울렛입니다. 경품에 당첨돼서요."

뭐라고? 내가? 거짓말일 거야. 보이스 피싱 아니야?

"메트로시티 지갑에 당첨되셨습니다. 1층 고객센터로 11월 30일까지 오시면 됩니다."

미루면 분명 잊어버리거나 안 갈 확률이 많다. 가기 싫은데 토요일 남자들 영화 보러 갈 때 찾으라고 할까 고민을 하다가 경품이라는데 어떻게 찾아온 행운인데 빨리 가야지 하는 생각에 운전대를 돌렸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고객센터로 향했다. 정말 당첨이다. 25개쯤 돼 보이는 쇼핑백들이 죽 늘어서 있다. 내 허리춤에 오던 수많은 경품 쪽지 들 중에 25개 정도라니. 어떤 경품이 주어지는지 관심 밖이었는데 1등 경품도 궁금해진다. 11월 8일은 주민등록상 생일이었다.(부모님은 태어난 지 거의 1년 뒤 출생신고를 하셨다. 민증생일, 양력생일, 음력 생일. 생일이 3개다)

인간은 우연의 일치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마련이다. 이게 또 힘든 시간 속에 작은 기쁨을 주기 마련이다.

생일날 내 생에 처음 경품이 당첨되다니. 무슨 좋은 일이 앞으로 계속 생기려나? 애 먹이는 아들도 좋아지려나? 내년에 이동점수를 좀 딸 수 있으려나? 앞으로 고통과 괴로움은 사라지려나?

경품 하나에 온갖 좋은 일을 다 얹어본다. 간사하다. 그래서 인간이지.


주차된 차에 앉아 상자를 열어본다.

아 이 촌스러운 빨간색과 디자인이라니. 얼마 전까지 쇼핑앱을 뒤지던 나인만큼 그 브랜드에서 볼 수 없던 지갑이다. 집에 와서 스마트렌즈로 검색해 보니 족히 4년은 다 된 재고품이다. 아, 재고를 경품으로 주면 되겠구나.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그러면 뭐 어떤가? 공짜이며 행운이지 않은가?

다시 살펴보니 그 촌스러워 보이던 첫인상이 사라지고 은근 정이 간다.(내 돈 주고 사라면 절대 안 살 지갑이다.) 같은 물건도 현상도 내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 달라 보이는 것이 맞다는 교훈을 한 번 더 되새기게 된다. 모든 고통과 괴로움은 내 마음이 몰고 오는 것이다.

페이의 활성화로 지갑 들고 다닐 일도 없는데 카드를 찾아서 지갑에 넣어 본다. 이건 행운이니까 뭔가 좋은 기운을 몰고 올 거야. 고이 가방에 넣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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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한 남편에게 자랑을 한다.

남편도 상품권 하나를 내민다. 남편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시큰둥하지만 사고 싶은 거 사라고 쑥 내민다.

2023년 11월 8일 민증 생일날 두 가지 행운이 찾아왔다.

행운이 행운을 몰고 왔으면 좋겠다는 이루어질 일 없는 기대를 하며 억지로 끼워 맞추기를 하지만, 어찌 됐든 순간은 행복하다.

행운은 정말 기대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것이다. 이 한 번의 행운으로 다음 경품 행사에 기대를 건다면 당첨 확률 꽝. 그리고 아마 이게 내 마지막 경품 당첨일지도 모른다.

처음이자 마지막 당첨이 될지라도, 간간히 기억 속에 떠오르며 도파민을 분비시킬 것이라 행복한 퇴근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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