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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Feb 17. 2024

친구끼리 호텔 안 가나요?

다음 주부터 정식 출근을 앞두고 있다. 그전에 학교에 가서 교실 짐정리, 컴퓨터 하드 정리, 학교생활기록부 최종 점검 등으로 바쁜 한 주를 보냈다. 명절 후에 갑자기 소소하게 몰아치는 일들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나니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 방학 동안은 7, 8시에 기상을 했으나 이제 6시 기상으로 생체 리듬을 바꾸어야 되는데 느긋한 생활리듬에 적응된 몸이 갑자기 바빠진 일상에 적응을 못하고 있다. 조금만 일찍 깨도 피곤하다.

힘들고 지친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서 남편에게 서울 호텔에 가서 하루 자고 오자고 제안했다. 남편은 기꺼이 응했고 제안한 나는 그저 남편이 준비해 놓은 계획에 참여만 하면 된다. 이럴 땐 남편이 있어서 다행이기도 하다. 

금요일, 남편 친구분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대구에 갔던 남편이 발인까지 보고 오늘 오전 집으로 왔다. 집을 하루 비우게 되니 여자들은 걱정이 많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쌓인 빨래나 설거지를 보면 스트레스와 함께 여행의 즐거움은 사라지니 집안을 대충이라도 정리하고 떠나야 된다. 아침에 냉장고를 털어 어찌어찌 반찬을 준비해 밥을 주고 나니 어제저녁부터 쌓인 설거지거리가 보인다. 설거지를 하고 쌓인 빨래를 돌리고 등등을 하고 나니 이미 진이 빠진 상태이다.

서울 구경이고, 호텔 나들이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지만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나들이 준비를 한다.

아들은 엄마 아빠만 좋은 데 가냐고 살짝 불만을 표하지만 엄마도 쉬고 싶다. 

'아들아, 너에게서 벗어나서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좀 보내고 싶구나. 너를 보면 걱정과 연민과 불안의 감정만 늘 밀려온다.'

남편이 삼식이가 아니라 아들이 삼식이인 우리 집에서 벗어나 밥으로부터 해방되는 것만 해도 큰 즐거움이다.

서울 가는 길은 여지없이 막힌다.


"장례식장에서 오늘 서울 호텔에 당신과 같이 간다고 하니 다들 뭐라는 줄 알아?"

"뭐라는데?"

짐작은 가고 남지만 한 번 물어본다.


"여자들은 좋겠다, 부럽다이고 남자들은 전부 다 뭐라는 줄 알아?"

"니 미쳤나?라고 말해."

"그러지 그랬어? 우리 부인인들 가고 싶겠냐고 말이야. 그냥 혼자 가기 뭐 하니 남편 데리고 가는 거지."

"그래 그런 질문도 하더라. 너거 와이프는 가고 싶다 카드냐고. 니는 미쳤고 너거 와이프도 이상하다 그러네. 네가 친구랑 거길 가고 싶냐고 카더라."

"그래 나도 당신이랑 가기 싫다. 애인이랑 가야 되는데 말이야. 애인이 없네."

"애인이 당신 이런 호텔에 데리고 가겠어?"

"그건 모르지. 데리고 갈지도. 그리고 뭐 여자들도 딱히 부러워서 부럽다 좋겠다 했겠어? 그냥 예의상 그렇게 말해준 거겠지."


20, 30대 만날 때는 사랑(?)해서, 안 보면 보고 싶고, 헤어지면 아쉬워했고, 같이 있고 싶어 결혼했을 것인데 20년 가까이 살다 보니, 나이가 50이 넘다 보니 이젠 진짜 친구가 되어가는 남편이다. 


얼굴을 봐도 설렘도 없고, 집에 없어도 크게 아쉬울 것도 없고, 출장을 가도 이젠 옆구리가 허전하지도 않다. 가끔 이런 저런 소소한 부탁을 할 사람도 필요한데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부탁을 들어주던 남편이 없어서 조금 불편할 뿐 딱히 아쉬움이 없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남편이 있는 게 낫다. 같이 집을 나서면 편안하고 옆에 있어서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 남편이다. 가끔이지만 말동무도 되어 준다. 밥도 같이 먹어 준다. 


신혼과 육아를 거치면서 싸우고 갈등하던 세월이 지나고, 때론 서로에게 지쳐 관두고 싶을 정도로 불안정하게 느껴지던 결혼 생활이 이젠 한고비를 넘어섰다. 불안정함이 안정감으로 바뀌고 어느덧 남편과 동지가 되어 가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나도 남편이 없으면 어떤 구석이든 아쉬울 것이고 남편도 나 없으면 아쉬운 점이 엄청 엄청 많을 것이다. 이젠 동지니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결혼도 단계를 밟아나간다. 아이들의 발달 단계가 바뀌어 가는 것처럼. 이제부터는 가파른 고개를 오르기보단 평평한 평지에서 둘이 손잡고 천천히 숨고르며 길을 걸어가고 싶다.



서울 와서 호텔에 자는 것도 처음이고 신세계 강남점도 처음이다. 규모에 깜짝 놀랐다. 2,3층 명품관을 둘러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울이 이래서 서울이구나 하며 지방 사람 두 명이서 서울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여보 오늘 코트라도 입고 백이라도 들고 와서 다행이다. 구질하게 왔으면 어쩔 뻔했어?"

역시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 맞구나. 

말은 제주도에서 키우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어.


신세계 강남점과 연결된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
티비 화면 옆 벽에 전통 한옥 사진이 멋있다. 저기 예쁜 문 뒤는 화장실
지방 사람, 예술의 전당에 처음 와 봤다. 규모에 놀랐다. 문화적 혜택을 누리려면 서울에 살아야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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