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 버스가 엄마만 고생시켰다.
중학교 시절 우리 또래들은 학원을 거의 다니지 않았다. 학교에서 치러지는 월례고사 때문에 공부를 아니하려야 아니할 수 없었고 선생님들은 분명 성적결과에 따라 학교 측으로부터 후달림이 있었을 테니 온갖 프린터물을 나눠주고 열과 성을 다해 공부를 시켰다. 달마다 시험을 치르고 석차가 공개되었고, 전교 상위 몇 등까지의 성적표는 교실 게시판 뒤에 붙기도 했으며, 때론 아이들의 이름만 지워진 반 전체 성적표를 게시하기도 했으니까 그야말로 공부가 안되는 아이들은 학교가 지옥이었을 것이다. (반아이들 이름만 지운다고 누가 누군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전체 성적표를 게시판에 붙이는 것이야말로 정말 인권침해다.) 학원을 가지 않아도 웬만하면 공부를 해야 되는 분위기였다. 우리 또래들이 학원을 다니게 되는 경우는 중 3 연합고사를 치르고 난 후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시내에 있는 입시학원 단과반 수업을 듣는 경우였다. 그 당시 대구에는 유신학원 대구학원 등의 큰 학원이 시내 중심가에 있었는데 지금은 아마 사라지고 없지 않을까 싶다.
방학을 이용해 30분가량 걸리는 거리를 버스를 타고 입시학원에 정석 수학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책상과 의자가 붙은 좌석은 정말 좁고 딱딱하고 앉아 있기도 힘들다. (요즘 아이들더러 그 낡고 좁은 좌석에서 공부하라고 하면 아마 다들 돈 내놓아라 수업 들을게 할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학생들이 열심히 수업을 듣고 끝나면 한꺼번에 쏟아진다. 시내에서 타는 버스는 당연히 복잡할 수밖에 없다. 중 3 어느 날 수업을 듣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정말 겪기 싫은 일을 겪었다.
버스는 당연히 만원이었다. 앞, 뒤, 옆 어디를 둘러봐도 발 하나 빼서 방향 바꿀 틈도 없는 상태로 너나 할 것 없이 사람들로 포위된 사람들이, 버스 속 답답한 공기를 마시며 행여나 다른 사람과 눈이라도 마주칠까 고개 하나 못 돌리고 조심하며 서 있는 상태였다. 버스가 급정거를 하면 넘어질까 봐 버스 손잡이 봉을 잡고 안간힘을 쓰다 보면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기도 하다.
내릴 순간만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내 엉덩이 사이로 뭐가 자꾸 스치기 시작한다. 느낌이 싫어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 싫지만 발 방향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이다. 스침은 끝이 없다. 2 정거장 3 정거장 4 정거장. 소심한 나는 뒤도 못 돌아본다. 돌아보는 순간 그 자리에서 돌이 되어버릴 것 같은 공포마저 느껴졌다. 얼굴은 경직되고 목도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 집까지 2 정거장이 남았다. 갑자기 그 남자가 내 허벅지를 두 손으로 콱 움켜쥔다.
'돌아봐야 돼. 소리라도 질러야 돼. 안돼.'
눈물이 나지만 흘릴 수 없다. 얼굴은 굳어버렸다. 결국 소심하고 두려운 중 3 여학생은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도움도 요청하지 못하고 그렇게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내 앞에 사람이 하나 서 있고 그 앞 쪽 좌석에 앉은 지긋한 중년의 아저씨가 내 눈을 쳐다본다.
야속하기 그지없다. 중 3 여학생이 그 자리에서 추행을 당하고 있는데 내 얼굴을 쳐다보는 아저씨의 심리는 무엇인가? 나는 잘못한 게 없고 맘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부끄러움으로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데. 나를 쳐다볼 게 아니라 나한테 그 참지 못할 더러운 행위를 한 그 인간을 쳐다보고 붙잡든지 소리라도 쳐서 못하게 제지했어야 되는 거 아닌가? 마치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양 내 눈을 빤히 쳐다보던 그 중년 아저씨의 눈빛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사실 그때의 나는 뒤에서 스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게 더 화가 나기도 한다. 성교육의 부재로 인해 많은 것들에 무지했던 중 3 여학생. 하이틴로맨스라도 읽어봤더라면 좀 나았을까? 고딩엄빠라는 프로그램까지 나온 세상에 살고 있는 요즘 중학생들이 그 시절의 나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어찌됐든 그 인간은 그야말로 옷 입고 버스에서 활개 치는 바바리맨인 셈인데, 그 때의 난 이게 무슨 일이지 이건 뭐지 하고 있었다.
80년대였다. 성인지 감수성도, 성희롱이나 추행에 대한 개념도 인권이란 것도 교육하지 않던 시절. 오직 반공만 부르짖고 새마을 교육을 하고 국산품 애용 운동, 애국심 고취 교육만 하던 시절이다.
세월과 함께 나라도 잘 살게 되고 민주 시민 의식도 높아지고 인권의 개념도 잘 교육되고 있어서 다행이다.
그 이후 만원 버스에 대한 두려움으로 학교 갈 때 거의 새벽 첫 차를 타고 6시가 조금 넘으면 문을 맨 먼저 따고 등교하는 학생이 되었다. 그 덕에 공부할 시간도 더 많이 생겼고 성적도 좋았지만, 일찍 가는 나 때문에 엄마는 새벽 5시면 깨야 되는 신세가 되었다. 버스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작해서 엄마에 대한 감사로 글이 끝난다. 오늘 108배를 한다고 5시에 깼는데 깨는 것조차 힘든데 우리 엄마는 그 시간에 도시락을 싸고 계셨으니. 식재료도 풍부하지 않던 시절 매일 따뜻한 밥에 반찬 3가지는 꼭 챙기던 엄마. 보온 도시락에 넣어가기 시작하면 국까지 챙겨야 했던 엄마. 지금의 내가 그래야 된다면 매일 우리 애들에게 도시락 싸는 걸로 생색을 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니 엄마에게 더 고맙다.
엄마 미안하고 고마워요. 그 덕에 지금 제가 건강하게 잘 살고 있어요.
버스에 대한 기억이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 일깨웠다.
#라라크루 갑분 글쓰기 #라라크루 6기
<하이틴 로맨스>
한국 로맨스 소설
서양에서 다양한 장르로 발전되어 온 로맨스 소설은 1970대 무렵 한국에도 상륙했다. 당시에는 해적판이었으나 저렴한 문고판으로 발간되어 여학생들이 책가방에 몰래 숨겨와 수업시간이나 휴식시간에 손에서 손으로 옮겨져 읽히며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이때의 로맨스는 주로 하이틴 로맨스였다. 이후, 1986년 11월에 할리퀸이 들어왔다. 지금은 영언문화사, 현대문화사, 큰나무, 씽크북, 신영미디어 등의 출판사들에서 많은 로맨스 소설들이 번역, 출간되고 있으며 눈과 마음, 동아, 발해, 마야, 청어람, 여우비, 아름다운 날들, 영운기획 등과 같은 출판사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주로 무협소설을 출간하던 초록배 미디어에서 한때 대만 작가들의 중편 로맨스를 내놓기도 했다.
초창기 로맨스 소설의 독자층은 주로 10대 여학생들이었다. 하지만 다양한 장르의 로맨스 소설이 출간되면서 독자층도 다양해졌다. 요즘 나오는 로맨스 소설의 주 독자층은 20대 초중반에서 30대 여성이 주축을 이루고 있으나 장르에 따라 10대부터 40대 이상까지 폭넓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출처 :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